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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카드까지 던진 北... '대화' 진짜 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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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018년 2월 11일 문재인(오른쪽 두 번째) 대통령과 김여정 당시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의 공연을 관람하던 중 대화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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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북한이 어렵사리 재가동된 남북 통신연락선을 다시 끊을 때만 해도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관계 개선은 물 건너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24, 25일 불과 이틀 사이 북한은 관계 복원의 종착역인 ‘정상회담’까지 들먹였다. 남북 간 변변한 소통 창구 하나 없는 상황에서 몇 단계를 건너뛰고 ‘한반도의 봄날’을 거론한 셈이다. 깜짝 제안을 둘러싼 해석은 분분하나 북한의 의도는 결국 하나로 수렴된다. ‘비핵화 선(先)조치 없이 대화는 없다’며 꿈쩍도 않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를 움직이기 위해 남북대화를 적극 활용할 필요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美보다 남북대화 먼저... 선명해진 의지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25일 발표한 담화에서 “종전이 때를 잃지 않고 선언되는 것은 물론 북남공동연락사무소(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북남수뇌상봉(남북정상회담)과 같은 문제들도 이른 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남북 소통의 결과물을 강조한 건데, 전날 종전선언을 “좋은 발상”이라고 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정상회담까지 언급해 대화 의지는 훨씬 선명해졌다.

대화의 ‘조건’은 여전했지만 초점이 보다 또렷해졌다. 김 부부장은 전날 담화에서 ‘대북 적대시 정책’과 ‘불공평한 이중 기준’ 철회를 요구했다. 이날도 적대시 정책 폐기를 주장하긴 했으나 한 번에 그쳤다. 대신 “이중 기준은 절대로 넘어갈 수 없다”고 장황하게 설명했다. 최근 문 대통령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도발’로 규정한 것을 계속 문제 삼으며 정당한 군사훈련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그렇게만 해주면 보상으로 “경색된 남북관계를 하루빨리 회복하고 평화적 안정을 이룩할 수 있다”고 했다. 철저히 남북관계 개선을 우선 목표로 두고 있다는 의중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종전선언·정상회담 말 많아도... 목표는 북미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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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오른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한 뒤 맞잡은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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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를 북미대화 재개의 ‘종속변수’쯤으로 치부해왔던 북한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배경엔 여러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최종 목표는 역시 북미협상 재개다. 유엔의 대북 제재 해제 등 적대 정책을 없애려면 미국의 동의가 필수지만, 갖은 도발에도 바이든 행정부는 “비핵화 조치가 먼저”라는 원칙을 조금도 훼손할 마음이 없다. 이에 남측이 이중 기준을 철폐할 경우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를 만들고, 이를 미국의 태도 변화를 유인하는 발판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매개는 종전선언이다. 지난한 협상이 필요 없는 종전선언은 북한의 부담이 덜하고, 만약 미국이 반대라도 하면 '한반도 평화를 가로막는다'는 공세 소재로 삼을 수도 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26일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진 김 부부장의 잇단 담화는 북한이 대화 재개의 순서를 남북에서 북미로 확실히 정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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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남북관계 주요 일지 및 발언. 그래픽=송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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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도부의 조급함도 유화 제스처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남북협상에 적극적인 현 정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남측 새 정부 출범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려면 대화 프로세스의 최소 기반은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북한은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심각한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외부 지원이 절실하다. 제재 해제를 통한 국제사회의 전면 지원이 최선책이지만,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진 상황을 감안해 일단 남측의 도움이라도 받기 위해선 종전선언, 정상회담 등의 명분을 쌓을 계기가 있어야 한다.

열어놓은 '퇴로', 진정성 의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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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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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부장은 언제라도 대화를 거부할 수 있게끔 퇴로도 열어놨다. 그는 이날 담화가 “개인적 견해”라고 밝혔다. 사실상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김 부부장의 권위가 실린 동시에, 남북관계 개선에 이은 북미협상이란 북측 구상이 의도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 개인적 의견이라는 ‘완충 장치’를 통해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앞으로 훈풍이 불어올지, 폭풍이 몰아칠지 예단하지 않겠다”는 그의 언급에도 압박과 도발의 속내가 함께 들어 있다는 풀이가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여정 개인의 견해임을 부각한 것은 형식상 북한의 대남정책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한미에 대화와 대결, 두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다시 공을 넘긴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김민순 기자 s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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