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인싸’ 되려고 도둑질 인증…그 ‘관종을 조롱하는’ 진짜 악질 관종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위험한 도둑질 ‘디비어스 릭’


한겨레

최근 미국에선 위험천만한 ‘우유 상자 챌린지’(오른쪽 사진)에 이어 공중화장실 물건을 훔치거나 파손하는 ‘디비어스 릭’(사악한 도둑질) 같은 부적절한 틱톡 트렌드가 유행하고 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미국에서 또 다른 틱톡 트렌드가 최근 한달 동안 유행하고 있다. 트렌드에 붙여진 이름은 ‘디비어스 릭’이다. ‘악마의 도둑질’, ‘사악한 절도’ 정도로 번역되는 이 말에서 ‘릭’(lick)은 요새 젊은 미국인들이 절도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쓰는 것 같은데, 어떻게 옮기느냐는 딱히 중요하지 않다. 틱톡이라는 소셜미디어가 무엇인지, 틱톡에서 특정 콘텐츠가 어떤 방식으로 유행을 타는지 자세히 알 필요도 딱히 없다. 다만 해괴망측한 행동을 하고 인증하는 것이 십대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사실만 알면 되겠다. 그 해괴망측한 행동이란 학교 화장실 등 공중화장실에 비치된 물건들 예컨대 손세정제, 휴지걸이, 방향제, 심지어는 세면대와 변기를 떼서 집으로 훔쳐 오는 것이다. 훔칠 물건이 마땅치 않고 변기통을 떼기도 쉽지 않다는 판단이 들 때는 화장실을 어지러뜨리고 기물을 파손하는 행위를 촬영한다. 한 십대 틱톡 이용자가 입학한 지 한달도 안 되어 벌써 ‘악랄한 짓’을 했다며 학교 화장실에서 훔쳐 온 손세정제 통을 촬영해 올린 것이 유행의 계기가 되었다.

위험천만한 우유 상자 챌린지 이어

미국 청소년 학교 변기 등 절도 유행

입학 한달 만에 “악랄한 짓 했다”


유행이 번지면서 사태가 심각해지자 미국의 공립학교들은 지정된 시간 외의 화장실 이용을 일절 금지했다. 매우 급하다 싶으면 교사가 따라가서 감시하게 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이야기가 아니다. 학생들은 어른의 통제 없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얌전히 화장실 가서 볼일 보고 돌아올 것이라는 신뢰마저 스스로 없애버리고 있다. 유행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중화장실에서 물건을 훔치는 것을 넘어서 일반적인 절도 행위가 십대들 사이에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고, 이들은 일말의 수치심 없이 ‘디비어스 릭’이라는 제목의 인증샷을 올린다. 이 모든 게 단지 틱톡 조회수를 올려서 잠시나마 유명인이 되고 소위 ‘인싸’가 되기 위해서다. 또래들에게 암묵적으로 행동이나 비슷한 생각을 강요하는 ‘또래 압박’ 때문에, 하기 싫어도 하는 경우도 많다.

