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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차량 금지’ 고덕동 아파트 입구에 쌓인 수백개 택배상자…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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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노조 “개별배송 중단” 선언…‘택배대란 2라운드’

주민들 직접 택배 찾아가며 불편 호소…입주자대표회의 “노조 갑질 프레임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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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서울 강동구 고덕동 한 아파트 단지 앞에 쌓인 택배상자.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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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5000세대가 거주하는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 대단지 정문 앞에 택배 상자가 쌓이기 시작했다. 여러 명의 택배기사들이 차량에서 택배를 내려놓자 순식간에 수백여개의 상자들이 쌓였다. 혼자 들기 버거워 보이는 묵직한 과일상자와 신선식품 상자들이 눈에 띄었다. 장바구니를 들고 오거나 손수레를 끌고 와서 택배를 챙겨가는 입주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현관문이 아닌 정문 보행도로에서 택배를 주고받는 택배기사와 입주민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는 해당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입주민 안전, 아파트 시설물 훼손 등을 이유로 지난 3일부터 택배 차량의 지상출입을 통제하면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그동안 택배기사들이 손수레를 끌고 현관문까지 배송을 했지만,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은 “택배기사에게만 부담을 전가해서는 안된다”며 이날부터 입주민 개별 배송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나 입주자대표회의가 택배차량 지상출입 금지 입장을 고수해 ‘택배 대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택배노조는 수북히 쌓인 택배상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택배차량 지상출입 제한은 비용과 시간 문제를 발생시키지만 택배사와 입주자대표회의 쪽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부담은 온전히 택배 노동자들에게만 전가되고 있다”며 “택배기사들에게 저상탑차 운행을 요구한 것은 일괄적 통보이자 강요다. 갑질에 시달리지 않고 인간답게 노동할 수 있도록 시민들과 일반 입주자들의 지지를 부탁한다”고 개별 배송 중단 입장을 밝혔다.

앞서 택배노조는 입주민들의 편리한 택배 이용과 택배 노동자들의 안전을 모두 달성하기 위한 협의를 요청하는 공문을 아파트에 보냈다. 그러나 입주자대표회의는 13일 밤 “강동구 고덕지구의 공원화 아파트 단지들은 이미 저상차량을 통한 지하주차장 운행과 배송이 이뤄지고 있다”며 “아파트 단지 및 입주민들을 갑질 프레임으로 매도한 노조 행위에 유감을 표한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입주자대표회의는 택배사들에게 지난해 3월부터 저상차량 출입을 권고했다고 밝히고 있다.

택배 차량 지상출입 통제가 택배 대란으로 이어진 것은 해당 아파트 지하 출입구 높이가 2.3m라 일반 택배 차량으론 진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9년 1월, 택배 차량 출입을 위해 지상공원형 아파트 지하주차장 입구를 2.7m로 정했지만 해당 아파트는 정부 지침이 나오기 전에 건축 승인을 받은 곳이다. 아파트 쪽은 택배기사들에게 저상차량으로 개조하라고 권고했지만, 사실상 ‘개인 사업자’(특수고용직) 신분인 택배기사들은 차량 개조 비용을 떠안는 것에 난색을 보인다. 저상차량을 사용할 경우 택배기사들이 목과 허리를 굽히며 택배를 내려야 하므로 노동 강도도 올라간다. 일부 저상차량으로 개조한 택배기사들도 있지만, 대부분 택배기사들은 이러한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5000세대가 사는 해당 아파트 단지가 넓다보니 택배기사들은 손수레 배송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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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전국택배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최근 택배차량의 지상출입을 금지한 아파트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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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단지 앞 배송’으로 아파트 주민들은 불편을 호소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택배 상자를 받아가거나 아이가 누워있던 유모차에 스티로폼 택배 상자를 넣고 아이를 껴안은 채 힘겹게 올라가는 주민도 있었다. 무거운 유리 제품을 받은 주민은 택배 기사에게 손수레를 빌려 짐을 실어야 했다. 40대 중반의 이아무개씨는 과일상자를 들고 가며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택배기사도 고생이고 주민들도 고생 아니냐”며 “택배차 지상 출입 금지가 전체 주민의 뜻도 아니다. 비라도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귀갓길에 택배를 찾으러 온 안은경(60)씨도 “솔직히 아파트 갑질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문 앞까지 택배를 갖다 주는 기사님들이 얼마나 고맙나. 서로 간에 협의를 하면 되는 일인데 안타깝다”고 했다. 현재 19개월 남아를 키우는 한 주민은 “아이 안전을 생각하면 우려도 되지만, 무엇보다 택배사와 주민, 입주자대표회의의 갈등을 중재하지 못하는 지자체와 정부 문제도 있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나 일부 주민은 “1년 전부터 통보한 일인데 왜 우리 아파트에서만 이러는 것이냐. 소비자인 우리에게 왜 책임을 지라는 것이냐”며 택배노조 관계자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김태완 택배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전국 400개가 넘는 아파트가 우리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들었다. 저상탑차를 운행하는 모든 기사들이 허리, 무릎, 팔목이 아프다. 아파트 입주민 자녀의 안전 문제처럼 택배 노동자의 건강도 중요하다.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택배사는 택배노동자들이 갑질로 더 힘든 노동을 감내하고 있는데도 아무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 또한 중재를 위한 노력에 즉각 나서야 한다”며 택배사와 정부의 책임을 강조했다.

택배 기사들은 아파트 쪽과 협상이 이뤄질 때까지 개별배송 중단 방침을 고수할 예정이다. 당일 주민들이 택배를 모두 찾아가지 못하면 개별 연락 후 택배기사들이 돌아가며 야간 당번을 서서 택배를 전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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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 입주민들이 아파트 정문에 쌓인 택배를 찾아가고 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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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바로가기: ‘택배 차량 금지’에…손수레 끌다 퇴근마저 3시간 늦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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