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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함 '입항거부’ 놓고 정반대 해석 [청해부대 인터뷰 논란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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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특수임무단이 지난 19일 방역작업을 위해 문무대왕함에 오르고 있다.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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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지난 24일 국방부 기자단에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는 일부 매체의 “청해부대 34진 입항 거부” 제하 보도 관련, 우리 정부가 마치 외교적으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것처럼 보도한 데 대해 일부 오해가 있어 이에 대한 국방부 입장을 알려드린다는 내용이었다.

앞서 일부 매체는 정부가 군사외교력을 자화자찬했지만 청해부대(4400t급 문무대왕함)가 아프리카 해역 인접국의 입항 거부로 한동안 바다에서 방치되면서 코로나19 감염자가 하루에 20명씩 늘었다고 지적했다. 또 군 당국이 청해부대 장병 복귀 과정에 대해 “군사외교력이 빛을 발휘한 사례”라고 자화자찬했지만, 정작 청해부대는 현지 국가에서 제대로 된 의료 지원을 받지 못했고, 그런 탓에 코로나가 더욱 심각하게 번졌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코로나 환자가 발생한 선박은 국적을 불문하고 입항을 불허한다는 것이 주재국의 기본 입장이었다”며 “국방부는 이러한 주재국의 입항불허 방침에도 불구하고, 청해부대원 전원을 귀국시키기 위해 청해부대 입항을 주재국 정부와 긴밀히 협의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주재국 정부가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선박의 입항을 불허하는 자국 방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요청을 받아들여 청해부대의 입항을 수용하고, 이미 입항되었던 타국 상선을 해상으로 이동시킨 후 우리 청해부대의 선석을 확보해 줬다”고 해명했다. 현지 인접국이 자국의 코로나 발생 선박의 입항 불허 방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외교력으로 이 문제를 풀었다는 반박이었다.

청해부대의 입항거부를 놓고 정반대의 해석과 주장이 나온 것은 청해부대원들이 지난 23일 국방부기자단과의 공동 인터뷰에서 승조원들이 “청해부대가 현지 입항을 거부당했다”고 밝힌 데서 비롯됐다. 국방부는 이날 익명 보도를 조건으로 전화 인터뷰를 주선하면서 “청해부대원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신청을 받아 간부 3명과 병사 4명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익명 조건 인터뷰에 대해서도 ‘정부의 통제 속에 이뤄진 인터뷰라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과 ‘오히려 익명 보도이기 때문에 청해부대원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엇갈렸다. 다음은 입항 불허를 증언한 간부 C씨의 ‘일문 일답’

■간부 C씨 ‘일문 일답’ 전문


-현재 증상은. 있는 곳은.

“몸은 괜찮다 충북 보은이고 2인1실에 있다. 언론에서 나온거처럼 7월 2일정도 환자 생겨서 배 입항할 때가 7월 19일이었다. 바다 위에서 17일 정도 아팠던 거 같다. 저도 19일 입항 직전까지 열이 39도 이상 올라서 배에서 버티면서 면역체계가 생긴 거 같다.”

-배에서 어떻게 지냈나.

“처음 인터뷰를 하게 된 것도 원래 잘 아시겠지만 군인은 인터뷰 이전에 상부 보고 안되면 할 수 없다. 인터뷰 허락한 이유가 모든 사람들이 인터뷰 내용들을 보면서 이 인터뷰가 맞나 우리 대원들이 한 게 맞나 참담하고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어떤 이유에서인가.

“상륙 외출 전혀 없었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고 다른 나라에서 타국의 군함들이 외출나가는 것을 허가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사정이었다. 부식 작업 끝내고 출항했을 때 이미 감기 환자 1명 발생 했었다. 첫 조리병 발생 조리병 이후 조리병 후구 쪽 같은 침실을 쓰다보니 후구 침실쪽으로 해서 감기환자 발생했는데 코로나는 생각도 못했다. 일반 감기증상과 같았고 환자 차츰 늘어났다. 그러면서 항원검사도 배에서 임시키트로 했을 때도 전부다 음성이 나왔었고 40명 정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시간을 지켜오는데 어느 순간부터 환자가 80명 정도 생기고 급속도로 많아지기 시작했고 그러고 나서 의료진이 배로 와서 검사를 6명 했었다. 증상 있는 사람 중 아무나 뽑아서 특정해서 뽑은 건 아니고 증상 있는 사람(감기환자) 검사 했는데 처음에는 다른 격실로 분리하고 식사도 따로 했다.”

-확진자 많이 늘었는데 어떻게 버텼나.

“심리적 요인도 좀 있었던 것 같다. ‘코로나 확진됐다’고 하니 의무실 찾아가는 입장이었고 열이 올랐는데 의무실 진료 안받았다. 원사 상사 고참들은 하사나 병이 많으니 자꾸 쓰러지니까 당직까지 다 서는 거다. 그러다보니 타이레놀 갖다 먹을 정도로 진료 받으면 기록이 남고 당직을 못서게 되니 어떻게든 버텼던 거 같다.”

-격리는 제대로 이뤄졌나.

