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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왜 하필 ‘5·18 메시지’로 침묵 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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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배지현의 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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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20일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광주 고등·지방검찰청을 방문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5·18 단체 소속 어머니가 면담을 요구하는 것을 뒤로 하며 이동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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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1돌을 맞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은 모처럼 여야 모두 마음을 모아 ‘광주 정신’을 기리는 뜻깊은 자리로 기억될 전망입니다. 더불어민주당 뿐 아니라 국민의힘이 노력한 덕분입니다. 지난 1년 간 호남에 진정성을 보이려 애를 써왔던 정운천·성일종 두 국민의힘 의원은 5·18 민주유공자 유족회가 주최하는 추모제에 공식 초청을 받기도 했고, 자주 호남을 방문했던 국민의힘 지도부 역시 광주만 가면 머쓱해졌던 분위기를 이젠 어느 정도 떨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여야가 호남에 공을 들이는 와중에 뜻밖의 인물이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입장을 내놨습니다. 바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입니다. 지난 3월 4일 사퇴 이후 ‘공개 메시지’를 내지 않고 물밑에서 움직여온 윤 전 총장은 지난 16일 몇몇 언론에 입장을 밝혔습니다. “5·18은 현재도 진행중인 살아있는 역사다.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이 우리 국민들 가슴 속에 활활 타오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며, 어떠한 형태의 독재와 전제든 이에 대한 강력한 거부와 저항을 명령하는 것이다.”

이날 윤 전 총장의 메시지를 곰곰이 뜯어보면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일단은 형식입니다. 통상 정치인들이 자신의 입장이나 메시지를 밝히길 원할 경우엔 페이스북 같은 에스엔에스(SNS)를 이용하거나 보도자료를 내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은 그처럼 모두에게 공개되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개별 언론의 문의에 본인이 직접 답문을 보내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미리 깔끔하게 다듬은 문장을 ‘개별적으로’ 받아본 언론들은 “5·18 메시지로 대선 행보를 본격화했다”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공개 행보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아리송한 ‘같기도 행보’로 관심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쓴 것입니다. 윤 전 총장 쪽은 “아직 언론공보도 두지 않은 상태고, 캠프도 꾸려지지 않았다”며 “여태껏 그랬듯 윤 전 총장의 ‘페이스’대로 간다”고 설명했습니다.

윤 전 총장의 ‘숨은 듯 숨지 않은 듯한’ 행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유에프시(UFC)가 적성에 맞다(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빨리 등판해야 수입산 육우 아니라 국내산 육우가 된다”(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는 등 여러가지 말들이 소낙비처럼 쏟아지고 있지만, 윤 전 총장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어차피 언론들은 두달 넘게 잠행 중인 윤 전 총장의 ‘입’을 쳐다보며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그럼 115글자의 문자메시지에 담긴 뜻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문장을 읽어보면, 계엄군에 맞서 민주화를 외치며 피를 흘린 이들에 대한 ‘추모’라기보다는 독재에 맞서 싸우자는 ‘독려’ ‘선동’에 가깝습니다. 특히 5·18 메시지에 담긴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 표현은 윤 전 총장의 퇴임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당시 윤 전 총장은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저는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즉, 윤 전 총장은 5·18 메시지로서 문재인 정부를 에둘러, 그러나 강하게 비판하려고 한 셈입니다.

그럼 왜 타이밍이 하필 5·18일까요? 호남을 중도층 외연 확장의 교두보로 삼는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윤 전 총장 역시 호남의 마음을 얻으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윤 전 총장을 바라보는 호남의 시선 또한 부정적이지는 않다는 점도 고려한 것 같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밀리곤 있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두자릿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5·18 메시지가 나오자, 윤 전 총장 지지자들은 윤 전 총장이 과거 서울대 법대 재학시절 모의형사재판에서 판사 역할을 맡아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던 과거 이력 등을 담은 글을 부지런히 공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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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20일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광주고등·지방검찰청을 방문, 마중나온 검찰 관계자와 인사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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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뜨거운 시기에 딱 맞춰 발언함으로써 ‘나 여기 있소’라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시키려는 의도로도 볼 수 있습니다. 총장직에서 물러난 뒤 정치권 안팎에선 그의 정계진출 예상 시점을 놓고 처음엔 ‘보궐선거 뒤’라고 했다가, ‘5월 중순’ ‘6월초’ ‘6월말’로 계속 늦춰 잡고 있습니다.

윤 전 총장을 목빼고 기다렸던 국민의힘에서도 스멀스멀 ‘플랜 비(B)’ ‘자강’ 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윤 전 총장을 향해 ‘별의 순간을 잡은 것 같다’고 했던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마저 17일엔 갑자기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를 언급하며 “흙수저’에서 시작해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있는 인물” “대한민국이 어떻게 가야 할지에 대해 설계도 한 것으로 보인다” 등의 칭찬을 늘어놓았습니다.

윤 전 총장은 광주 메시지를 내놓으면서도, 언제 광주에 가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윤 전 총장 쪽은 “정계 진출을 선언하면 우선적으로 광주에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광주 메시지는 이제 곧 윤 전 총장이 전면에 나설 시점이 멀지 않았음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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