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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남친이랑 뭘 하셨길래 피곤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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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도 교사도 소셜미디어 세대… ‘디지털 교권 침해’ 심각하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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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소셜미디어 친구 받아주지 마세요.”

경기도 고양시의 한 중학교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이모(28)씨는 어느 날 한 학생이 몰래 찾아와 이런 말을 하는 걸 보고 의아해했다. 알고 보니 이씨와 친구를 맺은 일부 남학생들이, 이씨의 페이스북 과거 사진을 캡처해 돌려보며 낄낄댔다는 것이다. 이씨는 “깜짝 놀라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비공개로 전환했다”고 했다.

디지털 기기와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1990년대생 교사와 2000년대생 학생들이 공존하는 학교에서 ‘디지털 교권 침해’가 점차 커지고 있다. 과거 교실 안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디지털 공간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본지가 만난 90년대생 교사 10명 중 8명은 ‘카카오톡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한 교권 침해를 겪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이들은 카카오톡이나 소셜미디어 ‘프로필’을 숨기는 것은 이제 기본이라고 했다. 간혹 연인과 찍은 사진이라도 있으면 학생들이 성희롱에 가까운 짓궂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경기도 한 중학교의 20대 담임교사는 “수업 때 별 뜻 없이 ‘선생님 피곤하다’고 했더니, 한 남학생이 ‘밤에 뭘 하셨길래 피곤하세요’ ‘남자 친구랑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길래’라고 해 혼을 낸 적이 있다”고 했다. 성(性)에 관심이 많을 때긴 하지만, 카카오톡이나 소셜미디어 프로필 등을 근거로 대며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 엄모(28)씨도 “최근 여중으로 학교를 옮기면서 업무용 휴대폰을 한 대 더 만들었다”며 “학생들이 프로필이나 소셜미디어를 보고 ‘여자 친구랑 한강에서 데이트했냐’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게 난감했다”고 했다.

24시간 소통이 가능한 디지털 특징상, 학생들이 밤늦게 연락을 하거나 문자를 보내는 일도 잦다고 한다. 올해 경기도 수원시의 한 초등학교에 처음 발령받은 임모(24)씨는 “휴대폰 번호를 알려줬더니 학생들이 밤늦은 시간에도 중요하지 않은 내용으로 연락을 해온다”며 “요즘 초등학생들은 ‘밤에 연락하면 실례’라는 개념이 없어 더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충북의 한 초등학교 5학년 담임교사 김모(25)씨도 “근무시간 외에도 오는 학생들의 연락이 담임 업무 중 가장 힘들다”고 했다.

교사·학생 간 소통뿐 아니라 학교 폭력까지 ‘카카오톡’에서 벌어지는 것도 교사들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일일이 모니터링하기 어려운 사이버 공간의 책임도 고스란히 교사에게 지워지기 때문이다. 충북의 초등학교 6학년 담임 박모(28)씨는 “학교에서 학생들끼리 단톡방을 만들도록 두지 않고 반드시 교사도 참여하도록 하고 있는데, 6학년쯤 되면 다들 몰래 단톡방을 만든다”며 “지도했다는 내용이라도 남기기 위해, 학생들에게 당부한 카톡 등을 모두 기록으로 남겨놓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요새 교사들 사이에선 ‘적어야 생존한다’는 ‘적자생존’이란 말까지 나온다”고 했다.

디지털 교권 침해를 피하기 위해 최근 젊은 교사들 사이에선 개인용·업무용 폰을 따로 쓰는 ‘투 폰(two phone)’이 필수처럼 통하고 있다. 각 지역 교육청에서도 교원 업무용 안심번호 등을 제공하고 있다.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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