우유 상자를 계단처럼 쌓아놓고 올라가는 ‘우유 상자 챌린지’가 유행한 것이 불과 두어달 전이다. 플라스틱 상자가 튼튼하지 않은 탓에 굉장히 위태로우며, 열에 아홉은 오르는 자의 흔들리는 다리에 상자가 같이 흔들려 무너져버린다. 상자에 오르던 사람은 대개 머리부터 고꾸라진다. 전신마비에서 사망까지 우려되는 일이라 영상을 끝까지 볼 엄두도 안 난다. 심지어 우유 상자 챌린지를 할 때 옆에서 구경하거나 촬영해주던 사람이 상자를 차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게 더 재밌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우유 상자 챌린지 유행은 남녀노소를 불문했다.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고 크게 다치는 것을 넘어 땅바닥에 피가 흐르는 장면이나 즉석에서 사망한 장면만 모은 ‘사망 모음’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에 틱톡 본사는 우유 상자 챌린지 영상을 죄다 금지하는 조처를 내렸다.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본사에서 개입하자 그다음에는 도둑질과 문화유산이나 공공시설들을 부수는 반달리즘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우유 상자 챌린지나 디비어스 릭 같은 틱톡 영상들이 유튜브에 재업로드가 되면 조롱과 비난 일색의 댓글들이 달린다. 인류애와 희망을 잃었다거나 하는 댓글이 대다수며, 인류가 죄다 물갈이되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이 가장 많은 ‘좋아요’를 기록하고, 위험한 틱톡 챌린지로 입원했다거나 사망했다는 소식에는 “잘 죽었다”, “멍청이들이 멍청한 짓 하다 죽은 것뿐이다”라는 식의 경멸감 가득한 조롱이 지배적이다. 관심을 위해서라면 범죄 행위나 목숨을 위협하는 짓까지 불사하는 관종들에 대한 늘어만 가는 경멸감과 혐오감은 어떤 이들에게는 손쉽게 인플루언서가 되게 만드는 원료가 된다. 바로 관종을 조롱하는 것을 자신만의 콘텐츠로 삼는 유튜버들이다.

관종들의 황당한 만행들, 조회수는 높이고 평균수명은 낮추는 위험천만한 행위들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것은 유튜버들에게는 조회수 장사의 새로운 장르, 대중에게는 새로운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관종에 대한 조롱과 비난으로 맞불을 놓아도 관종의 활동이 위축되지는 않는다. 당연히 관종을 조롱하는 유튜버들과 관종들은 공생관계에 있다. 관종을 조롱하기 위해서는 일단 관종의 콘텐츠를 소개하고 공유해야 한다. 그러면 조롱 유튜브를 본 사람 중 일부는 그 관종의 원래의 게시물로 원정을 가서 악성 댓글을 달고 공격한다. 관종으로서는 새로운 조회수 유입이 되어 더없이 고마운 일이다. 관종 조롱 유튜버들로서는 소재가 끊일 일이 없어 매우 편하다.

‘관종들 비난하는 관종’ 등장하기도

조롱 콘텐츠도 악질 아닌지 의심해야

관종의 적은 또 다른 관종


관종의 적은 조롱 유튜버가 아니라 또 다른 관종이다. 네티즌들의 관심을 두고 경쟁을 해야 하는 관종들은 더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기 위해 더 기괴하고 더 위험한 스턴트 행위를 상연한다. 조롱 유튜버들도 관심 경쟁의 압박을 피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인플루언서 지위를 유지하려면 더 신랄하고 더 시원하게 조롱과 비난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 급기야 새롭고 참신한 소재를 선점하기 위해 무관심으로 잊힌 관종을 발굴해내기도 한다. 관종의 행태를 비난하기 위해,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사라져버릴 수 있었던 백해무익한 관종 영상을 기어이 끄집어 올려서 기괴한 ‘프릭쇼’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관종 조롱 콘텐츠의 유행에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거짓 효능감뿐이다. 관종들에게 욕 한 바가지 날려줌으로써 정의 구현을 한다는 착각, 관심과 조회수의 노예가 되어 미친 짓을 벌이는 광인들보다는 내가 낫다는 생각에서 오는 만족감이다. 이러한 상상의 상대적 우월감을 얻어가고자,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이 조롱 콘텐츠를 시청한다. 이들이 제공하는 ‘사이다’에 중독되어선 안 된다. 관종 조롱을 콘텐츠로 내세우는 사람이 오히려 더 악질의 관종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미디어문화 연구자. 첫 책 <프로보커터>에서 극단적 도발자들의 ‘나쁜 관종’ 현상을 분석했다. 한국의 20대 현상과 좌파 포퓰리즘, 밈과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같은 디지털 현상에 관심이 많다.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