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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시평] 효율과 평등은 상충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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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오늘날 가장 큰 역설은 사회와 시장의 관계, 그리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시장은 사회 발전에 기여해야 하지만 오히려 사회가 시장을 위해 존재하는 현실은 분명 역설적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민주주의가 퇴조하는 것 또한 처음부터 예견됐던 역설이다. 1인 1표의 민주주의 원칙과 1원 1표의 자본주의 원칙은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설 이면에는 효율과 평등은 본질적으로 상충적이라는 사고가 깔려 있다. 시장과 자본주의는 효율을, 사회와 민주주의는 평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정치적인 지지를 받아 정책 기조로 채택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역임한 경제학자 아서 오쿤은 1975년 'Equality and Efficiency: The Big Tradeoff'라는 저서에서 '새는 양동이(leaky bucket)' 가설을 통해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어떤 정책적 시도도 실질적으로 불평등 해소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하면서 경제 효율만 낮춘다는 논리를 펼쳤다. 효율과 평등의 상충관계를 강조한 이러한 내러티브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주도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면서 낙수효과를 통해 번영을 가져온다는 기대감을 확산시켰으나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오류임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내러티브의 위력 때문에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 이러한 사고가 여전히 지지를 받았다. 그러다가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차원에서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더 이상 용납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다는 자성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효율과 평등의 관계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식 변화에 크게 기여한 사람은 '21세기 자본'으로 유명해진 토마 피케티,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그리고 불평등 문제의 대가 앤서니 앳킨슨 교수였다. 이들은 실증 자료와 이론적 근거를 바탕으로 효율과 평등은 상보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최근 헤지펀드의 제왕 레이 달리오도 자본주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불평등을 완화하는 재정·금융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우리는 효율과 평등은 상보적이라는 새로운 내러티브가 자리 잡아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글로벌 경제가 대중 소비를 근간으로 순환하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대중 소비가 줄어들면 매출 감소, 이익 감소, 고용 감소, 투자 위축, 그리고 다시 소비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탈피할 방도가 없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그러니 효율과 평등이 상충적이므로 효율을 위해서는 상당한 불평등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은 이 간단한 논리조차 외면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모두의 번영을 위해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일정 수준의 불평등은 불가피하지만 효율을 위해 과도한 불평등을 옹호할 근거는 없다.

우리가 이 문제에 새삼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본격적인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여러 분야에서 인간을 대체하게 되는 경우에도 신규 일자리가 생겨나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오히려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렇지만 이는 단기적인 예측이고, 장기적으로는 범용 인공지능 수준에 근접해 결국 일자리가 소멸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일자리 소멸에 관한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일자리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곧 더 극심한 불평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시대를 대비하려면 효율과 평등은 상충적이 아니라 상보적이라는 사실을 유념하는 가운데 경제정책이 추진돼야 할 것이다.

[이영환 교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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