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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엔 주인잃은 전공노트…꿈도 희망도 안전부재에 스러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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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항 사망 이선호씨 누나 은정씨 인터뷰

부모님 걱정하고 취업고민하던 청년

안전외면한 일터에서 허망한 죽음 맞아

“다시는 이런 일 없어야” 가족들 애끓는 울음


한겨레

지난해 8월 이선호씨가 경남 통영으로 누나들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큰누나인 이은지(31)씨와 함께 펜션 앞 포토존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 둘째누나 이은정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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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살 대학생은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돈을 벌면 조카들에겐 과자를, 가족들에겐 짬뽕을 먹이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수학 과목을 잘 했고 대학 전공도 수학이었기에 수학교사에 도전해 볼까 하면서도, 취업난을 생각하면 기술을 배우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하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싶었고 사랑하는 누나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평택항으로, 식당으로 일 나가시는 부모님의 고생을 덜어드리고 싶어 했다.

이선호(23)씨의 이런 꿈은 지난달 22일 멈췄다. 경기도 평택항에서 컨테이너 내용물 검수 아르바이트를 했던 이씨는 이날 개방형 컨테이너 본체 틈새에 낀 나뭇조각을 제거하려고 컨테이너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300㎏ 무게의 컨테이너 날개가 넘어지면서 사고를 당했다. 문제의 컨테이너 날개는 접으려고 작동한 것도 아니었는데 바닥으로 떨어질 만큼 안전성이 미흡했고 사고 현장엔 지게차 사용에 따른 안전관리책임자와 신호수도 없었다. 선호씨는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에 안전교육 없이 투입됐다. 선호씨에게 지시를 내렸다는 원청회사 직원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관련기사 300㎏ 철판에 깔린 ‘삶의 희망’…재훈씨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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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냇동생 선호씨(왼쪽)와 둘째누나 은정씨(오른쪽)가 살가운 한때를 보내던 모습. 누나 이은정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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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호씨가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지 않았다면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안전이 부재한 일터는 청년과 그 가족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버렸을까. 9일 <한겨레>가 선호씨의 둘째 누나 이은정(29)씨의 목소리를 통해 선호씨의 삶과 꿈을 재구성했다.

지적장애 누나에겐 듬직, 다른 가족에겐 살갑던 막내


가족마다 선호씨를 부르는 별명이 달랐다. 엄마에겐 ‘선호 왕자님’, 아빠에겐 ‘주꾸미’, 누나에겐 ‘짱구’였다. 선호씨에겐 31살 큰누나와 29살 작은 누나가 있는데, 은정씨는 선호씨의 작은 누나다. 큰누나에겐 지적장애가 있는데, 선호씨는 8살 차이가 나는 큰누나를 보호자처럼 챙기는 듬직한 동생이었다.

“큰누나를 남들이 놀리거나 그러면 선호가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누가 말하지 않아도 누나 먹을 걸 챙기고 길 건널 때 자기가 바깥에 서고, 그런 모습이 기특해서 많이 예뻐했어요. 최근에 큰누나가 많이 아팠는데 우리 선호가 힘들어하는 가족들한테 ‘요즘에는 치료가 잘 되니까 너무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지 말자’고 달래줬어요. 그런데 나중에 친구들 얘기 들으니까 걔가 친구들한테 가족 얘기하면서 많이 울었다 하더라고요.”

큰누나에게 애틋한 만큼 다른 가족들에게도 살가웠다.

“선호가 막내여서 그런지 가족들이랑 친구처럼 지냈어요. 다 자라서도 엄마를 맨날 안아주고, 엄마가 선호에게 ‘아빠 볼에 뽀뽀해 주라’ 그러면 뽀뽀해 주고요. 그러면 아빠가 좋으면서도 ‘징그럽다’면서 웃고 장난치고 그랬지요. 선호야 춤 한번 춰 봐라, 그러면 춤도 춰 주고 그랬어요.”

선호씨는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서 부모님의 경제적 부담을 덜고 싶어했다. “대학에 갔는데 부모님께 매번 용돈 받기도 죄송하다”면서, 선호씨는 지난해 1월부터 아버지를 따라 평택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선호씨는 그 돈으로 친구들과 함께 지내던 자취방 월세도 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간식도 샀다.

