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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간호조무사 출신 혁명군사령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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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모잠비크 독립과 사모라 마셸
한국일보

모잠비크 초대 대통령 사모라 마셸. 그의 사인은 공식적으론 사고사지만, 테러 의혹은 지금도 여전하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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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대항해시대의 첫 파도를 나란히 가른 두 제국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공교롭게도 1975년 역시 함께 나라 이름에서 '제국'이란 타이틀을 뗐다. 스페인은 그해 군사독재자 프랑코가 숨지고 현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입헌군주로 즉위하면서 스페인령 사하라를 비롯한 대다수 해외 영토에서 철수한 덕이었고, 포르투갈은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파시스트 정권이 붕괴하면서 새 정권이 이듬해 아프리카 다수 식민지들의 독립을 승인한 덕이었다. 앙골라와 모잠비크, 기니 비사우, 카보베르데, 상투메 프린시페가 나란히 1975년 독립했다. 근 500년 만의 일이었다.
모잠비크 공화국(줄여서 모잠비크)의 독립기념일도, 초대 대통령 사모라 마셸(Samora Machel, 1933~1986)의 취임일도 6월 25일이다.

마셸은 원래 간호조무사였다. 그는 가톨릭선교회가 운영한 학교에서 수학했지만 식민지 우민화 교육의 제약 때문에 의사도 간호사도 될 수 없었다. 급여 등 처우도 백인과 흑인이 달랐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됐고, 20대 말부터 좌익 게릴라 조직 '모잠비크해방전선(FRELIMO)'에 투신, 게릴라군 최고사령관까지 됐다.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소련 원조를 받으며 포르투갈 대농장 국유화와 학교, 병원 건설 등 좌파 개혁정책을 펼쳤고, 남아공 등 아프리카 내 백인 정부와 대치했다. 그는 1986년 10월 잠비아에서 열린 국제회의를 마치고 귀국하던 중 모잠비크 국경 남아공 지역 레봄보산맥 상공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각료와 의원 등 33명과 함께 숨졌다. 사고지역 정부인 남아공 주도하에 구성된 사고조사위원회는 사고 원인을 운항승무원 과실로 발표했지만, 테러 의혹은 가시지 않았다. 이후 거듭된 조사에서도 새로 밝혀진 사실은 없었다.

초대 정부 교육부 장관을 지낸 마셸의 아내 그라사 마셸은 1998년 남아공 대통령 넬슨 만델라의 세 번째 부인이 됐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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