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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사랑한 佛발레단, 한국토종 첫 수석 발탁 이유…뒤퐁 단독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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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렐리 뒤퐁 파리 오페라 발레단 발레 감독. [l’Opéra National de Paris 공식 홈페이지]


“박세은은 완벽한 모범사례다.”

프랑스의 국립발레단 격인 파리 오페라 발레(l’Opéra National de Paris)의 발레 감독인 오렐리 뒤퐁이 중앙일보에게 15일(현지시간) 보내온 e메일 답변의 일부다. 역시 발레리나 출신인 뒤퐁 감독은 지난 10일, 박세은 무용수를 프랑스 발레의 자존심인 이 발레단의 수석으로 승급시켰다. 박세은은 이로서 파리 오페라 발레의 첫 아시아계 수석 무용수가 됐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1661년 설립한 왕실 발레학교를 전신으로 한 이 유서깊은 발레단은 수석 무용수를 ‘별(l'Étoile)’이라 부른다. 박세은은 말그대로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스타 무용수(la danseuse étoile)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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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박세은, 에투알 승급 직후 감격해하고 있다. [박세은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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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퐁 감독의 생각이 궁금했다. 역시 발레단의 에투알로 2015년 무대에서 은퇴한 뒤 이듬해 발레 감독을 맡은 그는 뼛속까지 발레리나다. 세계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한국 언론 매체와 직접 인터뷰한 적은 없다. 그는 e메일에서 “한국에도 파리 오페라 발레를 아껴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점에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박세은의 에투알 승급은 뒤퐁 감독과, 발레단의 총감독 격인 알렉산더 니프 예술감독의 깜짝발표로 공개됐다. 당일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이 끝난 직후다. 에투알은 아니지만 줄리엣으로 열연한 박세은을 앞에 두고 니프 감독이 마이크를 잡았고, “뒤퐁 감독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박세은을 에투알로 승급한다”고 발표했다. 박세은은 눈물을 흘리며 뒤퐁 감독과 포옹했다.

뒤퐁 감독은 박세은에게서 어떤 점을 봤을까. 파리 오페라 발레단은 자신들만의 단정하고도 적확한 스타일을 고수하는 단체다. 스타일을 지키기 위해 무용수는 백인 일색이었고, 입단 역시 발레단이 운영하는 아카데미 졸업생 위주로 뽑아왔다. 박세은은 서울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국내 순수 토종인데다, 프랑스와는 다른 러시아 바가노바 스타일로 발레를 배웠다. 지금도 발레단의 에투알 중 박세은만이 유일한 비(非) 백인 무용수다. 뒤퐁 감독에게 물었다.

Q : 승급 결정을 내린 배경은.

A : “세은을 수년간 지켜봤다. 세은이 무용수로서 엄청난 성장을 이뤄내는 걸 직접 봤고, (바가노바는 물론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스타일을 망라한) 모든 스타일의 춤을 소화할 수 있음을 봤다.”

Q : 파리 오페라 발레단 정통 코스를 밟지 않았는데.

A : “세은은 물론 우리의 아카데미를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겐 재능이 있었고, 우리만의 ‘프랑스식 스타일’을 완벽하게 소화할 능력이 있었고, 실제로 소화를 해냈다.”

박세은 무용수가 파리 오페라 발레단 출신이 아니라는 점을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승화시켰다는 의미다. 박세은 무용수의 피 땀 눈물이 읽히는 대목이다. 박세은 무용수는 실제로 승급 직후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파리 오페라 발레단 무용수들의 스타일을 존중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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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뒤퐁 감독이 갈라 공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정확하고도 파워풀한 테크닉을 선보인 최정상 무용수였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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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은 무용수는 2011년 연수생으로 입단한 뒤 이듬해 정단원, 이어 2016년엔 에투알 바로 아래 등급인 제1무용수인 라 프르미에르 당쇠즈 자리로 빠르게 승급을 거듭했다. 그러나 이후 5년 간 에투알 승급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2015년 발레단의 이단아로 감독을 맡았던 벵자맹 밀피예 당시엔 캐스팅에서 한때 주역에서 밀려나는 아픔도 겪었다. 그러나 무용 평론가인 한정호 에투알 클래식 대표에 따르면 박세은은 직접 밀피예 감독에게 면담을 신청해 자신의 실력과 능력을 어필했고, 현대무용에서도 실력을 입증해냈다. 같은 발레리나 출신인 뒤퐁 감독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봤고, 5년만에 박세은을 최고의 별로 지명했다.

뒤퐁에게 박세은 에투알의 장점을 세 가지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뒤퐁 감독은 한 가지를 더 꼽았다.

A : “항상 열심이고(travailleuse), 겸손하며(humble), 테크닉이 뛰어나며(technicienne) 예술성이 있다(arti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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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렐리 뒤퐁(오른쪽)의 에투알 시절. 왼쪽은 당시 발레 감독인 브리지트 르페브르(Brigitte Lefevre)다. 르페브르 전 감독은 박세은을 발탁한 인물이기도 하다. [Aurelie Dupont instr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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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투알 승급은 박세은에게 끝이 아닌 시작이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의 파리 오페라 발레단 에투알 무용수로서의 기량을 발휘해야 한다. 해외 무용 개런티가 워낙 높아 한국에선 팬데믹 이전에도 파리 오페라 발레단을 만나기 어려웠다. 발레 팬층이 두텁고 지원도 탄탄한 일본에 자주 투어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첫 아시아인 에투알이 일본 아닌 한국에서 나왔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한때 순혈주의로 비판받았던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그 바람의 원천 중 하나가 뒤퐁 감독이다. 그는 이번 e메일 인터뷰에서 “내가 발레단의 리더로서 오늘날 중시하는 것은 다양한 재능과 다른 문화에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라며 “세은은 완벽한 모범사례이며 앞으로도 다른 후배들이 그 흐름을 이어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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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은의 완벽한 '파세' 동작. 2006년 서울예고 2학년생 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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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퐁 감독은 박세은 승급 소식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도 자세히 전했다. 승급 소식에 감격한 세은 씨를 꼭 껴안고 등을 두드려준 뒤 어서 관객에게 인사하라고 인도한 뒤 박수를 보내는 영상도 올렸다. 뒤퐁 감독은 “시간은 많이 흘러갔지만 (박세은의)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며 “꾸준함과 의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희망이 우리와 함께 했다”고 적었다. 그리곤 “세은, 브라보”라고 덧붙였다.

뒤퐁 감독 스스로가 무릎 부상으로 인한 슬럼프를 이겨냈고, 다양한 장르의 무대 경험이 있기에 앞으로 발레단의 미래는 밝다. 한정호 대표는 “약점을 연습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안무가와 동료, 나아가 관객을 감동시키는 능력이 비범한 무용수였다”며 “후배들이 슬럼프에 빠지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 관대하고 솔직한 자세로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하는 등, 무용수 시절부터 리더십을 발휘해왔다”고 분석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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