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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 없는 이 영화가 선사한 의외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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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종착역>

오마이뉴스

▲ 영화 <종착역> 포스터 ⓒ 필름다빈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누구나 순수했던 시절이 있다. 아직 세상 밖을 나가보지 않아 울타리 안의 세상이 전부이던 때.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을 잘 따르고 하지 말라는 것과 하라는 것만 잘하면 된다고 믿었던 때가 그립다.

유치원을 다니다 초등학교에 가면 중학교에 가고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는 게 인생이라 생각하겠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중학교에 가면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입시나 직업 교육으로 대학이나 사회로 향한다. 사회에 나아갔다고 다 끝난 것 같지만 또 다른 라운드의 시작이다. 이처럼 태어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숙명은 즐거움만 있지 않고 어려움과 좌절, 슬픔이 교차하는 허들 경기나 마찬가지다.

14살, 처음 만나는 끝과 시작

<종착역>은 중학교 1학년 소녀 넷이 여름 방학을 맞아 세상의 끝에 다녀온 이야기다. 우연히 사진동아리에서 친구가 된 네 여중생(시연, 연우, 소정, 송희)은 이번 여름방학에 뭘 할지 분주하다. 수다스럽게 계획을 나누던 중 선생님은 스물일곱 번 찍을 수 있는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나눠 주며 세상의 끝을 담아 오라는 황당한 숙제를 내준다.

세상의 끝이라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던 아이들은 고민 끝에 전철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역을 가보기로 한다. 그중에서 신창역은 1호선의 종착역 중 하나니까. 뚝 끊어지는 절벽이 연상돼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거란 추측에서였다. 시연의 그럴듯한 제안에 모두 동의했고 그날로 무작정 신창역을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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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종착역> 스틸컷 ⓒ 필름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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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만 타면 된다고 생각했던 신창역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구로에서 잘 갈아탔지만 천안역까지만 운행하는 전철을 잘못 타 신창역을 종점으로 하는 열차로 바꿔 타야 했다. 자다 서다 갈아타기를 반복하던 소녀들은 지쳐갔다. 그러다가 천안역을 신창역이라고 우겨도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떼를 쓰다가, 이왕 가기로 했으니 끝까지 가보자는 의견에 최종 목적지를 신창역으로 고쳐 잡았다.

하지만 웬걸. 철로가 끊겨 있을 거란 추측과 달리 신창역의 철길은 계속 이어져 있었다. 실망뿐만 아니라 힘이 빠져 이대로 주저앉나 싶었지만 한 친구가 옛 신창역 정보를 알아왔다. 예전 신창역에 가면 끊겨버린 철로를 구경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게 된다.

드디어 옛 신창역에 도착해 태어나기도 전에 끊긴 표를 구경하며 대기실을 서성였다. 옛 신창역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로 압도했다. 건물의 생명을 다하고 버려져 발길이 끊겼지만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다. 역을 나와 조금 더 걸어가 보니 기찻길은 도로로 변해 끊어져 있었다. 옛 철길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계란 꽃에 정신이 팔려 무작정 시골길을 걸어갔다. 이곳을 따라가면 끝이 보일까. 알 수 없는 물음표에 무작정 이끌려 갔다.

별거 아닌 이야기를 귀담아듣게 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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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종착역> 스틸컷 ⓒ 필름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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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세상의 끝을 찾아 옛 신창역까지 흘러들어온 소녀들이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다 떠는 이야기가 전부다. 특별한 연출이나 에피소드 없이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해 더위 쉼터에 모이고, 배가 고파 들어간 식당에서 허기를 채우고, 길고양이와 강아지를 만나 한눈팔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기 위해 마을 안쪽으로 깊숙이 돌아다니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 와중에 선생님이 내준 숙제도 꼬박꼬박 잊지 않고 열심히 사진도 찍는다. 영화 속 잠시 멈춘 영상으로 등장하며 책갈피처럼 장면과 장면 사이를 채워준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로드무비를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저마다 자신의 유년 시절에 빠져든다. 여름 방학을 맞아 시골 외갓집에 갔던 기억, 아무도 없는 곳을 정처 없이 들쑤시고 다녔던 추억이 살포시 고개를 든다. 자신의 추억과 아이들의 행동이 맞물리는 순간, 자연스레 입가의 미소를 머금게 된다. 잊고 있던 누군가를 떠올리고, 행복했던 지난날을 되새긴다.

