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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분해서 잠도 못자요”···종로 금은방 뒤흔든 카드단말기 조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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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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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일 오후 3시37분쯤 B씨(30대. 빨간동그라미)가 금 20돈짜리 목걸이 각 2개 1260만원을 결제한다며 카드단말기를 조작하고 있는 모습. A씨 금은방에 설치된 CCTV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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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서울 종로구에서 금은방을 운영하는 사장 A씨(59)는 요즘 가슴이 떨리고 분한 마음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눈 앞에서 1260만원을 사기 당한 까닭인데, 신용카드 결제단말기 포스에서 ‘신용승인’이 찍힌 ‘가짜 매출전표’가 나온 게 화근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달 4일 주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후 3시30분쯤 서울 종로구의 한 금은방에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모자를 눌러 쓴 30대 남성 B씨가 들어왔다. 직접 물건을 손과 목에 대보기도 하면서 고르는 다른 손님들과 달리, B씨는 팔짱을 낀 채 목걸이 가격을 묻는 듯하더니 3분여 만에 구입 의사를 밝혔다. B씨가 구매한 물건은 금 20돈짜리 목걸이 2개였다.

그런데 B씨는 카드번호와 비밀번호가 적힌 핸드폰을 들이밀면서 카드단말기에 직접 입력해 결제하기를 원했다. “카드와 현금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처음 접하는 상황인 까닭에 점원이 헤매자 B씨는 자신이 입력하겠다면서 단말기 버튼을 눌렀고, 2분여 뒤 매출전표가 발행됐다. 부가세가 포함된 거래금액 등까지 담겨 있어 의심 없이 물건을 건넸는데, 결제일로부터 2~3일이 지나도 돈이 입금되지 않았다.

금은방 사장 A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카드사에 전화해보니 ‘접속 내역이 없다’고 해 너무 놀라 매출전표를 찾아 다른 내역들과 비교해보니 ‘승인번호’가 원래는 8자리인데 6자리였고, ‘승인내역 재출력’이라는 표시가 있었다”며 “요즘처럼 신용사회에서 인터넷뱅킹이나 페이 등처럼 하나의 방법인 줄로만 알았는데 너무 황당하고, 상상도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B씨가 자신의 핸드폰번호와 주민등록까지 내보이면서 사기를 벌인 것이 더 황당하다고 했다. 사장은 “걸릴 걸 각오하고 사기를 쳤다고 보이는데, 너무 뻔뻔하다. 처음부터 갚을 능력도 없었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지난달 21일 B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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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단말기를 조작해 발행된 ‘가짜 매출전표’로, 정상적인 매출전표에서는 ‘재출력’이나 ‘전화등록승인’이라는 글귀가 없고 승인번호도 6자리가 아닌 8자리다. A씨 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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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단말기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가맹점을 속인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피해 영업장에서 불과 200여m 떨어진 금은방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지난달 12일 오후 6시5분쯤 B씨는 금은방에 들러 순금 팔찌 등 총 2307만원을 결제하겠다며 이번에는 카드를 건넸다. 하지만 카드가 긁히지 않자 또 단말기 버튼을 누르겠다고 했다.

사장 C씨는 “전문가처럼 능수능란하게 단말기를 만지더니 승인이 떨어졌는데, 보통 가맹점용 1장과 고객용 1장이 나오는데 전표 위에 ‘카드 사용’으로 나와 이상하게 생각했다”며 “평일 오후 6시가 넘어 카드사 연결이 어려워 단말기를 설치해준 분과 통화를 했더니 ‘승인절차가 이상한 것 같다’고 해 판매까지 이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처음에는 사기인줄도 모르고 무슨 상황인가 했는데, 주변 이야기 들어보니 실제 피해가 있다고 해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며 “가맹점에서 해당 수법을 잘 모르는 것을 이용한 사기로, 누군가는 또 피해를 볼 텐데 이번 일을 계기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 21일 고소장을 접수한 서울 혜화경찰서는 피고소인 B씨를 조사해 입건했다.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또 다른 피해 영업장도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카드가 긁히지 않을 경우 수기로 입력하는 기능이 있는데, 이를 이용해 실제 승인이 안 됐는데도 전표를 뽑아낸 것으로 보고 있다”며 “조사에서 혐의는 다 시인해 조만간 송치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신용카드 결제단말기 포스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사기를 벌인 사례는 2019년에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로는 카드 승인이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임의로 ‘전화승인’ 혹은 ‘전표입력’ 등 일부 버튼만 누르면 마치 승인이 된 것처럼 ‘가짜 전표’를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단말기 업체에서는 직접 기계에 금액을 입력할 때 “전표를 확인하라”는 주의 문구도 넣었지만, 전문적으로 사기를 일삼는 앞에서 피해자들은 속수무책이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주의문구를 넣는 것 이상의 근절 방안이 마련돼야 할 필요가 있다”며 “가맹점주들의 주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선희·문광호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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