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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의 어려움 [우리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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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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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어렵다. 상대방의 나이나 지위를 따져 그에 적당한 말투를 선택해야 하고 대화 중간중간 상대의 표정을 살피며 말실수는 하지 않았는지 점검하게 된다. 특히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서비스 현장에서 상위자인 고객에게 어떤 행위를 요구할 때의 난감함은 말투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난해 10월 알바몬이 아르바이트생 2,1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79.8%가 ‘엉터리 존댓말’을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 ‘잘못된 표현인 줄은 알지만 그렇게 쓰지 않으면 어색하거나 무례하게 느껴질까 봐’, ‘그렇게 쓰지 않으면 불친절하다고 여기거나 항의하는 손님들 때문’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엉터리 존댓말 중 하나로 ‘실게요’를 들 수 있다. “주사 맞으실게요, 여기 앉아서 기다리실게요”처럼 고객에게 어떤 행위를 요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로 쓰인다. 상위자에 대한 명령이나 지시는 늘 부담스럽다. 그래서 ‘하십시오’ 같은 명시적 명령보다는 ‘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같은 우회적 표현을 사용한다. ‘실게요’도 이와 유사한 언어 사용의 전략이다.

‘을게’는 어떤 행동에 대한 화자의 약속이나 의지를 표현하는 종결어미이다. 따라서 “남은 밥은 내가 먹을게”처럼 ‘을게’가 결합하는 문장의 주어는 1인칭 화자이다. 그런데 명령을 표현하는 ‘실게요’에서는 2인칭 청자가 문장의 주어이며 그 청자를 높이기 위해 ‘시’가 결합되었다. 의지 표현을 사용하여 상대에게 명령할 때 발생하는 심리적 부담을 더는 한편 명령을 의지로 환원하는 효과가 있다. ‘실게요’는 문법적으로 잘못된 표현이지만 화용적으로 용인되고 언중이 선택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남미정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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