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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적 비핵화 시도땐 北 호구 될 위험 크다 [핫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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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019년 2월 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회담이 대형 스크린으로 생중계되는 모습을 각국 취재진들이 지켜보고 있다. [하노이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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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미국과 북한이 서로 양보와 보상을 "동시적으로" 주고받으면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비핵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같은 인터뷰 내용을 지난 21일 보도했다.

이는 결국 북한이 핵 시설을 일부 포기하는 '양보'를 하면 미국이 주요 대북 제재를 해제하는 '보상'을 하자는 제안이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폐쇄할 테니, 핵심 경제 제재를 풀어달라고 요구한 선례가 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다.

양보와 보상을 주고받는 단계적 비핵화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북한의 호구가 될 위험이 크다는 데 있다. 북한이 매번 핵시설을 일부 또는 찔끔 없애면서 우리에게 과다한 요구를 해오는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 그때마다 북한에 끌려갈 경우 영락없는 '호구' 신세가 된다.

어떤 이들은 점진적으로 북한과 신뢰 관계를 쌓으면서 해결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신뢰 관계라는 건 배신을 응징할 수 있을 때 성립이 가능하다. 상대가 나를 배신해도 내가 그 상대를 응징할 수 없다면 신뢰 관계는 형성이 어렵다. 상대는 나를 호구로 여기고 언제든 배신할 것이다.

이는 신뢰는 본질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데이비드 데스티노 미국 노스이스턴대 교수를 비롯한 심리학자들은 신뢰가 '장단기 이익의 균형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상대의 신뢰를 배신해 당장 이득을 취해도 장기적으로 손실을 볼 거 같지 않으면 우리는 쉽사리 '배신'을 선택한다. 그러고는 그 배신을 합리화한다. 인간은 자기 합리화의 천재라고 하지 않았던가. 권력자는 더하다. 권력을 지렛대로 자신의 장기이익을 지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배신이 더 쉽다. 독재 권력을 누리는 북한 엘리트층이 '배신'을 않고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는 건 순진한 발상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계속 핵무기를 숨기면서 매번 일부 시설 폐기로 지속적 양보를 요구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당연히 북한을 응징해야 한다. 북한에 협조하지 말아야 한다. 언제든 북한 권력자들의 돈줄을 끊을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문제는 그때마다 북한이 벼랑 끝 협상 전술을 쓸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이를 숱하게 목격해왔다. 북한 권력자들은 협상을 파국 직전까지 몰아붙이고 전리품을 최대한 얻고자 한다. 그 와중에 상대에 대한 모욕과 욕설은 기본으로 등장한다.

이를 이겨내고 북한 권력자들의 배신을 응징할 의지가 과연 현 정부에 있을까? 남북 평화 기조를 정권의 성과로 삼고 선거에서 더 많은 표를 얻고 싶어 하는 게 민주당 정부의 속내다. 벼랑 끝 협상에서 정부가 매번 양보를 선택한다면 우리는 호구 신세를 면할 수가 없다.

특히 북한은 권력 엘리트층의 이익을 우선시할 뿐 주민의 안녕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게 큰 문제다. 일단 일부 핵시설 폐기로 권력의 돈줄만 확보할 수 있다면, 북한은 더욱더 제멋대로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추후 단계를 높인 비핵화 협상에서 핵무기를 유지한 채 고압적 자세로 무리한 요구할 해올 가능성이 크다. 그런 요구에 국제사회가 추가 보상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북한 권력자에 대한 타격은 크지 않다. 북한 인민은 여전히 가난하겠지만, 북한 엘리트층은 돈줄을 잡고 계속 권력을 쥘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 유지가 그들에게는 최고 최선의 목표다.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면, 점진적 단계적 비핵화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 비핵화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협상을 의미할 수 있다. 북한의 핵무기를 계속 머리에 인 채 끝나지 않는 협상 속에서 경제적 이득만 뜯길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로드맵"을 만드는 게 단계적 비핵화의 관건이라고 했다. 정말로 단계적 비핵화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면 북한의 배신을 응징하는 방안 역시 그 로드맵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응징을 두려워한다면 '호구' 신세는 필연이다. 혹시 좌파 인사들 중에는 '호구가 되면 어때. 평화만 유지하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평화가 진짜 평화일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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