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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과 코로나... 미 공화당, 백신에 의문제기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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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팬데믹 둘러싼 음모론을 지켜보며... 이들 주장 아래 깔린 불안감, 이해는 하지만

오마이뉴스

▲ 2009년 10월 26일,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돼 징역 4년을 구형받은 황우석 박사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1심 선고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는 모습. ⓒ 유성호



'황우석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

한국에서 음모론이란 단어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아마 이 사건일 것이다. 황우석의 거짓말이 들통나기 전까지 국민의 영웅으로, 한국 최초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까지 공공연하게 나돌았던 것을 기억한다. 초반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던 황우석은 결국 그의 논문이 조작됐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고, 후일 <사이언스(Science)>지에 등재됐던 논문도 모두 취소됐다.

그런데 문제는 이걸로 종결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황우석 추종자들은 논문 조작이 판명이 난 후에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황우석의 성공을 시기, 질투하는 학계의 사람들로 인해, 그리고 그의 선진 기술을 가로채 특허 등록을 먼저 하려는 미국의 검은 의도 때문에 황우석이 모함에 빠졌다고 믿었다. 지금껏 몇몇 링크가 남아있는 기사를 읽어보면, 그들의 지독한 황우석 사랑과 그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엿볼 수 있다.

휘슬블로어(Whistle-Blower)

황우석의 사기가 세상 만천하에 밝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류영준이라는 내부고발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에 매료되어 수의대 대학원 진학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결정을 하였던 그는 2014년, 그동안의 긴 침묵을 깨고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황우석만 말을 했고 대중은 그의 시각과 프레임으로 사건을 구성했다. 전체를 이해하려면 다른 이야기도 차분하게 들어봐야 한다."

"과학은 '객관을 전제로 한 정확성'의 학문이다. '믿는다'가 아니라 '증명되어야' 한다."

"한국이 줄기세포 강국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도 2004년 황우석이 <사이언스> 논문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자 언론은 '미국의 심장에 태극기를 꽂고 왔다'는 식으로 부풀렸다. (중략) 과학은 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과 다르다. 그 자체로 의미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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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우석 논문조작 제보자인 류영준 강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은 2020년 6월 인터뷰 중인 모습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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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이 탄생하게 되는 배경

현재 강원대 의대 병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류영준의 인용문을 토대로, 음모론이 어떻게 사람들 마음속에 파고들게 되는지 재구성해봤다.

이들은 논쟁의 중심점을 다각도가 아닌 오로지 하나의 관점에서만 본다. 사람은 원래 주관적인 동물이라 100%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와 다른 시각과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면 주관적인 영역에 갇혀 아전인수격의 해석만을 하는 오류를 범하진 않을 것이다.

역사학자 E. H. 카의 말처럼 해석이 완전히 배제된 객관적 역사적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사실이 주관적인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픽션은 아니다. 지나친 상대주의 오류에 빠지게 되는 순간, 눈앞에 보이는 사실마저 왜곡해 버리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과학은 동일한 환경과 조건 아래 실험 시 매번 동일한 결과가 도출돼야 한다. 다시 말해 결과가 예측 가능할 때, 비로소 '싸이언스(과학)'가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집적된 노하우가 바로 기술이다. 조작의 유혹은 항상 입증하기 어려울 때 다가오고, 이때부터 '과학'보다 '믿음'의 방식으로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의미보다 성과주의에 치중하게 되면, 본질을 상실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한 아기를 두고 다투는 두 여인에게 아이를 똑같이 반으로 잘라 주겠다는 제안은, 사랑하는 자녀의 안녕이 최우선일 엄마에게는 말도 안되는 해결책이다. 따라서 설사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내어 주는 한이 있어도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는 듯한 이 논점은 철저하게 본질을 비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음모론은 이처럼 본질로부터 이탈해 주변의 잡음을 키운 후, 본질 자체를 잊어버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다시 말해, 무엇이 더 중요한지 판단력을 흐리는 역할을 한다.

2020년, 팬데믹의 해

음모론이란 표면에서 감지되지 않지만, 이면에 감추어진 어떤 특정한 목적이 존재하는 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할 때 흔히 나오는 이야기다. 음모론이 성행하게 되는 기반은 자신의 주장을 기반으로 모든 정보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할 때, 입증된 사실을 믿기보다는 음모론이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주변 잡음으로 사람들을 현혹시켜 본질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해서다.

