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67547318 0432021041867547318 02 0201001 society 6.3.1-RELEASE 43 SBS 0 true true false false 1618708148000

[취재파일] 법정에서도 "예수 믿으세요"…사찰 방화 '그 여자', 법원 판단은?

댓글 3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부처님 앞 '할렐루야' 40대 여성에 사찰 잿더미…"순교하려 했다"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SBS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며 남양주 사찰에 불을 지른 여성의 사건을 처음 알렸습니다. ▶ [단독][취재파일] 잿더미 된 사찰, 알고 보니…부처님 앞 "할렐루야!" 외친 '그 여자' 보도 직후 불교계에선 "개신교인에 의한 사찰 방화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성명이 잇따랐습니다. 기독교계 일각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구속된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비판 여론 역시 높았습니다.

SBS

대한불교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 성명 (지난해 11월)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종교의 다름을 떠나 평화적으로 공존해야 할 이웃을 혐오하고 차별하며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자에 의한 수진사 화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좌절하게 합니다."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성명 중 (지난해 11월)


그리고 반년이 흐른 지난 14일 이 사건 1심 선고공판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습니다. 사찰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라던 '그 여자'에게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요? 법정에 선 그 여자의 이야기를 취재했습니다.

판사에게도 전도 일색…"신당 제거하라는 하나님 뜻 따랐을 뿐"



연녹색 수의를 입고 반백의 머리를 묶은 채 법정에 들어선 '그 여자' 장 모 씨는 꼿꼿하게 피고인석에 앉았습니다. 이날 재판은 장 씨 요청에 따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습니다. 배심원단 앞에서 그는 자신을 '전도사'라고 소개했습니다. 일반건조물방화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장 씨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며 판사에게도 연신 '복음'을 외쳤습니다. '신당을 제거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순교'하기를 원했습니다. 나의 사명입니다.
거기서 빠져나온 건 하나님에게 죄를 지은 것입니다!"
- 장 모 씨 법정 진술 중


전각이 잿더미가 된 지난해 10월 14일, 장 씨는 이른 아침 남몰래 사찰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앞서 근처 산을 찾았다 우연히 사찰이 있는 걸 본 뒤로 매일같이 절 주변에서 "하나님을 믿으라"며 전도에 나서 갈등을 빚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는 전각에 놓여 있던 성냥으로 초에 불을 붙여 방석에 던졌고 유유히 뒷문으로 빠져나갔습니다. 불길이 치솟자 119와 112에 신고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고 그는 진술했습니다.

"왜 사찰에 불을 질렀나요?" 검사의 물음에 그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전각과 함께 자신도 불타 없어지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나의 사명입니다. 거기서 순교하길 바랐습니다. 제가 거기서 나온 건 하나님께 죄를 지은 거예요." 시종일관 당당하던 그의 갑작스러운 회개에 검사도 배심원단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것이 진정 순교라고 생각하느냐는 검사의 거듭된 질문에도 "하나님이 불을 지르라면 또 불을 낼 것"이라는 장 씨의 믿음은 확고해 보였습니다.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땅의 우상숭배를 깨트리리라.
산신각은 귀신을 숭배하는 곳이다.
내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 장 씨의 자필 진술서 중


9달 전에도 장 씨는 같은 사찰 종각에 걸린 현수막에 불을 붙인 적이 있습니다. 법정에서 공개된 CCTV 영상에는 늦은 밤 캄캄한 종각 근처에서 갑자기 치솟는 불길과 그 옆에선 장 씨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변호인은 막상 불이 커지기 시작하자 장 씨가 급히 손으로 불을 껐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장 씨는 오히려 후회했습니다. 불타게 놔뒀어야 했는데 두려운 마음이 들고 믿음이 부족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불행한 가정사, 종교 의존해"…"점점 '광신도' 변해가"



그가 '복음'을 전파하다 문제가 된 건 이 사찰만이 아니었습니다. 2년 전 교회를 비판하는 전단지를 찢다 적발돼 벌금형이 선고됐고, 사찰 현수막에 불을 질러 재판에 넘겨진 뒤에도 서울 동작구에 있는 사찰을 찾아가 소란을 피워 벌금형이 내려진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5년 전 신학대학에 입학해 성경 말씀을 공부하던 그가 어느 순간 점점 '광신도'로 변해갔다고 주변인들은 말했습니다.

