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韓 '산유국' 만든 동해가스전…불꽃 꺼지는데, 투자는 막막 [뉴스원샷]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손해용 경제정책팀장의 픽: 동해 가스전



울산에서 남동쪽으로 58㎞ 떨어진 해상. 푸른 동해 바다 한가운데 거대한 철제 구조물이 자리잡고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였던 대한민국을 세계 95번째 산유국으로 만들어놓은 동해 가스전 해상플랫폼이다.

중앙일보

동해 해상에 세운 '동해-1 가스전' 전경. 수심 152m 깊이까지 철제트리를 설치하고, 지상 48m의 플랫폼을 건설했다. [한국석유공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동해-1 가스전’은 국내 자원개발의 상징이다. 1970년대 미국과 일본·프랑스의 석유 메이저기업이 탐사에 실패하고 돌아간 뒤 한국석유공사는 동해 대륙붕에서 가스층을 발견했다. 2004년 7월부터 생산을 시작해 지난해 말까지 가스 4100만 배럴, 초경질유 390만 배럴을 공급했다. 수입 대체 효과만 24억 달러(약 2조7624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 가스전의 불꽃은 차츰 사그라들고 있다. 24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이르면 올해 말 생산이 종료될 예정이다.

중앙일보

대륙붕에서 원유와 가스를 뽑아올리는 네 개의 파이프라인.[한국석유공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간 한국은 세계 95번째 산유국 지위로 적잖은 경제적ㆍ외교적 이점을 누려왔다. 중동 산유국들은 비산유국을 국제입찰이나 유전개발이 사업 참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경향이 있다. 또 인접 국가인 중국과 일본이 모두 산유국 지위를 가지고 있는 데 반해 한국만 비산유국이 된다면 에너지 외교에서 소외될 수 있다. 동해 가스전의 가동이 중단돼 산유국 지위를 상실하면 이런 이점이 함께 사라진다.

여기에 그간 육성해온 석유 및 가스 탐사ㆍ개발ㆍ생산 운영기술의 경쟁력이 퇴보될 수 있다. 높은 LNG(액화천연가스) 해외 의존을 이어가게 돼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위험도가 높아진다. 직접적인 에너지 대체 효과만 아니라 연관산업과 고용도 위축된다.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21일 직접 동해가스전을 방문한 자리에서 “동해가스전의 성공은 국가에너지 안보 확립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며 “그간 축적된 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 대륙붕뿐만 아니라 심해에서도 가스자원 개발을 성공적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오른쪽)이 21일 동해가스전을 방문, 현장직원들에게 철저한 안전관리를 주문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우려에 석유공사는 대체 가스전을 찾기 위해 최근 동해 가스전 북동쪽 44㎞ 심해지역에 대해 시추 작업에 들어가며 추가 가스전 개발에 나섰다. 공사가 탐사자료를 분석한 결과 해당 지역에는 약 3.9Tcf(원유환산 약 7억배럴)에 해당하는 자원량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해 가스전에서 뽑아낸 4500만 배럴보다 15배 많은 규모다.

일반적으로 탐사시추 성공률이 15% 안팎인 점을 고려해 이번 시추에 그치지 않고 유망 구조에 대한 탐사와 시추를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문제는 투자 비용이다. 성공하면 비용을 모두 회수할 수 있지만, 실패한다면 모두 허공에 날릴 수밖에 없어서다. 동해 가스전 발견을 위한 탐사ㆍ시추 작업에도 약 1조1886억원이 투입됐다.

중앙일보

공기업의 해외 자원개발사업 투자액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윤영석 의원·산업통상자원부]



정부의 자원개발 지원이 줄고 있다는 점이 부담을 키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대적으로 벌였던 자원개발 드라이브의 후유증에 ‘돈만 잡아먹는 사업’이라는 인식이 커지면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0년 3093억원 수준이었던 자원개발 성공불융자 예산은 2019년에 10분의 1 수준인 367억원으로 급감했다. 자원개발 민간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도입한 성공불융자는 돈을 빌려준 뒤 실패하면 상환을 일정 부분 감면해 주는 제도다.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있지만, 위험이 큰 자원개발 특성상 투자 유치 위해 필요한 제도라는 게 업계 평가다. 해외 자원개발에 줬던 세제 혜택도 2019년을 끝으로 모두 일몰됐다.

정부 지원이 끊기면서 투자도 급감했다. 국내 에너지ㆍ자원 공기업의 지난해 해외 자원개발 투자액은 7억1300만 달러로 2011년(70억3100만 달러)의 10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중앙일보

한국 석유·가스 자원개발률.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2015년 15.5%였던 석유·가스 자원개발률도 지난해 11.4%로 감소했다. 이처럼 한국의 자원개발 사업이 주춤하는 사이 해외 자원확보 경쟁은 다시 불붙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치열해 지면서 공급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한 자원 확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다.

중국만 해도 3대 국영기업을 동원해 유전개발을 확대하고, 자산ㆍ기업 인수를 위한 차관을 제공한다. 지난해 중국이 자원개발 기업 인수합병(M&A) 등에 쓴 돈만 107억 달러(약 12조원)이다. 일본도 2012년 아베 신조 총리 취임 이후 해외 자원개발을 적극 독려했다. 그 결과 에너지 소비량 대비 자원개발 비율인 자주 개발률은 2012년 22.1%에서 2018년 29.4%까지 상승했다.

핵심 자원 확보를 위해 중장기적 목표를 세우고 꾸준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4차 산업혁명이 가속하면서 자원에 대한 수요도 늘고 확보 경쟁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도 단기적 성과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 국익의 관점에서 자원개발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sohn.yong@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