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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첫 한국 방문, 일본 비웃을 일이 아니더군요 [이봉렬 in 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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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렬 in 싱가포르] 재외국민 격리면제서 발급 직접 해보니

지난 4월 28일,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코로나19 예방접종을 모두 마친 경우 5월 5일부터 해외에서 입국할 때 자가격리를 면제하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상을 국내에서 예방접종을 받은 경우로만 한정했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해외에서 예방접종을 마치고 한국에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재외동포들은 혜택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내국인의 해외여행보다 재외동포들이 한국에 있는 가족을 방문하는 게 더 급한 일이라 생각되어 그에 대한 기사를 하나 썼습니다. <한국에 아픈 부모님이... 백신 맞았는데도 안 되나요? http://omn.kr/1t2xy>

꼭 그 기사 때문은 아니겠지만 기사가 나간 후 한 달이 지난 6월 13일, 김부겸 국무총리는 해외에서 백신 접종을 완료한 경우에도 직계가족 방문이나 중요한 사업·학술·공익 목적으로 입국할 경우 심사를 거쳐 2주간의 자가격리를 면제받을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시행일은 7월 1일부터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지난 9월 5일, 싱가포르 정부는 한국에서 싱가포르로 입국하는 여행객의 격리기간을 2주에서 1주로 줄인다고 발표했습니다. 기존에는 코로나 방역 상황이 좋은 호주, 뉴질랜드, 브루나이, 캐나다, 독일 등 다섯 개 나라만 1주였는데 여기에 한국이 포함된 겁니다. 아직 한국의 확진자 수가 줄어들지는 않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방역을 아주 잘 하고 있는 편이라 이런 변화가 가능했습니다.

한국 갈 때는 격리를 안 받아도 되고, 싱가포르에 돌아올 때는 일주일만 격리하면 되는 상황이라 2년 넘게 찾아 뵙지 못한 부모님을 뵙기 위해 비행기 표를 끊었습니다. 한국에 가서 격리면제를 받기 위해 필요한 건 출발 72시간 전에 실시한 PCR 검사 결과와 격리면제신청서 뿐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가까운 의원을 골라 PCR 검사 예약을 마치고 격리면제 신청을 하기 위해 재외국민을 위한 온라인 영사민원 서비스인 <영사민원24> 사이트에 접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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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사민원24> 사이트. 재외동포들이 영사업무를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고마운 사이트입니다. ⓒ 영사민원24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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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민원24>에서는 재외국민등록 신청부터 각종 여권 관련 업무 등 기존에는 영사관에 가서 해결해야 했던 일들을 온라인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휴대폰을 통한 본인인증에 어려움을 겪는 재외동포를 위해 회원가입과 본인인증 절차도 상당히 간단합니다. 엑티브엑스나 별도의 보안프로그램 설치도 필요가 없어 윈도 뿐만 아니라 맥OS나 휴대폰에서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외국에 살면서 한국 정부 사이트를 이용하는데 이렇게 쾌적한 환경은 처음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온라인 격리면제 신청서에 기본적으로 입력해야 하는 개인정보를 다 채우고 나니 첨부해야 할 구비서류가 몇 개 있었습니다. 가족관계증명서는 온라인에서 발급받아 pdf 파일로 저장되어 있으니 그냥 첨부하면 됩니다. 백신접종증명서도 싱가포르 정부 사이트에서 pdf 파일로 받아서 첨부했습니다. 여권을 스캔해서 첨부하라고 했지만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첨부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모든 게 수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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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비서류 항목에 ‘격리면제 동의서’와 ‘예방접종증명서 진위확인에 대한 서약서’는 “자필 서명 또는 날인 후 스캔본 제출”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충분히 구현 가능한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 놨습니다. ⓒ 영사민원24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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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격리면제 동의서'와 '예방접종증명서 진위확인에 대한 서약서'입니다. 이 두 서류를 첨부하는 곳에는 "자필 서명 또는 날인 후 스캔본 제출"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동의서와 서약서 양식은 싱가포르 영사 홈페이지에서 파일로 다운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프린트를 한 후 거기에 날짜와 이름 그리고 자필 사인을 한 다음 다시 스캔을 해야 합니다.

집에 프린터와 스캐너가 함께 되는 복합기가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집 근처 PC방에 가서 프린터하고 사인하고 다시 스캔까지 해야 합니다. 최근에 격리면제서를 받아서 한국에 다녀온 친구에게 집에 프린터가 없는데 어떻게 했느냐고 했더니 대사관에 직접 가서 신청을 했다고 합니다. 싱가포르는 도시 국가라 대사관 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처럼 나라가 크고 대사관에 가는게 쉽지 않은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사관에서 직접 격리면제신청을 할 때는 신청서, 동의서, 서약서 등 세 장의 서류에 자필사인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할 때는 신청서에는 자필 사인이 필요 없습니다. 그렇다면 동의서와 서약서의 자필 사인도 온라인에서 다른 방법으로 충분히 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걸 하지 않고 자필 사인을 요구하는 바람에 집에 복합기가 없는 사람들은 온라인을 포기하고 시간을 내서 대사관까지 가서 직접 신청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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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리면제 신청을 위해 필요한 동의서와 서약서. 필요한 건 자필 사인 하나 뿐입니다. 이걸 온라인으로 구현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요? ⓒ 이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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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전 집에 복합기가 있어서 프린트를 하고 자필 서명하고 스캔해서 첨부했습니다. 다음 날 바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서약서가 제대로 첨부되지 않아서 신청서가 반려됐다고 했습니다. 파일을 첨부하는 과정에 다른 파일을 잘못 선택하는 실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 이름으로 로그인도 했고 접수번호도 받은 게 있어서 그 서약서만 다시 첨부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기존에 접수한 것과 상관없이 처음부터 다시 접수해야 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격리면제서가 필요한 사람은 저라서 처음부터 다시 접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24시간이 지나서 격리면제서를 파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 때 코로나 확진자 수 집계를 팩스로 하는 바람에 실시간으로 통계를 내지 못하는 일본 행정을 비웃는 기사가 많이 나왔습니다. 결제 서류에 말단 사원부터 사장까지 일정한 각도를 맞춰 도장을 찍는 일본 회사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IT강국이라며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행정도 온라인 접수에 자필 사인이 들어간 서약서를 요구하는 그 수준에서 멈춰 있는 것 같습니다. 백신접종을 마친 이들을 위한 격리면제 시스템이라는 게 이제껏 없던 걸 급하게 만든 거라 신청을 하는 국민 입장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정부의 서류를 발급받는 과정에서 개인이 프린트를 하고 사인을 하고 다시 스캔을 하는 과거의 방식에 대한 개선이 필요합니다. IT강국이라는 우월감, 그거 좀 더 오래 간직하고 싶습니다.

이봉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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