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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장애와 질병이라는 ‘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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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범주’는 국어사전에 “동일한 성질을 가진 부류나 범위”라고 정의되어 있다. 인간은 일정한 범주를 통해 세계의 존재와 대상을 구분하고 인식한다. ‘범주’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category’의 형용사형 ‘categorical’은 ‘단정적’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우리는 누군가가 어떤 범주에 속하는지에 따라 그가 이러저러한 사람일 거라고 단정하기도 한다. 장애인 운동을 하면서 오랫동안 고민해 온 범주가 있다. 바로 장애와 질병이다. 본격적으로 고민을 하게 된 건 정신장애인 운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였고, ‘아픈 사람 정체성’과 ‘질병권’이라는 개념의 등장, HIV 감염인도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장애인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논의의 활성화도 또 다른 계기가 됐다.

경향신문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장애학에서는 전통적으로 장애와 질병을 구분해 왔다. 질병은 치료나 죽음에 의해 종료되는 일시적인 것인 반면 장애는 지속된다는 것이 기본적 논거가 된다. 하지만 인간의 몸에 존재하는 손상이라는 차이가 질병과 장애라는 양자의 범주를 통해 배타적으로 구분될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예컨대 이런 것과 비슷하다. 교양서와 학술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상이한 범주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이 구체적으로 쓰이고 출간되었을 때, 그 책은 교양서 혹은 학술서로 단정될 수도 있지만 어느 한쪽에 속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졸저〈장애학의 도전〉은 ISBN 부가번호 첫 자리가 ‘0’으로 시작하는 교양서이지만, 한 출판문화상에서는 교양서가 아닌 학술서 부문의 본심에 올랐다. 철학은 인문학 범주에 속하고 정치학은 사회과학 범주에 속하지만, 정치철학이나 장애학은 어느 한쪽에만 속하지 않는다.

장애와 질병을 구분하려는 동기는 ‘장애의 병리화’에 맞선 장애 해방 투쟁의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러나 나는 일견 모순적인 말처럼 들리겠지만 ‘질병의 병리화’에 맞선 투쟁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이 ‘여성의 여성화’에, 즉 여성의 여성다움과 여성 역할(female role) 강요에 맞섰던 것처럼 말이다. 병리화라는 사회문화적 과정 속에서 질병은 통상적인 삶의 현상이 아닌 일탈로 간주되며, 질병이 개별성과 고유성을 지닌 인격체의 특성들 중 하나로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인간이 질병으로 환원되는 전도가 발생한다. 탤컷 파슨스가 말했던 ‘환자 역할’(sick role)이란 이 같은 전도를 뒷받침하는 개념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의학은 질병을 가진 사람의 삶에 복무하는 서비스가 아닌 그 사람의 삶을 통제하고 좌우하는 권력이 된다.

‘환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patient’는 ‘참고 기다리는’을 의미하는 형용사이자, ‘수동자’를 의미하는 명사이기도 하다. 즉 근대 의학은 환자를 의사의 판단과 결정을 일방적으로 기다리고 따라야 하는 자로 만들었다. 결국 한 인간의 주체적 삶이 의료 권력의 장 안에서 억압되는 조건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장애와 질병을 구분하고 장애만을 그 의료 권력으로부터 ‘개념적으로’ 탈출시키는 것을 통해 모종의 해방이 달성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장애는 질병과 잘 구분되지만 또 어떤 장애는 분명히 질병과 겹치며,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우리 모두는 병들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니 말이다.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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