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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졸이라서, 여자라서, 머리가 짧아서... 내가 겪은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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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책임의 구조를 바꾸는 시작... 노동자에게 한없이 취약한 구조 변화돼야

'이대녀’는 누구의 이름인가요? 일의 세계에서, 학교에서, 병원에서, 거리와 광장에서 우리는 다양한 삶을 오늘도 살아냅니다. 우리가 부딪친 차별의 현실을 지우고 우리의 페미니즘을 시끄러운 예민함 정도로 치부하는 사회를 향해 우리는 말합니다. 당신이 아는 ‘이대녀’는 없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 차별금지법 제정, 더는 미뤄서는 안 됩니다. <기자말>

오마이뉴스

▲ 편의점에서 나를 집요하게 괴롭히던 남성 매니저의 폭언에 질려서 도망쳐 나왔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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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오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다 좋을 줄 알았다. 아빠의 폭언에서도 벗어나고, 지긋지긋한 입시 압박에서도 벗어나고, 엄마의 우울증에서도 벗어나고. 하지만 집을 나오고, 해방의 달콤함을 느끼기도 전에 나는 나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거대한 벽을 마주했다. 나는 집을 나오고 한 달도 채 안 돼서 알바를 시작했다.

청소년이었을 때부터 전단지 알바, 고깃집 알바 등등을 해본 이력이 있던터라, 내 조건에 맞는 시간제 알바를 구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중졸-고등학교 중퇴가 기재되어있는 내 학력란을 보고 의아해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사실 유학을 준비 중이라느니, 예체능을 준비 중이라느니 하는 거짓말도 술술 할 수 있었다. 내 작고 귀여운 학력을 온갖 거짓말로 숨기거나, 마치 다른 대안이 있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포장하며 부정해야하는 것이 서글퍼지는 때도 있었지만, 그런 건 밥을 굶는 것보다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를 보며 "그래도 학교는 다 나와야 사람 구실을 하는데.." 라는 말을 하며 혀를 차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그런 시선쯤은 어떻게든 (불편했지만) 버틸 만했다.

일터 안에서 일어난 황당한 차별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일터 안에서 일어나는 차별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일했던 음식점은 동네에서 아주 유명한 맛집이었다.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있던 곳이었는데, 점심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은 일상일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가게에 들이닥친 날이었다. 물 잔도 모자라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30분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공지까지 해야 하는 날이었는데, 그렇게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바빴던 순간, 사장이 직원들을 소집해 내린 비상대책은, '여자들은 음식을 서빙하며 손님들 앞에서 죄송하다고 말하며 귀엽게 애교를 부리고, 남자들은 계산을 맡으라는 것'이었다.

지시를 듣고 나는 댕 하고 뒤통수를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라고요?" 하고 되묻고 싶었을 정도로 굴욕적인 지시였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다른 서버들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바쁜 상황이라 뭐라 대꾸하기도 어려워서 말없이 자리를 떴지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인형이 되기를 요구받은 기분이었다. 서빙을 하러 왔는데, 왜 여자라는 이유로 '애교' 라는 감정노동까지 맡아야하는지, 왜 남자들은 그런 요구에서 자유로운지 의아했다.

그런 의아함이 있고나서 또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주말 사이에 기분전환을 할 겸 머리를 초록색으로 싹 탈색하고 출근한 날, 내 모습을 보고 놀란 기색이 역력했던 사장은 일하는 내내 표정이 어둡더니, 퇴근할 때가 다가오자 나를 불러냈다. 그리고는 대뜸 "이제 그만 나와줬으면 좋겠다"며 얘기했다. 이어서 "자기랑 상의도 없이 머리를 탈색해왔다"며, "여성 노동자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먼저 얘기를 해서 허락을 받아야한다"고 말했다. 벌써 두 달이나 넘게 일하고 있던 곳에서,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난데없이 해고 통보를 받아 벙쪄있는데, 사장은 그런 내 앞에서 갑자기 요구하지도 않은 인생 교육을 시작했다. 거의 30분 가까이 "어려서 이런 걸 잘 모르는 것 같다" 는 둥, "원래 사회생활이라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라는 둥, 나중에는 내 손까지 잡으면서 불쌍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주저리주저리 조언을 늘어놓았다. 심지어 "이번 일로 (내가) 더 깨닫는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너무 황당했다.