2019년 말 중국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진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했던 2020년, 이는 1918년 일차대전 당시 유행하던 스페인 독감(Spanish Flu) 이후 백여 년 만에 다시 경험하는 팬데믹이었던 탓에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코로나 초기, 최첨단 21세기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의 생활이 이처럼 큰 영향을 받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전 세계가 이 이슈를 국민건강, 공중보건의 차원에서 접근해 역학 조사, 확진자 및 확진 추정자의 이주 격리 등으로 분주할 때, 미국은 정치적 이슈로 몰고 가는 기이한 현상을 보였다는 것이다. 마스크를 꼭 써야 하는가 아니면 쓰지 않아도 되는가에 대한 입장이, 소속 정당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아마 미국이었을 것이다.

팬데믹 음모론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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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2월 21일, 코로나19 치료 후 백악관에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의 마스크 미착용을 지적하는 CNN 뉴스 화면 갈무리. ⓒ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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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에선 봉쇄령(Lockdown)이 발효됐던 지난해 3월부터 팬데믹 음모론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화당 지지자 중의 다수가 코로나바이러스는 사기(Hoax)라고 '믿고' 있다.

먼저 트럼프와 공화당 측의 주장은 이렇다. 이걸 '팬데믹'이라고 부를만큼 이 바이러스가 그렇게 치명적인 게 아니라는 거다. 이들은 코로나가 매년 유행하는 독감 정도라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런데, 확진자와 사망자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자, 이번엔 통계 자체가 잘못됐다는 논리를 폈다. 다시 말하면, 코로나바이러스 아닌 걸로 죽은 사람까지 코로나바이러스 통계에 포함시킨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이 주장에는 일견 맞는 부분도 있다. 왜냐하면 코로나 확진으로 인해 사망에까지 이르는 경우, 환자의 대부분이 이미 천식이나 암 등과 같은 기저질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바이러스로 인한 호흡곤란이었다. 따라서 기저질환이 있었다 할지라도, 코로나 통계에 포함시키는 것이 맞다.

이들은 또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소위 '파란 주'(민주당 주지사)와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지 않은 '빨간 주'(공화당 주지사) 사이 코로나 확진자 수가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빨간 주가 확진자 수가 적다는 논리로 마스크 착용이 바이러스 예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미국 내 인구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California, 파란 주)와 캘리포니아 인구의 1/40도 되지 않는 노스다코타(North Dakota, 빨간 주)를 단순 비교하면 단연 인구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가주의 감염자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조금만 다른 시각으로 살펴보면 말도 안되는 주장인데, 아전인수격으로 해석을 해서 벌어진 오류이다. 따라서 감염자수를 비교하기보다는 '인구 대비 감염률(Per Capita)'을 비교하는 것이 보다 과학적이고 공평한 지표가 될 것이다.

음모론으로 얻은 것, 잃은 것

공화당이 끊임없이 이런 주장을 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정치적 입장이 다른 민주당의 정책과 변별력을 보여야하고, 둘째 팬데믹 봉쇄령으로 인한 경기침체를 타계할 방법으로 민주당이 제시한 대규모 경기 부양책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마스크 착용에 찬성하는 순간 민주당 논리에 굴복하는 셈이 되는데,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공화당 유권자들의 민심 이탈은 곧 다음 선거시 표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도 가능하다.

팬데믹을 퇴치하기 위해 전 세계는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아마도 그게 백신 보편화 전까지 할 수 있는 최소한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진 매우 효과적인 예방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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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2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 델라웨어주 뉴어크의 지역병원에서 화이자-바이오앤테크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 백신을 공개적으로 접종받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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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보건 차원의 마스크 착용이 정치적 이슈로 다뤄진 미국의 경우, 7월 29일까지 3500만 명이 코로나로 확진됐고, 60여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한다. 바이러스 존재여부를 인지하고, 적절하게 대처하기보다는 정치 집단의 이해관계 때문에 최소한의 예방책인 마스크 착용마저 반대하는 우를 범한 결과 치고는 너무 혹독해 보인다.

지난해 12월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한 미국정부는 현재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버티는 사람들 탓에 골치가 아프다. 그들 대부분이 공화당 지지자들로 여론조사 결과 밝혀지고 있다. 주정부는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접종을 마친 사람들에게 상품권을 주거나, 백신 복권에 당첨되면 백만 달러까지 준다고 주민들을 독려하고 있다. 심지어 백신 맞으라는 텔레비전 광고까지 내보내고 있다. 연방정부는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연방정부 관료들의 경우 반드시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발표했다.

정치적 반대파 의견에 편승하게 되면, 다음 선거에서 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일견 이해는 된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팬데믹 상황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보다는 국민의 생명을 우위에 두는 게 맞지 않았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김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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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californialifeblo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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