“의무실에 침대가 4개 밖에 없다 아픈 대원 수액 맞는 대원 열 내려가는 대원들 37~38도 내려가면 새로 열이 많은 대원들이 들어간거지 배에서 선제적으로 격리를 했다. 6명 양성 후 침실을 옮기는 와중 의무실에서 진료 받고 감기 증상 진료받고 감기 폐렴 격리 무증상자 따른 격실 총원 전수검사 순차적으로 나오고 해서 침실이동 이뤄졌다. 그나마 30~40명 음성이 나온 거 같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검사 직전까지 배에서 많은 일이 생겼다. 처음에는 감기인 줄 알고 군의관 2명 의무병 잠도 못자고 수액 맞아가면서 대원들 챙기고 했다.”

“배에서 순찰을 돌고 하는 직책이다보니까 순찰 많이 돌다보니 대원 많이 알고 의무실 환자 체크하고 환자 상태 살폈다.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피를 토하고 살려달라는 대원 없었고 다들 다 견디고 코로나인줄 알면서 서로간에 격려하고 했다. 환자들이 많이 생가다 보니 약도 부족했다. 원래는 14일 단위로 입항했다, 부식작업도 하고 피로도도 낮출수 있으니 그런데 입항 거부당했다 원래 7월 14일경 했어야 했는데, 15일, 16일 입항해야했는데 입항을 거부했던 걸로 알고 있다.”

-코로나 환자 발생으로 거부한 것인가.

“그런 걸로 알고 있다 유류도 부족해서 저속으로 항해했다. 악조건이었는데 타이레놀만 먹었다 의료약 다 썼고 에이전트 통해서 물건을 받았는데 수액세트 타이레놀 5000정 받았다. ‘처음부터 타이레놀 주고 버텨라’ 그런 건 아니었다.”

-상황이 안 좋았는데 상부에 보고는.

“상부에 보고했고 상부도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소독하느라 잠도 못 잔 거 맞나.

“입항 거부 당하다 입항허가 시간이 19일 새벽 3시에 떨어져 4시경 입항하게 됐다. 짐 싸야 하는데. 다음 진 오기 전에 침구 정리해야하고 끝난 시간이 12시였다. 기본 청소는 해야 하는 것이고 날을 새고 소독하는 건 없었다. 19일 배에 내리기 직전 12시간 정도밖에 시간을 안 줬다. 그 시간 안에 모든 걸 해결하고 내리고 특수임무단이 타는 거로 모든 게 하루 만에 해결됐다. 지휘관 부함장도 그렇고 무선으로 지시할 정도로 있었고. 함장도 산소호흡기 착용하고 버텼다. 환자들이 배에서 내렸는데 파도 1.5m 이상이었고 줄사다리 타고 내려갔다. 5명 내리는데도 30분 이상 걸렸다 너울 치니까. 고속단정을 1.5~2m면 운항 제한인데 환자 이송해야 하니까 고속단정 내렸다. 수병들도 약을 먹고 있는 상태였는데 대원들 보내기 위해 내렸다. 3~4번 아픈 대원들이 하다보니 동료들 위해 내려주고 땅바닥에 주저앉고 겪었던 일들과 너무 다르게 보도됐다. 병사들과 간부들끼리 했던 말인데 배를 두고 내려야 된다는 말 나왔을 때 음성자들만 한국에 보내자, 양성자들은 면역체계가 생기지 않겠느냐 우리가 배를 몰고 가야 한다 하면서 울고 했다.”

-백신 안 맞고 갔는데 걱정 안됐나.

“이렇게까지 코로나 번질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출항해서 얼마 안 있을 때 교대하기로 했던 함정 2차 접종까지 끝나고 왔는데, 들어가서 얀센접종 1차만 하면 되니까 들어가서 하면 되지 불평 불만은 없었다. 출항 전 국내에서 2주 격리를 했다가 음성 확인하고 출항했으니까 걱정 안했다. 무조건 정박하면 마스크 착용했다. 처음에는 항해 중에는 마스크 착용 안 했다. 정박했을 때는 100% 착용했다. 정박했을 때는 일주일간 마스크 100% 착용했고, 일주일 지나서는 착용 안 하고 했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첫 감기증상 환자 발생 이후 감기 전염성 있으니까 다들 100%마스크 착용했다.”

-증상 있을 때 코로나 의심 안 했나.

“감기증상 발생 시 코로나 의심을 전혀 못했다. 누구든지 코로나를 겪어본 사람이 없으니까 감기환자라고 등록된 친구조차도 항체검사했을 때 항체가 있는 걸로 나왔고 몇몇 대원들은 코로나환자처럼 심하게 발열이라든가 크게 없었던 걸로 알고 있었다.”

-조리병이 최초 환자라 식사 준비가 어려웠을 텐데.

“단순 감기로 생각하고 빠질 사람 빠지고 조리 시작했다 코로나 판명 전에도 많은 인원이 환자로 묶여 있으니 전투식량으로 이틀 정도 버티고, 조리병에게 휴식시간을 줬다. 코로나인 줄은 모르고 단순 몸살로 알았다. 격려 차원에서 휴식을 주자 그렇게했던 걸로 알고 있다.”

국방부 공동취재단, 박성진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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