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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에 시한부 선고, '멸망' 만난 후 제대로 살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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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36] tvN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말>

"살고 싶어. 나 진짜 너무너무 살고 싶어." (10회, 동경)

시한부를 선고받은 동경(박보경)과 세상 모든 죽음의 이유인 멸망(서인국)의 사랑을 담은 tvN 월화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동경은 10회 말미 마침내 '살고 싶다'는 진심을 드러낸다. 커다란 눈망울에 슬픔을 머금은 듯하면서도 너무나 차분하게 죽음을 준비해온 동경의 고백에 나 역시 울컥했다. 하지만 애써 참아온 진심을 드러낸 후에도 동경은 동요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들과 충만한 시간을 보내며 끝까지 자신과 타인에 대한 품위를 지킨다.

사실 드라마 첫 회부터 동경의 반응은 특별했다. '수술 안 하면 3개월, 수술하면 1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그녀는 그저 자신의 할 일을 한다. 죽음을 수용하기까지의 심리적 과정인 부인-분노-타협-우울도 티내지 않고 겪어내며 담담히 자신의 일상을 살아낸다. 전보다 자기주장이 늘긴 했지만, 도를 넘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과 남을 돕는 모습도 그대로였다. 멸망이 자주 말했듯 '살려달라고 하지 않는' 동경의 태도는 일반적으로 죽음을 마주할 때 예상되는 행동과는 너무 달랐다.

어떻게 동경은 사랑하는 이들과 삶에 대한 애착을 간직한 채로, 다가오는 죽음을 이토록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걸까? 죽음을 대하는 동경의 자세를 탐구해본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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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한부 삶을 사는 동경과 모든 사라지는 것들의 이유인 멸망의 사랑을 담은 tvN 드라마 <어느 날 우리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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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불안'은 자신과 타인의 죽음과 관련된 생각들을 떠올릴 때 갖게 되는 불쾌하고 두려운 정서 상태를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의 죽음뿐 아니라 장례식, 시체, 묘지, 치명적인 병 등 죽음과 관련된 것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불쾌한 정서를 느낀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죽음 불안'이야 말로 모든 인간이 느끼는 보편적인 불안이자, 인간이 겪는 다양한 심리적 어려움의 근본적인 원인이라 입을 모은다.

우리가 죽음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죽음이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삶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자기'를 인식하며,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는 능력을 지닌 인간은 '자기 자신과 세상이 지속된다'는 전제하에 살아간다. 즉, 나 자신과 세상이 계속해서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신념체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죽음은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신념체계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이는 삶의 토대를 뒤흔든다. 때문에 '죽음' 혹은 '죽음과 관련된 것'은 우리를 늘 불안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살면서 형성하는 대부분의 행동 양식은 이런 죽음 불안을 극복하려는 노력과 관련이 있다. 노화를 두려워하고, 건강을 염려하는 것, 특정한 대상에 대한 공포나 불안, 공황장애 등은 모두 죽음을 암시하는 느낌에 대한 불안과 관련 있는 심리적 현상들이다. 알코올이나 약물 혹은 게임 중독, 도박 같은 다양한 중독 현상 역시 죽음에 대한 불안을 회피하려는 심리적 기제에서 비롯된다. 일에 몰두해 업적을 쌓으려 하고, 자기 자신의 자존감을 드높여 좋은 평가를 받으려 하는 것, 자신을 철저히 관리해 완벽해지려 하는 것 등 역시 기저에는 '강해지고 위대해져서 죽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려는' 심리가 깔려 있다.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근본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불안을 감내해야 하는 삶'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과 관련이 있다.

드라마 초반 멸망은 자주 동경에게 "너는 나 사랑하지 못해, 모두 날 원망하거나 원하지"라고 자주 말한다. 이는 사람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매우 잘 표현한 대사다. 즉, 사람들은 죽음을 원망하며 회피하려하거나, 이를 견디는 게 힘들어 죽음을 원할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동경은 이런 보편적인 것들을 정면으로 위반한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담담히 수용할 뿐 아니라 죽음을 상징하는 존재인 멸망을 사랑하기까지 한다.

조용한 자아를 지닌 동경의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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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경은 죽음 앞에서도 삶의 순간을 따스하게 바라본다. ⓒ 송주연



어떻게 동경은 '죽음'을 사랑할 수 있었던 걸까? 이는 동경이 지닌 성격적 특징과 관련 있어 보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람은 '자기 인식'이 가능한 존재로 자신을 긍정적인 존재로 자각하고픈 욕망을 지니고 있다. 이는 '자존감'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자기 자신이 '괜찮은 사람'임을 느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존감을 고양시킴으로써 삶에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과 불안들(결국엔 죽음불안에서 비롯되는 것들)을 희석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죽음과 직면하지 않았을 때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삶을 이끈다. 하지만, 죽음이 닥쳐오면 달라진다. 심리학자들의 여러 연구에 따르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죽음의 위협을 크게 지각하고, 이에 저항하려 하며, 자신이 죽음에 의해 더 많이 훼손된다고 느낀다. 반면, 자기 자신을 고양시키려는 의지가 크지 않은 사람들은 죽음과 같은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보다 덜 방어적으로 대처한다.