평범했던 장 씨의 일상을 '투사'의 삶으로 만든 건 불행한 결혼 생활이었다고 변호인은 주장했습니다. 식당 일을 전전하며 고군분투했지만 남편의 잦은 도박으로 빚은 늘어만 갔고, 이때 장 씨가 기댈 수 있던 건 종교뿐이었다고 합니다.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두 아들에게 함께 집을 떠나자고 했지만 "엄마는 돈이 없다"며 외면당했습니다.

점점 더 신앙에 빠져들었습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스스로 땀 흘려 일하라"는 성경 말씀에 따라 정부 지원도 거부했다는 장 씨. 2015년 정신과 진료를 받고 약을 복용하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병원 대신 곳곳을 돌며 복음을 전하는 삶이 조금씩 선을 넘기 시작했습니다. "처벌보다 치료를 받는 것이 재범 방지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담당 조사관의 의견도 참작해달라고 변호인은 호소했습니다.

SBS

경기소방재난본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배심원단 만장일치 '유죄'…법원 "징역 2년 6개월"



검사는 이런 장 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지만 방화 범죄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만든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불행한 가정사를 감안하더라도 장 씨의 행위가 짧은 기간 반복되는 경향이 있고 반성의 기미와 개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도 꼬집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행패를 부리고 시비를 건 피고인 때문에 수고스러웠을 관련자들의 고통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검사는 덧붙였습니다.
"여기 오셨으니 제가 말씀 전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도 죽어도 살겠고,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심장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 장 씨 최후 진술 중


2시간에 걸친 토론 끝 배심원단의 결론은 만장일치 유죄, 특히 7명 중 5명이 검찰 구형량과 같은 징역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습니다. 재판부 결론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배심원단 의견을 바탕으로 장 씨에게 검찰 구형량과 같은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방화는 공공의 안정을 해치는 중대한 범죄로 위험성이 크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장 씨가 방화 미수 사건으로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또 불을 질렀고 피해자가 엄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종교적 이유로 다른 종교 시설에 범행을 저지른 점은 불리한 양형 요소에 해당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후련한' 가해자, 그리고…



선고에 앞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재판장 조용래 부장판사 물음에 장 씨는 할 말은 대강 다 했다며 "마음이 후련하다"고 말했습니다. 재판부와 배심원단을 향해 다시 한번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장 씨가 국민참여재판을 적극 요청한 이유는 어쩌면 법정에 온 한 사람에게라도 더 복음을 전하려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한 방청객은 전했습니다.

SBS

경기소방재난본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후련한' 장 씨를 바라보는 피해자들은 기가 찹니다. 수억 원대 재산 피해만큼이나 트라우마가 남았습니다. 불안감도 큽니다. 물론 사과는 없었습니다. 일부 피해자는 장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도 검토 중이라고 전해왔습니다. 사실 별다른 수입이 없는 그에게 어떤 보상을 받아내리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마냥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건 더 이상 "종교적 이유로 다른 종교에 저지르는 범죄"가 반복돼선 안 된다는 바람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끊이지 않는 종교 간 배척과 비난, 폭력을 제발 자제해달라는 호소가 무겁게 다가옵니다. 쏟아지는 종교계 성찰에도 무엇 하나 바뀐 것 없다는 답답함, 이들이 후련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안희재 기자(an.heejae@sbs.co.kr)

▶ [제보하기] LH 땅 투기 의혹 관련 제보
▶ SBS뉴스를 네이버에서 편하게 받아보세요

※ ⓒ SBS & SBS Digital News Lab. : 무단복제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