'부당해고는 본인이 하고 있으면서, 이 사람 뭐가 이리 뻔뻔하고 당당하지?'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일터를 나와 집으로 걸어오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이가 좀 더 많았다면 사회경험 어쩌고 하는 소리는 안들을 수도 있었을까? 나는 노동자였지만 동시에 어린 여성이었다. 사회에서는 정당한 사유 없이 부당하게 노동자를 해고하는 사장에게조차 어린 여성을 멋대로 가르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던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들은 주변 사람들은 길길이 화를 내며 당장 신고를 하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신고하지 못했다. 탈가정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여러 부담을 떠안고 법적 싸움을 벌일 준비가 안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런 일에 하나하나 전부 화를 낸다면 사건들이 너무 잦아서 에너지가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았다. 더럽고 치사해도 나는 더 살아야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여러 일터에서 줄곧 부당한 대우와 폭언, 차별적인 언행에 시달렸다. 이유는 내가 어려서, 여자라서, 대학을 안 가서, 중졸이라서, 머리길이가 짧아서, 가족과 관계가 원활하지 않아서, 남자친구가 없어서 등등으로 다양했다. 하지만 결과는 다 비슷했다. 악물고 버티고 버티다 일터 안에서의 사람들과 관계를 완전히 파탄내고 때려치거나, 잘리거나.

대부분 대졸을 원하는 구직 사이트

마지막으로 4-5개월 쯤 일했던 편의점에서 나를 집요하게 괴롭히던 남성 매니저의 폭언에 질려서 도망치듯 나와버린 날, 나는 더 이상 '알바'를 하고 싶지 않았다. '언제 잘릴지 몰라 늘 불안하고, 나를 대체품이나 예쁜 인형 정도로 취급하는 곳'이 아닌 곳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학력무관'의 조건으로 노동법이 '사장 바이 사장'(줄여서 사바사)으로 적용되는 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알바몬이 아닌 잡코리아에 들어가봤다. 거기는 좀 더, 막, 연봉같은 것도 있고, 뭔가 좀 더 나를 노동자로서 잘 대우해줄 것 같은 일터가 있어보였다. 하지만 사이트에 접속한지 10분도 안 돼서 나는 나를 받아줄 곳은 아무데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대부분의 직종이 대졸 이상이었다. '이 업무를 하는데 왜 대졸을 요구하지?' 싶은 곳조차도 대졸을 요구했다. 혹은 군필임을 요구했다. 대학을 안 간 여성인 나에게는 애초부터 존중받는 노동자가 될 권리가 없었던 것이다!

사회는 '이대녀'를 외친다. 분명 내가 어린 여성이기 때문에 일터에서, 노동에서 더 가혹하게 겪는 문제들이 있었다. 느닷없이 애교를 부리라는 사장의 지시라든가, 딸 같아서 그런다는 부탁하지도 않은 인생 교육이라든가. 하지만 여성이나 어린 사람같이 사회적으로 차별과 편견을 받는 사람들이 일터에서 그런 차별들을 더 쉽게 겪게 만드는 노동의 구조 또한 분명하게 짚어야한다.

부당한 지시에 대해 함부로 항의할 수 없는 것, 사장이 노동자들을 자의적으로 쉽게 해고할 수 있는 것, 부당한 피해를 겪은 당사자가 신고를 하는 것에 여러 부담을 감수해야하는 것 등등. 노동자에게 한없이 취약한 지금의 노동 구조를 말이다. 이런 권력관계 속에서는 사장이든 손님이든 노동자에게 자신의 편견을 거리낌없이 표현하고 차별적인 요구와 대우를 할 수 있게 된다. 또, 취업 시 학력란을 필수로 기재해야하는 것이나 대다수의 일터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대졸의 학력을 요구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 또한 비단 '이대녀'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취업 과정에서, 일터에서 더 많은 차별과 장벽에 부딪히는 여성들은 안정적인 생존을 위해 대학 학력이 필수 조건이라 느끼게 될 개연성이 더 높고, 사회 전반의 학력 차별의 문제나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를 한층 더 실감하는 것 같다.

'이대녀', '이대남' 운운하는 것은 20대 여성이 주로 겪는 문제를 세대의 문제, 소위 '젠더 갈등'의 문제로만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얘기하는 '이대녀', 혹은 '청년의 문제'는 그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차별과 편견을 야기하고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방치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무책임한 사회의 구조가 낳은 문제이다. 나는 더 이상 이 모든 것에 '이대녀의 문제'라고 이름을 붙여버리는 것을, 사회 구조의 문제를 어린 여성만의 문제로 호명하는 것을 멈추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에 저항하기 위해 하루빨리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으면 좋겠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의 구조, 나아가 책임의 구조를 바꾸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차별금지법을 시작으로 개개인이 겪는 차별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며, 특정 세대만의 문제도 아니고, 차별을 야기하는 보다 큰 구조로부터 비롯된다는 인식으로 나아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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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투명가방끈에서 활동하며 청소년인권운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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