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압구정 한양' 살던 100억 자산가…'40년 마약' 끊게 한 아내의 한마디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회복자들]①재활센터 경기도 다르크 임상현 센터장

17세때 시작한 '40년 마약' 중독서 어떻게 회복했을까

[편집자주]중독과 상처, 고통에서 회복돼 다시 출발한 사람들의 드라마, '회복자들'을 만났습니다. 삶의 끝에 내몰린 절망을 희망으로 이겨낸 우리 이웃들입니다.

뉴스1

1일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마약중독재활센터 경기 다르크(DARC, 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에서 임상현 센터장이 마약 중독자였던 입소자와 대화를 하고 있다. 2021.9.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남양주시=뉴스1) 이승환 기자 = 압구정 한양아파트는 1980년대 고소득 강남 시대를 연 부의 상징이다. 당시 30대였던 임상현씨(70)는 그 아파트에 입주해 있었다. 임씨는 성인 디스코 바와 룸살롱, 가라오케 등 유흥시설 세 곳을 운영하는 100억대 자산가였다. 모델 출신 아내와 두 아들을 곁에 둔 그는 자수성가한 사업가처럼 비쳤다

승승장구하던 임씨는 그러나 마약·도박 중독에 빠져 지냈다.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다. 임씨는 이후 감옥을 들락날락하다가 마약 관련 전과 9범이 됐다. 약값과 도박 빚으로 재산도 탕진해 빈털터리가 됐다.

2009년 출소 후 그는 주차관리 요원과 대리기사로 일했다. 하루 4시간만 자고 일했다. 그렇게 10년간 모은 돈을 투자해 2019년 4월20일 경기도 남양주시에 약물중독재활센터의 문을 열었다. 센터 이름은 경기도 다르크(DARC·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

40년간의 마약 인생을 청산한 그는 센터에서 약물 중독자의 회복을 돕고 있다. '센터장' 명함을 건넨 그 자신이 '회복자'이기도 하다. 백발의 긴 머리를 뒤로 동여맨 임 센터장은 범상치 않은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17세 때부터 마약"

지난 1일 경기도 다르크 안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 마약은 언제부터 했나요?
"17세 때부터 했습니다. 서울역 인근에 살고 있었지요. 요즘은 주변에 대우빌딩이 있고 남대문경찰서가 있는데 그때만 해도 서울역은 우범지대였어요.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고 마약을 복용했어요. 마약류인 '향정신성의약품' 계열 세코날을 했지요. 인근 자유시장에서 미군 물품을 취급하는 상인들이 세코날을 몰래 팔았어요. 진통 효과가 있지만 환각 증세를 일으키는 약물입니다."

- 단속이나 제지 움직임은 없었습니까.
"그럴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먹고살기 바빴죠. 서울역 일대가 집장촌이었어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그 인근에서 나왔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나그네'들이 매일 싸우고 그랬죠. 저희 어머니도 나그네였습니다. 제가 세 살 때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이곳으로 상경했어요. 그때 어머니 나이는 19살이었습니다."

- 밥벌이는 어떻게 하셨나요?
"20대부터 40대까지 일을 했습니다. 처음엔 술집 뒤를 봐주는 건달 노릇을 했어요. 돈을 좀 벌어 가라오케와 성인 디스코 바, 룸살롱을 이태원에 차렸지요. 가라오케는 ‘연가'라는 상호의 가게였는데 한국에서 운영된 '2호 가로오케'입니다. 성인 디스코 바에서는 나체쇼를 선보여 손님을 끌어모았지요. 일본인 관광객이 주 고객이었어요. 한국인과 일본인이 서로 적대시하고 있었는데 일본인들이 갈 만한 데가 딱히 없었거든요. 제가 운영하는 가게 세 곳을 오가며 2박 3일 동안 마음껏 유흥을 즐기게 가게를 꾸렸죠."

뉴스1

부산지검과 부산본부세관이 압수한 소매가 1조3000억원 상당의 필로폰. (부산지검 제공)2021.9.1/뉴스1 © News1 노경민 기자


- 마약은 계속 하고 있었나요?
"1977년 대마관리법 시행 전만 해도 대마를 해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별다른 제지 없이 대마초를 피울 수 있었죠. 그러다 고위험 마약류 코카인·필로폰·헤로인까지 모조리 했습니다. 초기에는 일주일에 한두 차례 했죠. 내성이 생기니 매일 하게 됐습니다. 완전히 중독됐을 땐 하루에 대여섯 차례 필로폰을 했어요. 마약이란 게 한 번에 중독되지 않습니다. 스며들 듯 천천히 중독되지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끊고 조절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요."

◇'마약 복용' 숨기고 아내와 결혼

그는 마약 복용자란 사실을 숨기고 아내와 3년간 만나 1984년 결혼했다. 아내는 그보다 여섯 살 어렸다. 신혼집은 압구정 한양 아파트였다. 당시 그의 재산은 100억원대였다. 현재 돈으로 환산하면 최소 300억원일 것이다.

