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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는 정권의 도구가 아니다 [박정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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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말만 군대지 오합지졸이었다."

'콜디스트 윈터(Coldest Winter)'는 퓰리처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한국전쟁의 참상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가슴 아픈 대목이 나온다. 6·25전쟁 당시 남북 군사력을 비교한 장면이다. 당시 북한은 2차 세계대전 최고의 무기로 꼽히던 소련 T-34 전차 등 막강한 화력과 실전 경험을 쌓은 인민군 등 20만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우리 군은 자신을 지키기에도 역부족이었다. 글도 못 읽고 거리에서 배회하는 젊은이들을 끌어모았기 때문이다. 훈련조차 받지 못하고 전쟁터에 내몰린 탓에 탈영이 속출했지만 이들을 단속해야 할 군 장교들은 부패로 얼룩져 있었다. 전투장비 또한 포병 화력은 전무했고 전폭기도 없다시피 했다. 우리가 북한의 기습 침략을 받은 것은 김일성의 대남 적화전략과 오판 때문이지만 우리의 군사 역량 부족도 빌미를 줬던 셈이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군사력은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일본에 이어 6위이고 국방예산도 연간 52조원 규모다. 그런데도 안보는 불안하다. 현 정권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미·북 대화 재개에 매달려 냉혹한 안보현실을 여전히 외면한 탓이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가 14일 북핵 폐기를 촉구한 것과 대조적이다. 핵 무장한 120만의 북한군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확고한 안보태세와 철통 같은 국방은 국가 존립과 국민 생존의 기반이다. 하지만 정부는 김정은 정권을 자극하지 않으려 자신들 진영 논리에 맞춰 안보를 정치도구화하고 있다. 2018년 대화 국면이 시작된 뒤 대북협상과 코로나19 상황을 이유로 키리졸브·독수리훈련·을지훈련 등 안보의 핵심 축인 한미연합군사훈련을 폐지·축소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미연합사령관이 고별사에서 "평시에 땀을 흘려야 전시에 피를 흘리지 않는다"고 충고했지만 마이동풍이다.

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군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적의 도발을 사전에 저지하는 차단역랑(Deterrence Power)과 적 도발 시 즉각 반격하는 보복역량(Retaliation Power)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한미훈련 축소와 함께 대북 확성기 철거, 서해5도 방어시설 철거, GP 철수, 군 12만명 감축, 전방사단 감축 등으로 군 역량이 위축되면서 연합방위 태세는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 상황이다. 군사력이 아닌 대화로 나라를 지킨 경우는 어디에도 없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지적처럼 로마군이 세계를 제패하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몽고메리 장군이 알알라메인 전투에서 독일 로멜 장군의 아프리카 군단을 격파할 수 있었던 것은 하루 10시간 넘는 혹독한 군사훈련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은 군의 기강과도 맞닿아 있다. 최근 군 부실 급식과 성폭력 등 심각한 군기문란이 불거진 데는 위계질서 못지않게 대규모 실기동 훈련 중단으로 느슨해진 군내 규율이 영향을 미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이 같은 군 기강 붕괴는 현 정권이 박찬주 전 육군대장을 비롯해 유능한 장성들을 적폐로 몰아 내쫓은 탓이 크다. 군기를 바로잡고 정예 강군을 키우려는 군 지휘관들을 '군내 갑질'을 핑계 삼아 퇴출시키고 정권과 코드를 맞춰 장병 복지와 후생을 외쳐온 인사들만 중용하면서 군의 기강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이명박·박근혜정부 7년 동안 우리 국방과 안보는 참담한 수준으로 무너졌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군내 각종 사건사고는 정권의 안보 의지와 능력을 의심케 한다"고 질타했다. 문 대통령의 지적처럼 국가 존립과 국민 안전을 지키려면 첨단무기보다 정권의 안보 수호 의지가 더 중요하다. 지금처럼 현 정권이 정치적 목적에 사로잡혀 안보에 눈을 감고 달콤한 평화데탕트만 외치면 군의 사기가 꺾이고 군 조직이 와해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제라도 군이 상시전투태세(Fight Tonight)를 갖추고 신뢰받는 강군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무너진 안보시스템을 복원해야 한다. 70여 년 전처럼 우리 군이 "오합지졸"이라는 조롱을 들어선 안 된다. 조국을 위해 피 흘려 싸운 전몰·참전용사들에 대해서도 국가가 끝까지 보훈을 책임져야 한다. 그것이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장미보다 짙은 피를 뿌리고 외딴 골짜기에서 스러져간 호국영령들 넋에 보답하는 길이다. 자유와 평화는 거저 오지 않는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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