옛 신창역에 도착해 뒤집혀 있는 역 간판을 뒤로 한 채 걸어가는 행동이 또 다른 세계의 입장처럼 보인다. 이후 마을을 배회하는 아이들만 있을 뿐 특별한 어른이나 또래 아이를 만나지 않는다. 역 부근의 한 마을은 세상 마지막 언저리에 있는 이름 없는 동네처럼 느껴졌다. 순수한 아이들은 위험하거나 두려움에 떨지 않고 작은 세상(마을)을 알아간다. 예고라도 한 듯 핸드폰은 방전되고 외부와 연락할 창구도 사라진다. 날은 어둑해져 돌아갈 길이 험해지자 무더위 쉼터(노인정)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그때 아이들의 진가가 발휘된다. 둘씩 짝지어 방과 거실에서 속내를 나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시시콜콜함 그 자체다.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동기인 권민표, 서한솔 감독은 따로 대사가 있기 보다 네 배우가 상황에 따라 흘러갈 수 있게 내버려 두었다고 밝혔다. 그래서 진짜 친구 같고 자연스러운 연기 비결이 정해지지 않고 무심코 내뱉는 말, 의식의 흐름에 따른 행동 하나하나에서 출발했다고 덧붙였다. 카메라는 재촉하지 않고 구석에서 가만히 이들을 관찰하고, 관객은 그저 아이들의 대화를 무심코 따라가며 흐뭇함을 느낀다. 롱 쇼트와 롱 테이크로 전원의 소리와 풍경이 소박하게 담겼다.

반복되는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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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종착역> 스틸컷 ⓒ 필름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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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듣자 하니 유년 시절 한 번쯤 해봤을 고민이다. 초등학교 때는 각각 개성 있던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가자 약속이나 한 듯 천편일률적으로 변한다는 내용이다. 벌레 가지고 장난치던 남자아이들도 중학교에 와서는 벽이 느껴진다는 이야기, 홀수였던 그룹에서 짝수가 되니 편하다 말 등.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도 서슴없이 털어놓는다. 익숙했던 학교와 가정을 떠나 낯선 여행이 갖는 묘미이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가족, 친구, 자신의 이야기도 꺼내면서 할머니가 된 먼 미래도 상상해 본다.

1박 2일 여행은 천진난만했던 아이에서 공부, 시험이란 부담을 알게 되는 사춘기로의 관문이라 해도 좋다. 놀기 바빴던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자마자. 벌써 고등학교, 대학 입시 걱정을 짊어지며 현실을 직시하게 돼버렸다. 정신없던 1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이 되어서야 한숨 돌릴 여유를 갖는다. 아이들은 방학에 무슨 숙제냐며 등한시했지만 점차 사진 찍기에 열중하고, 나와 타인(친구), 세상을 배우는 과정을 받아들이게 된다.

제한된 횟수의 일회용 카메라는 쉽게 찍고 삭제할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와 확연히 다른 속성을 지닌다. 찍은 사진을 바로 볼 수 있는 요즘 카메라와 달리 잘 나왔는지 현상해 봐야만 알 수 있어 무엇을 찍을지 신중하게 선택해야만 한다. 그래서 마지막 셔터를 누를 차례가 되면 아쉬움과 안도감이 교차한다.

영화는 끝났지만, 세상의 끝을 담기 위한 여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듯, 철로는 끊겼지만 도로로 변하고, 여름방학은 끝나가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는 것처럼. 비슷한 과정을 반복해 인생이란 길로 걸어가게 된다. 종착역에 다다랐지만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진다. 이제 막 첫 번째 통과의례를 마친 아이들은 사춘기를 지나 어른으로 자라날 것이며, 변치 않을 것 같았던 몸과 마음은 달라져 혼란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어렴풋이 철로를 이탈해도 괜찮고, 새로 길을 개척해도 좋다는 사실은 희미하게 각인될 것이다.

흔들리고 어두워 잘 찍은 사진이라 할 수 없는 사진에서 욕망 없는 행복을 발견했다. 종착역에서 만난 피사체 하나하나를 담은 사진들은 훗날 어떠한 인상으로 남았을까 괜히 궁금해진다. 세상의 끝을 알고 싶었지만 간직하고 싶은 순수함, 횟수가 줄어든 만큼 서로 가까워지는 순간을 포착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깊어가는 여름밤 후회도 하고 공감도 했던 그때, 멈춰버린 시간이 빛바랜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예쁜 영화다.

장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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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와 키노라이츠 매거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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