“선호가 조카들 맛있는 거 사 주라고 제 손에 5만원씩 쥐여주고 그랬어요. 제가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러면, ‘누나, 나 이번에 평택항에서 일 많이 해서 돈 많다’고 그러더라고요. 걔는 돈을 벌면 주변에 더 베풀고 싶어 했어요. 엄마가 식당을 하시는데, 단골손님인 동네 삼촌들한테 치킨도 사고 잘 지냈어요. 제가 한 번은 ‘그래서 너는 언제 돈 모을래’ 그러면 선호가 ‘누나, 돈은 또 벌면 되는 거다’ 그러더라고요.”

시험공부 공책 들고 일터로 향했던 동생


선호씨는 흥이 많았다. 노래를 좋아하고 기타를 잘 쳤고, 고등학교 땐 학교에서 콘트라베이스도 배웠다. 은정씨는 “선호가 학교 축제 때마다 장기자랑에 나가서 1~2등을 하곤 했다”고 떠올렸다.

학과목 중에선 수학을 특히 잘했다. “우리 선호가요, 학교 다닐 때 수학 선생님도 몰랐던 거를 칠판에다 풀어서 선생님이 놀라고 그랬어요. 세무사나 회계사 이런 것도 해 보고 싶어했고요.” 수학과로 대학에 진학해서 성적 장학금을 받을 만큼 열심히 했다. 선호씨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공부하는 아이”였다. 청년들 취직이 어렵다는 말에 선호씨가 기술을 배울지 고민하면 아버지는 ‘기술직은 위험하고 힘드니 하던 공부를 쭉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택항에서 작업반장으로 오래 일했던 아버지는 다른 길을 권했다. 가족들은 선호씨가 수학 선생님이나 회계사, 은행원을 하면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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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오른쪽은 선호씨가 고등학생 때 쓰던 공책. ‘공부 열심히 해서 인서울하자’라는 다짐 문구가 적혀 있다. 위 왼쪽은 선호씨가 사망 당시 입고 갔던 웃옷에 들어 있던 시험지로 추정되는 문서. 아래는 선호씨가 아르바이트 중 쉬는 시간에 공부하기 위해 사고 당일 가져갔던 전공 관련 필기공책과 평소 쓰던 전공책. 누나 이은정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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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일에도 선호씨는 시험공부를 한다며 사고 현장에 노트북과 공책, 연필을 챙겨서 갔다. 그가 수업시간에 필기하던 공책엔 수학 공식이 빼곡했다. 이런 소지품은 며칠이 지나 주인이 아닌 아버지 손에 들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22일)도 낮에 선호가 영상 통화를 걸어 왔어요. 그래서 조카들 얼굴 보여주고 대화하다가 제가 애들을 봐야 해서 ‘선호야, 나중에 통화하자’ 그랬어요. 왜냐면 걔는 언제든지 통화할 수 있으니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저녁 때 어머니는 “선호가 좋아하는 시금치 나물을 무쳐 놓고”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은정씨가 어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다시 울렸다. ‘선호가 죽었다’며 울부짖는 어머니 목소리를 은정씨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너무 말이 안 되어서 엄마가 왜 거짓말을 하지, 그렇게 생각했어요.”

선호씨가 애틋하게 여겼던 큰누나는 사고 뒤 2주가 지나도록 선호씨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말버릇처럼 “선호 언제 오지?” 하고 묻는다. 큰누나는 아직 사고 소식을 모른다. 가족들이 당장은 사실을 전할 엄두가 안 나서 ‘선호가 대학 시험 치러 갔다’고 말해둔 상태다.

진상규명 뒤 빨리 쉬게 해주고 싶어


은정씨는 가족들이 이제 그만 장례를 마치고 선호씨를 보내주고 싶어 한다고 했다. 선호씨에게 컨테이너에 올라갈 것을 지시했다는 원청회사 동방 소속 지게차 기사가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길 바랐다. “부모님이 막냇동생 뒷바라지하려고 돈 벌러 다니는 건데 걔가 없어졌잖아요. 몇천억을 준대도 필요 없어요. 회사가 제발 좀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면 좋겠어요. 엄마도 ‘네 동생 추운 거 엄청 싫어하는데 언제까지 저기 있어야겠냐’ 그래요. 저도 마음의 준비는 안 됐지만 그래도 이젠 동생 좋은 곳으로 보내주고 싶어요.”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해야 한다고 믿기에 선호씨의 장례식은 사고 발생 후 18일이 되도록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가족들은 선호씨를 잃은 아픔을 다시는 다른 사람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 선호뿐만 아니라 앞으로 누구에게도 이런 일이 안 일어났음 좋겠어요. 너무 어리잖아요. 인제 대학 가서 진짜 앞으로 해야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을 거잖아요. 이제 꽃 피울 앤데 너무 아깝잖아요. 누구든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안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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