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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에 야구만 보러 갈까 [이용균의 베이스볼 라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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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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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구단의 한 마케팅 담당자가 말했다.

“요즘 야구장은 그냥 동물원 같아요. 펭귄이랑, 호랑이랑, 기린 쳐다보는 곳.”

자조 섞인, 씁쓸한 미소가 더해졌다.

동물원은 근대 제국주의의 산물로 평가된다. 자기 세계의 밖, 진기한 동물들을 모아다 철창 안에 두고 전시하는 공간. 구경꾼과 대상이 분리된 채 서로를 대상화한다. 가끔, 동물원을 찾은 관객들은 내가 동물을 보는 건지, 동물이 나를 보는 건지 헷갈리는 묘한 기분에 휩싸이기도 한다. 야구장이 지금, 딱 동물원을 닮았다.

야구장은 다른 경기장과 달리 ‘볼파크(ball park)’라고 불린다. 치열하게 승부를 가리는 현장이지만 - 심지어 150㎞가 넘는 공은 아주 큰 부상을 입힐 수도 있다 - 공원의 느낌이 강하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적한 오후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홈구장인 진구구장 외야에서 파란 하늘을 가르는 야구공을 바라보다 소설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소설가 김애란은 <너의 여름은 어떠니>에서 “그냥, 야구장에 가서 크게 소리 질러보고 싶어요”라는 질문에 “너는 뭐 야구장이 소리 지르는 덴 줄 아니?”라는 답을 적었다. 소리 지르는 데가 아니라 “야구장은 신전이야”라는 ‘선배’의 근사한 답이 돌아왔다.

2016년 가을, 시카고 컵스가 108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했을 때 컵스의 팬들은 홈구장 리글리 필드의 붉은 벽돌에, 우승을 보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님과 아내, 남편과 친구의 이름을 적었다. 야구장은 휴식의 공간이자, 소리를 지르는 곳인 동시에 황홀한 접신의 공간이자, 오랜 기억을 되새기는 추모의 공간이었다.

한국의 야구장은 신바람과 흥이 넘실거리는 공간이었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사직구장을 두고 ‘세계 최고의 노래방’이라고 했다. 1번부터 9번까지 모든 타자의 개별 응원가를 함께 목놓아 부르는 곳이다. 1루 주자를 향한 견제구가 나올 때마다 “마!”와 “뭐여!”와 “쫌!”이 쩌렁쩌렁 울리던 곳이었다.

야구장은 노래방이자 대형 ‘가맥’의 공간이다. ‘치맥’으로 대표되는 야구장 먹거리는 배고픔을 채우는 끼니를 넘어선다. 안타와 홈런이 나온 뒤 목을 넘는 맥주 한 모금은 나와 뜻을 같이하는 1만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건배하는 환상적 연대감을 경험하게 한다.

그랬던 야구장이 지금은 ‘동물원’ 같단다.

그는 “야구장은 원래 테마파크, 놀이공원 같은 곳이다. 경기 결과가 아니라 역사와 경험을 파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어릴 때 청룡열차를 탔던 누군가는 어른이 돼 아이를 데리고 티 익스프레스를 탄다. 그때 먹었던 김밥과 사이다는 이제 타코와 핫도그가 됐다. 청룡열차의 아찔함보다 긴 줄을 함께 기다릴 때 햇볕의 뜨거움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놀이공원도 야구장도, 디테일이 모여서 추억이 된다. 밖에서는 절대 쓰지 않을 모자를 이곳에서는 모두 다 함께 자랑스럽게 쓴다.

지금 야구장은 소리도 못 지르고, 먹지도 못하는 공간이다. 우리 밖에서 펭귄이랑 호랑이랑 기린 쳐다보듯 안타와 홈런과 득점을 쳐다보며 박수를 치는 게 전부다. 정말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의 헌신에 가까운 열정에 기대 간신히 버티는 중이다.

‘동물원’ 비유가 더 슬픈 건, 우리 속의 동물 상당수가 멸종 위기종이라는 사실이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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