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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이 다른 '윤석열 현상', 보수엔 득일까 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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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진보 응집력 높여 vs. 보수에 이익'... 그 현상의 이면

'윤석열 현상'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보도된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의 이재명·이낙연·정세균 중 누구와 일대일 대결을 해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승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4일부터 이틀간 18세 이상 10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기사 보기), 윤석열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의 가상 양자대결에서는 44.5% 대 36.2%,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대결에서는 48.0% 대 31.3%,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의 대결에서는 48.7% 대 25.7%로 앞섰다.

보수층에는 윤석열이 단연 압도적이었다. 이재명과의 대결에서는 63.0% 대 19.8%, 이낙연과의 대결에서는 66.2% 대 18.6%, 정세균과의 대결에서는 69.5% 대 13.5%로 앞섰다. 중도층에서도 상당 정도로 앞섰다. 이재명에게는 46.8% 대 33.2%, 이낙연에게는 50.8% 대 29.7%, 정세균에게는 51.6% 대 23.7%의 우세를 보였다. 보수·극우층에서 형성됐던 윤석열 지지가 중도층으로 전이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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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거나 잘 모르겠다고 응답한 부동층 비율이 세 사람과의 대결에서 각각 19.3%, 20.7%, 25.6%로 나왔다는 점도 감안해야겠지만, 윤석열의 거침없는 기세를 반영하는 여론조사 결과인 것은 확실하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p,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윤석열의 높은 지지율, 하지만

윤석열의 인기를 반영하는 높은 지지율과 대비되는 것이 있다. 그를 전폭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그에게 질문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당신은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가? 당신은 능력이 있는가? 당신은 깨끗한가? 조국을 나무랄 수 있는가? 이런 핵심적 질문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

윤석열 역시 답을 내지 않고 있다. 이따금 단편적인 보수적 가치관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기는 하지만, 내년 3월 9일 투표일에 그를 찍는 데 필요한 판단 자료들은 나오지 않고 있다. 물론 아무런 자료도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법치주의나 법의 지배에 관한 소신만큼은 상당히 명확히 표출되고 있다.

사의 표명 사흘 전인, 지난 3월 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랬다. 3월 2일 자 기사인 '검찰(檢) 수사권 박탈은 법치 말살, 민주주의 퇴보'란 제목으로 실린 인터뷰에서 그는 "헌법상 민주주의는 법치주의를 포함하는 개념"이라며 "힘 있는 사람도 범죄를 저질렀다면 똑같이 처벌받고, 법이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한 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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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진은 지난 3월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출근해 자신의 거취 관련 입장을 밝히던 중 눈을 감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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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검찰총장이 법치주의에 대한 소신을 밝히는 것은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사퇴 뒤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 법치주의를 트레이드마크처럼 내세우는 것은 다소 철 지난 일처럼 보인다. 인치(人治)가 비판 받고 법치가 부각되던 1987년 6월항쟁 이후로 10년 이내라면 모를까, 2010년대의 유력 대권후보가 집중적으로 강조할 만한 메시지는 아닌 것이다. 법치주의를 앞세워 정치권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는 일은 이회창 대법관과 홍준표 검사가 이미 했던 일이다.

윤석열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질문을 던지지 않고, 윤석열 자신도 필요한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 지금 상황은 한마디로 '묻지마 지지'에 가까워 보인다. 이런 유형의 인물이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떠오르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당파적 양극화' 이론이다.

양대 정치세력을 구심점으로 정치 지형이 극단적으로 갈라지는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유권자들은 '어떤 정치인인가'를 묻지 않고 '어디에 속한 정치인인가'만을 묻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지지하는 정치인의 실체가 폭로돼 실망감을 감출 수 없게 되기 전까지는 무조건적 지지를 밀어붙이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쉬워진다.

'그는 누구인가, 어디에 속해 있나'

윤석열이 그런 현상의 중심에 있다는 점은 윤석열 현상이 이전의 '안철수 현상'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문제로 사퇴하고 박원순 후보가 안철수의 지원을 받아 보궐선거에 당선된 2011년 당시의 안철수 현상은, 유권자들 사이 새로운 정치나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을 반영했다. 안철수 현상이 좌우 대결의 한쪽 진영을 반영하지는 않았다.

그에 비해 윤석열 현상에서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 명확하지 않다. 문재인 정권에 실망해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들 중에는 그가 새로운 정치를 하기를 기대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런 정서가 이 현상의 대세를 이루지 않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 현상은 정치개혁보다는 진영 대결 양상을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당파적 양극화로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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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총장님 회갑 축하' 노래 부르는 지지자들 ▲ 지난 2020년 12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지지자들이 윤 총장 환갑을 맞아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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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현상이 생겨난 것은 꼭 문재인 정권과 윤석열의 갈등 때문만은 아니다.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최근 한국의 정치문화와 닿는다고 말할 수 있다.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장승진·장한일 교수가 2020년 겨울에 <한국정치학회보> 제54집 제5호에 기고한 '당파적 양극화의 비정치적 효과'는 21대 총선 직후의 온라인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당파적 양극화의 심화를 짐작하게 하는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며 이렇게 설명한다.