당시 정부는 통행금지령을 내렸지만 이태원은 '특구 지역'이라 문제없이 통행할 수 있었다. 그는 "야간에 손님들이 술 마시러 왔다. 돈은 계속 벌었다"고 말했다.

- 그러다 언제 문제가 생긴 거지요?
"30대 어느 날 정신분열증(조현병)이 걷잡 수 없을 정도였어요. 환시, 환청, 환각, 편집증이 한꺼번에 찾아왔죠. 피해망상증에도 시달려 집안에서 폭력적으로 변했어요. 아내를 의심하고 부모를 의심하고 종업원까지 의심했죠."

- 아내는 왜 의심한 거죠?
"결혼한 여성들, 그러니까 주부들이 마약을 많이 했어요. 우울증 있거나 다이어트하려는 주부들이 필로폰을 했지요. 필로폰에는 각성 효과가 있어 우울증에 도움 된다고 생각했던 거죠. 또 각성상태가 이어져 잠을 자지 않게 돼 살 빼는 데 효과적이라 인식했어요. 주부들이 마약에 취한 상태로 동숙도 하고 그랬습니다. 정신분열증이 심해지니까 제 아내도 그러는 게 아닐까 의심한 거죠."

- 증세가 정말 심각했네요.
"아파트 15층에 살았는데 1층에서 뚜벅뚜벅 걸어 올라오는 소리가 또렷이 들리는 거예요. 그러더니 아내 옆으로 한 남성이 보였어요. '이놈, 내 아내와 바람피우고 있구나' 소리치며 흉기를 휘둘렀죠. 그러자 남자는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가 숨었습니다. 물론 모두 환청, 환각이었습니다. 제 삶은 망가지고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사업은 궤도에 올랐다. 직원들에게 사업장 관리를 맡겨도 문제없을 정도였다.

임 센터장은 그사이 도박판을 전전했다. 금·토요일은 경마를 하고 수·목요일은 경정을 했다. 월·화요일에는 카지노를 했다. 사실상 매일 도박을 한 셈이다. 임 센터장은 "100억대 재산은 마약과 도박하다가 날린 것"이라고 말했다.

- 마약 전과 9범이라고 하셨죠?
"그중 7번은 아내가 신고해 잡혀 들어간 것이에요. 1번은 제가 자수한 것이고요. 다른 1번은 함께 마약하는 후배조차 '너무 심각하다'며 저를 신고한 것입니다. 가세가 기울고 재산을 날려도 중독은 떨쳐지지 않더군요. '재활' '단약' '회복'을 돕는 지원단체나 시스템이 없어 약 끊기 더 힘들었습니다."

- 아내가 떠나지 않은 게 신기하군요.
"아이들 때문이었겠죠. 밤늦게 들어가면 거실에 있던 아내와 아들들이 모두 방으로 후다닥 들어갔어요. 방에서 '저 인간, 죽지 않고 왜 또 들어왔냐'고 수군대더군요."

뉴스1

1일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마약중독재활센터 경기 다르크(DARC, 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에서 임상현 센터장이 마약 중독자였던 입소자와 대화를 하고 있다. 2021.9.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마약과 도박을 어떻게 끊은 것입니까.
"마지막 출소가 2009년 말이었어요. 너무 비참하더군요. 아내는 나를 감옥으로 보내고 주위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는데 저는 여전히 약쟁이로 살고…….

원래 교회를 다녔고 교회 다니면서도 마약과 도박을 했는데 마지막 출소 후 엉엉 울면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빌었어요."

◇"나 맛있는 음식 사줘"

이후 아내를 처음 만났던 당시가 떠올랐고 한다. '내 여자를 고생시키면 안 된다'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자'는 평범하고 소소한 다짐이 생각났다. 어느 날, 아내가 그를 붙잡고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보, 이제 마약·도박은 조금만 하고 나 맛있는 것 좀 사주면 안 돼?"

-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만날 도박하지 마라, 마약하지 마라했던 아내가 '조금만 하고 맛있는 것 사줘'라고 해서 처음엔 '왜 이러나' 싶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도박장에서 베팅하려는데 그 말이 번뜩 떠오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길로 도박장에서 나와 한밤에 아내를 불러내 만났어요."

- 맛있는 음식 사드렸습니까?
"아내가 새우를 참 좋아하지만 돈이 없어 자장면을 사줬어요. 그런데 자장면을 먹던 아내가 갑자기 엉엉 우는 것이에요. 자장면을 먹다가…….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었죠. '나는 정말 못난 놈이구나' '저 착한 여자를 너무 힘들게 했구나'…… 온갖 회한이 밀려왔습니다."

- 그래도 끊기 어려운 게 마약 아닙니까?
"유혹이 올 때마다 저와 가족들의 비참한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아내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됐어요. 젊었을 때 모델이었던 아내는 패션 감각이 좋고 외모도 반반했습니다. 그런데 남편 잘못 만나 중년이 돼서, 쓰레기 줍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어요. 여름에 쓰레기를 수거하면 어떤지 아십니다. 구더기가 그 위를 타고 올라옵니다. 아이들도 고등학생 때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더는 인생을 허비할 수 없었습니다."

②에서 계속……
mrlee@news1.kr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