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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무한경쟁 하지 말고 무한향상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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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 선사가 좌선하고 있는 제자에게 물었다.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마음을 보고 있습니다.” “보는 것은 누구이고, 마음은 어떤 물건인가?”

경향신문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마음을 볼 수 있다면 자신의 행동과 감정들을 잘 조절할 수가 있다. 눈으로 보고 욕심을 일으키는 행동들을 자세히 살필 줄 알면 그로 인한 충동구매나 식욕, 성욕 등에 대한 생각은 줄어들고 생활은 간결·담백해진다. 나를 무시하는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오를 때 그 감정을 정확하게 볼 줄 알면 곧바로 평정심을 찾을 수가 있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고 있는 마음의 작용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든 바르게 판단하는 지혜가 생겨날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보는 방법을 옛사람들은 관법(觀法)이라 했고, 요즈음에는 명상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수행력 높은 선사들은 여기서 한 단계 더 향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적절하게 마음을 쓸 때는 적절하게 무심(無心)을 쓰라’는 것이다. 선가에서는 욕심이 일어나거나, 화가 나거나, 비교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바탕은 분별의식이라고 가르친다. 보는 나와 마음을 대상화하는 분리의식이다. 이것은 마음 살피는 것을 놓치면 곧바로 욕심과 화와 어리석은 판단에 다시 휩싸이거나 착각에 빠지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마음을 보는 것만으로는 완전하지 않다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선사들은 무심, 즉 차별하고 욕심을 부리는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쓰라고 한 것이다. 무심은 ‘나와 너’라는 상대적 개념 속에서 나오는 갖가지 감정이 일어나기 이전의 생생한 본바탕의 마음이다. 고요하고 생생한 본바탕의 마음의 주인이 되고, 그 바탕인 무심을 자유자재로 쓰려면 ‘그 마음을 보는 놈’에 의문을 가져야 하고, 그 본질을 찾아야 한다. 이 의문이 성성(惺惺)해지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무심의 경지에 이르게 되고, 그 순간 부처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이 물음을 역사를 바꾸는 거대한 생각이라고 한 것이다.

며칠 전, 어느 도시의 시립화장장에 다녀왔다. 한 달 전쯤 어머니와 딸이 찾아와 상담을 할 때만 하더라도 밝고 힘이 있었다. 아니 그때는 그렇게 보였다. 그러고 난 후 오래지 않아 그 어머니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딸의 자살 소식을 전해왔다. ‘코로나 백신을 맞은 뒤 후유증으로 인한 두려움과 취업 낙방 소식이 겹쳐 홀로 원룸에서 고민하다 한순간 잘못된 판단을 한 것 같다’는 애끓는 탄식이었다. 마음은 아무 잘못된 것이 없다. 마음 안은 이미 고요하다. 그러나 한순간 고요한 마음을 챙기지 못하고 마음이 감정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그 감정에서 벗어나 바른 판단을 내리는 지혜를 갖췄더라면 이와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삶이 허망하다는 것과 되짚어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심한 마음이 일순 흩어지니, 추석이 가까워질수록 밝아지는 달빛과 청량한 가을바람이 쓸쓸하다.

선가의 큰 스승 고우 스님의 열반 소식을 듣고 문경 봉암사로 달려갔다. 그리고 두 주가 지났는데도, 그곳의 계곡 물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최근 가까이에서 가르침을 듣지 못한 아쉬움에 스님의 육신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장면에서라도 공부가 있을까 하여 장례를 치르는 5일 내내 경내를 거닐었다. “큰스님은 한마디로 공심이 있었어요….” 구참 납자들이 토해내는, 고우 선사가 남긴 언행일치의 일화들이 사리처럼 빛나고 있다.

“다른 사람과 무한경쟁 하지 말고 스스로 무한향상을 하세요. ‘본래 부처가 부처 되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평소 고우 선사께서 들려주셨던 말씀들이 화두처럼 뇌리에 맴돈다. “IMF 외환위기 때 한숨짓는 식당 주인에게 ‘한 사람의 손님이 오더라도 은인으로 생각하세요’라는 말을 해주어 그 식당이 잘되었지”라는 일화를 들려주시던 선사의 표정이 문득 떠올라 혼자 빙그레 미소짓기도 하였다. 누군가가 선사께 떠나기 직전에 한마디 남기는 말을 여쭸더니 “그 노장 그렇게 왔다가 그렇게 갔다고 하라”고 한 말씀이 계곡 물소리처럼 오랜 여운으로 남는다.

짧거나 길거나 삶은 누구나 귀하다. 오직 한 번뿐인 삶을 무한경쟁 속에 살 것인가, 아니면 무한향상 속에 살 것인가는 오직 자신에게 달려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나와 다른 이들의 삶을 가벼이 여기고 방심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마음을 챙기고 사는지 안부전화라도 자주 할 일이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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