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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힌 정의’…일본에 위안부 배상책임 못 묻는다는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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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2차 손배소 ‘각하’

배상책임 인정한 1차 소송과 달리

“다른 국가 주권행위 손배소 불가”

할머니들 “너무 황당” 항소키로


한겨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두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패소한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할머니가 법원을 나서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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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용수(93) 할머니는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80년 한을 조금이나마 달래는 순간을 기대하며 휠체어를 타고 온 그가 흘린 것은 응어리가 풀리며 나온 눈물이 아니었다. 자국 법정에서도 끝내 위로받을 수 없다는 절망과 당혹감에서 쏟아진 눈물이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민성철)는 21일 이 할머니와 고 곽예남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들과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본안 판단을 하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다른 피해자 12명이 낸 ‘1차 소송’에서 지난 1월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1심 판결과 엇갈린 결론이다. ▶관련기사 3·4면

판결을 듣던 이 할머니는 패소 취지의 내용에 재판장 말을 다 듣지 않은 채 휠체어를 돌려 법정을 나왔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할머니는 눈물을 닦은 뒤 “너무 황당하다. 국제사법재판소에 꼭 가겠다.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짧게 말하고 자리를 떴다.

소녀들에게 저지른 전쟁범죄 책임을 물으려고 수십년을 싸워온 할머니들은 ‘국가면제’라는 네 글자 법논리에 간단히 가로막혔다. 재판부는 “한국이 국내외적으로 기울인 노력과 이로 인한 성과가 피해자들의 고통과 피해 회복으로는 미흡했을 것으로 보이고, 2015년 12월 한-일 합의도 이들이 지난 시간 겪어야 했던 고통에 비하면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유효한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과 이에 관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주권적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며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에 대한 재판권을 갖는지에 대해 한국 헌법과 법률 또는 이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 국제관습법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면제를 예외로 할 수 있는지는 “한국의 외교 정책과 국익에 잠재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어서 행정부와 입법부의 정책 결정이 선행돼야 할 사항”이라며 “법원이 매우 추상적인 기준만을 제시하며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일본 정부 차원의 권리 구제로 볼 수 있다는 판단도 밝혔다. 이 합의엔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 차원의 사죄와 반성의 의미가 담겼고, 일본 정부가 자금을 출연해 재단을 설립하고 피해 회복 사업을 하겠다고 한 만큼 ‘대체적 권리 구제’ 수단을 마련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또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은 한국이 여러 차례 밝힌 바와 같이 일본 정부와의 외교적 교섭을 포함한 한국의 대내외적 노력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은 지난 1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배 소송 1심 결과와 정반대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는 “원고들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국제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파괴하는 반인권적 행위까지 재판권이 면제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2016년 소송을 제기한 뒤 5년이 흐르면서 원고로 나선 피해자 10명 중 생존자는 이 할머니를 포함해 4명뿐이다. 할머니들을 대리하는 이상희 변호사는 “재판부가 선고 내내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청구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인 ‘인간으로서의 피해 회복’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국익을 우려했다”며 법원을 비판했다. 정의기억연대 이나영 이사장은 “자국 국민이 중대한 인권침해를 입었음에도 가해자가 외국이라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인가. 피해자들의 절박한 호소를 외면하고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 책무를 저버린 오늘 판결을 역사는 부끄럽게 기록할 것”이라고 했다. 아널드 팡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도 “일본군 성노예제 생존자들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도중 그들처럼 잔혹 행위에 시달린 뒤 이미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정의를 구현하지 못하는 큰 실망을 안겼다”고 비판했다. 원고들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기로 했다.

일본 외무성 간부는 판결에 대해 “타당하고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 전했다.

조윤영 장예지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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