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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국정추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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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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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벽(1730-1775), 국정추묘(菊庭秋猫): 국화 핀 뜰 안의 가을 고양이, 지본채색, 29.5×22.5㎝, 간송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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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옥상에 고양이 가족이 살고 있었다. 이웃의 증언에 따르면, 뒷집에서 새끼를 낳은 고양이가 집주인에게 쫓겨 우리 집으로 넘어왔다고 한다. 우리는 새끼가 자라서 스스로 떠날 때까지 그들의 동거를 허락하기로 했다.

검은색, 노란색, 흰색이 모두 섞인 코숏 카오스는 두 마리의 검은 고양이와 한 마리의 치즈태비를 낳았다. 옥상 한쪽을 내어준 덕분에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새끼들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기대 이상이다. 처음에는 사람의 인적이 느껴지면 바로 지붕 밑으로 숨기 바빴던 아이들도 제법 당당하게 옥상을 돌아다닌다.

꽃그늘 아래 앉아 새끼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어미 모습이 변상벽의 그림을 빼닮았다 싶어 그림을 뒤적여본다. 산수화 천재가 넘쳐나는 조선의 도화서에서 자괴감에 빠져 있던 변상벽을 구해준 것은 고양이다. 고양이를 꾸준히 관찰하며 화폭에 옮기던 그는, 변고양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실력자가 되었다.

“재주란 넓으면서도 조잡한 것보다는 차라리 한 가지에 정밀하여 이름을 이루는 것이 낫다. 나 또한 산수화를 배웠지만, 지금의 화가를 압도하여 그 위로 올라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사물을 골라 연습했다. 굶주리고 배불러 하며 기뻐하고 성내는 모습들에 익숙해지니 고양이의 생리가 내 마음에 있고 그 모습이 내 눈에 있어 그다음에는 고양이의 형태가 내 손을 닿아 나오게 되었다.”

고양이 묘(猫)와 늙은이 모(모)의 중국어 발음이 같아서 고양이 그림을 장수의 상징으로 여겼던 당시 조선인들 사이에는 고양이 그림을 주고받는 것이 유행했다고 한다. 풍요로운 추석, 고양이 그림을 그릴 재주는 없으니, 지인들에게 옥상 위 고양이 사진이라도 보내면서 서로의 무병장수를 기원해야겠다.

김지연 전시기획자·d/p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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