심리학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이 적고, 타인과 외부상황에 덜 방어적인 형태의 자아를 '조용한 자아(quiet ego)'라고 부른다. 이는 긍정적인 자아상을 갖기 위해 애를 쓰기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인 '겸손'과 관련되는 자아다. '겸손'은 긍정심리학이 발견한 인간의 24가지 강점 중 하나로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있는 그대로 자신을 수용하며, 삶의 불완전성을 인식하고 열등감과 오만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성격적 특성으로 정의된다. '겸손'의 미덕을 지닌 사람은 타인 혹은 우주적 존재와 연결감을 느끼며 수용적인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역경 속에서도 안정적인 정서를 유지하는 특징을 지닌다.

나는 동경이 시한부 선고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멸망을 알아보며 그를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녀가 '겸손'에 바탕을 둔 '조용한 자아'를 지닌 인물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경은 12회 병원에 입원하러 가는 길에 사과 파는 할머니를 돕고, 난소암에 걸린 작가를 위로하며, 복도에서 병 뚜껑을 열지 못하는 소녀신(정지소)을 돕는다.

동경의 주치의는 이런 동경에 대해 "남 생각 참 많이해"(12회)라고 언급하는데 이는 동경의 자아가 자기 자신을 향하기보다는 타인과 외부에 열려 있음을 잘 짚어낸 말이었다. 즉, 동경은 자기 자신을 고양시키기보다는 겸손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조용한 자아'를 지닌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드라마 곳곳에서 보여지는 동경이 실패를 수용해 내는 모습에서도 잘 드러난다. 아마도 동경은 이렇게 겸손하고 조용한 자아를 지녔기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신적인 존재(멸망, 소녀신)와 연결되고 자신의 운명을 평화롭게 수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죽음을 수용할 때 생기는 일

그렇다면 죽음을 수용하고 나면 어떤 일들이 생길까? 멸망을 사랑하게 된 후 동경의 모습은 죽음을 수용한 사람의 여유와 힘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먼저, 동경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6회 동경의 병을 알게 된 동생 선경(다원)은 누나에게 일을 쉬고 치료를 받으라고 권한다. 하지만 동경은 "재미없었는데 내가 관두는 게 아니라 못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희한하게 하고 싶어지네"라고 답한다. 일상의 매 순간을 더욱 즐기게 된 것이다.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은 부당함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진다. 아마도 '조용한 자아'를 지닌 동경은 이전까지 모두를 되도록 '좋게' 이해하고 넘어가려 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부당함에 눈감는 것은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살아있는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된 동경은 편견과 혐오로 똘똘 뭉친 무례한 작가와 부당한 대우를 하는 회사 대표 등 삶을 침범해 오는 사람들에게 당당히 맞서며 명확한 경계를 설정한다. 반면, 삶을 함께 나눈 소중한 사람들과는 더욱 충만한 시간들을 보낸다. 동경은 10회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실천하는데, 이는 동경의 일상과 관계를 더욱 풍성히 만들어 준다.

이처럼 동경은 죽음을 직면하고 이를 받아들인 후 삶을 더욱 '제대로' 살아간다. 10회 멸망이 자신의 소원이 "니가 사는 거. 내가 널 살게 하는 거"라고 말했을 때, 동경은 "그건 이미 하고 있어. 이미 니가 나를 제대로 살게 하고 있어"라고 답한다. 이는 죽음 덕분에 우리의 삶이 더 충만해질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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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경이 사랑하게 된 멸망은 무섭기는 커녕 다정다감한 애인이 되어준다.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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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이토록 담담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동경의 모습을 보면서도 불안을 느낀다. 시한부 인생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내게 '죽음에 대한 불안'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드라마를 통해 죽음을 조금은 덜 미워하게 된 것 같다.

드라마는 내내 동경의 생기와 멸망의 지루함을 비교해 보여준다. 죽을 수 없는 '멸망'이 무료해하고 의미없어 하는 것과 달리 '끝이 있는' 인간들, 특히 끝이 다가온 동경은 더 열심히 사랑하고 연민하며 살아간다. 그러니 '죽음'을 조금은 다르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이라는 조건이 있기에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니 말이다.

살아있음을 충만히 즐기기 위해서라도 죽음에게 마음을 열어보자. 막상 마음을 열고 바라보면 동경이 사랑한 멸망처럼 죽음은 그다지 무섭지 않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 참고문헌 : 권석만 저, <삶을 위한 죽음의 심리학>, 학지사 (2019)

송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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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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