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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스마트폰 때문에 지팡이, 휠체어를 못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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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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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5호선 지하철을 탄 날이었다. 모처럼 좌석에 여유가 있었다. 한 남자가 타더니 맞은편 좌석 앞에 섰다. 내 옆 여러 자리는 비어 있었다. 서 있는 남자는 분명 타면서 빈 좌석을 보았을 텐데… 왜 안 앉지? 의문이 풀렸다. 뒷모습만 보이는 그의 손에 흰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앞에 앉은 승객들은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뒷 좌석이 비었어요. 앉으시겠어요?” 그의 옆에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 자리가 있나요?” 그는 반갑게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종로3가 역에서 “고맙습니다”라며 내린 그는 승강장 점자블록을 따라 걷다가 또다시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과 부딪혔다.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한 고등학생 지인은 길을 다닐 때 긴장한단다. 혼잡한 길에선 혹시 사람 발이라도 밟을까 싶어 바닥을 보며 다닌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볼 여력 따위는 없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우선 긴장한다. 살짝 비켜주면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데도 스마트폰을 보다가 부딪히는 경우가 많단다. 심한 경우 “눈 똑바로 뜨고 다녀 이 xx야”라는 욕도 듣는단다. 그러니 휠체어를 탄 사람들은 ‘지나갑니다’ ‘죄송합니다’ ‘잠깐만요’라며 목소리가 커진다.

이쯤 되면 스마트폰이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실제로 작년 서울연구원이 서울시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보행 중 스마트폰을 본다는 응답이 69%였고 스마트폰을 보는 타인과 충돌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74%에 달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었다.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중이 67%나 됐다. 실제로 지도를 본다든지 스마트폰을 꼭 써야 할 경우도 있으니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스마트폰을 보며 ‘내 세계’에 빠져 있는 동안 타인의 공간을 존중하고 타인의 심정을 이해할 여유가 줄어드는 게 더 큰 문제다.

흰 지팡이 사례를 페이스북에 공유하자 여러 시각장애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무조건 여기 앉으라고 팔을 잡아 끄는 분도 있어요.” “자리가 비어 있는지 물으면 무조건 일어나는 분이 있어요. 무작정 양보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서 감사하지만 부담스러워요. 그래서 보통 앉기를 포기하고 기둥 옆에 서서 가죠.”

‘타인의 공간’과 ‘심정’을 존중한다는 건 무엇일까. 물론 직접 경험이 있으면 좀 더 쉽다. 언젠가는 만원 지하철 안에서 초기 임산부로 보이는 임산부 배지를 단 여성이 얼굴이 하얗게 되어 있는 걸 보고 자리를 양보했다. 이 경험을 주변의 한 남성분에게 들려주니 “임산부 배지가 있어요?”라며 반문했다. 자가운전 남성들은 배지 존재 자체를 모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꼭 직접적 경험이 있어야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다. 휠체어나 흰 지팡이나 임산부 배지가 없어도 보이지 않는 아픔이나 질병,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공공 공간은 나만의 세계가 아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자. 많은 경우 스마트폰에서 얼굴을 드는 게 첫 시작이다. 100%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할 수는 없다. 내가 아는 배려가 사실은 배려가 아닐 수 있다. 이해하고 도움을 주고 싶으면 상대방에게 먼저 물어보자. 내가 무지할 수 있으며, 그러나 배울 수 있다는 것. 그것만이 진리다.
한국일보

홍윤희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제작 협동조합 '무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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