"여야 정당은 서로를 대화와 타협의 파트너라기보다는 투쟁과 승리의 상대로 여기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여준 지 오래이며, 일반 유권자들 또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자신과 다른 정치적 성향과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조롱과 분노, 혐오를 여과 없이 토해낸다."

정치에 관한 지식이 많으면 양극화에 빠지지 않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정치 지식이 높은 사람일수록 오히려 양극화에 더 쉽게 매몰될 수 있다고 논문은 말한다. 정치 지식이 많은 사람은 그 지식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자신을 경계하기보다는 양극화에 빠진 자신을 합리화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한쪽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은, 원칙대로라면 그 한 쪽을 이끄는 정당이나 정치세력에서 배출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개인 윤석열'이 보수의 아이콘처럼 된 것은, 보수 정당이 2016년 촛불혁명의 충격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해 전열을 정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탄핵의 강'을 여태까지 확실히 건너지 못하고 새로운 정세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국 보수의 현실이, 윤석열 현상을 만들어낸 여러 원인 중 하나라고 본다. 일차적으로 반문재인 정서 때문에 생긴 현상이기는 하지만, 그 정서를 제1야당이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윤석열이 어부지리로 지지율을 얻은 측면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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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8일 김종인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국회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4.7 재보궐선거 승리를 자축하는 박수를 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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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현상이 내년 대선 전까지 진보 진영이나 여권의 응집력을 높여주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현상은 윤석열의 반대 진영에 손실이 될 수도 있고 이익이 될 수도 있다. 반면, 윤석열에게 맞서기도 뭐하고 그를 흡수하기도 뭣한 극우·보수 진영이나 제1야당 입장에서는, 이익보다는 손실이 더 클 수도 있다고 전망할 수 있다.

윤석열 같은 인물, 또 나올 수 있다

당파적 양극화의 기원을 탐구하다 보면, 이런 현상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 한동안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전망도 하게 된다. 어느 한 편이 강해지면 반대편이 윤석열 같은 인물을 배출해 판세 역전을 시도하는 양상이 한동안 이어지리라는 전망을 갖게 하는 요인이 이 현상에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집권 이후로 이 현상이 본격화됐지만, 이것이 미국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예전인 1990년대였다. 2006년 <한국정치학회보> 제40집 제3호에 실린 가상준 단국대 교수의 논문 '미국 의회의 양극화를 통해 본 미국 정치의 변화'는, "미국 정치는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커다란 변화를 경험"했다고 쓴 뒤 "80~90년대 들어와 중간에 위치한 의원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외국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중도 성향의 의원들이 이 시기 매우 감소했다는 것이다.

정치학계에서는 그로 인한 양극화의 원인을 정치제도나 유권자들의 변화에서 주로 찾고 있다. 그에 더해, 1990년대가 갖는 세계사적 의미를 추가로 고찰하면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원인을 규명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소련 해체로 냉전질서가 와해된 시점이다. 냉전 시기의 미국 진영은 공산권과의 대결에 전력을 집중했다. 이는 이 진영의 정치체제인 서구식 민주주의의 모순을 은폐하는 효과를 산출했다. 외부와의 대결에 집중하다 보니 내부 갈등이 덜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외부의 적이 사라진 뒤에는 내부 갈등을 억제할 힘이 약해지므로 양극단으로 몰려가는 세력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갈등 해결 기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됐다. 이로 인한 정치적 양극화가, 한국과 미국처럼 서구식 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들에서 확산되고 있으므로, 1990년대 탈냉전으로 인해 서구식 대의제 민주주의 위기가 표면화된 것이 당파적 양극화의 출현을 조장한 요인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이 현상이 얼마나 많이 퍼져 있는지는, 미국에서 극단주의가 판을 치는 사실은 물론이고 민주주의가 발달했다는 유럽에서 극우 정치가 기승을 부린다는 상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19년에 <의정연구> 제25권 제1호에 실린 길정아·하상응의 공동논문 '당파적 편향에 따른 책임 귀속'에 이런 대목이 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는 개인과 집단들이 정당을 통해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여 합의를 도출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진화하던 대의민주주의가, 유럽의 극우 포퓰리즘과 러시아·헝가리 등 신생 민주주의국가에 다시 등장한 권위주의,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같은 기존 정치 문법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윤석열 현상 역시 기존 정치 문법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지지자들은 그가 문재인 정권에 맞서고 있다는 이유를 주된 동기로 그를 '무조건적'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수적 유권자들이 보수 정당이 아닌, 범여권 진영의 '강골 검찰총장 출신'에게 지지를 보내며 여권은 물론이고 야권까지 당혹스럽게 만드는 윤석열 현상은 분명히 기존 문법으론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정치적 갈등이나 욕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게 된 민주주의의 위기를 고려하지 않고는 제대로 규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한국 정치상황도 윤석열 현상의 출현에 영향을 끼쳤지만,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위기가 보다 근본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이 위기가 해소되지 않는 한 유사한 현상이 앞으로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을 도출케 한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현상의 근본 대책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재정비하는 데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김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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