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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병해·가격폭락·냉해 '삼중고'에 한해 농사 망친 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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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가을배추 '잎끝마름병' 창궐…횡성 양상추 뿌리까지 썩어

가격폭락에 버려진 무 "하늘이 야속해"…재난에 준해 지원계획

연합뉴스

출하 포기하고 버려진 무
[연합뉴스 자료사진]


(춘천=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말이 있지만, 강원지역 농민들은 올해 하늘이 야속하기만 하다.

제때 내리는 비는 작물을 영글게 하지만, 올가을 늦장마는 오히려 병해를 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농산물 소비 부진과 가격 폭락, 인건비 상승으로 농민들은 작물 수확을 포기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깜짝 추위로 일부 농가에서는 냉해까지 발생해 농사를 짓고자 하는 의지마저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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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끝마름병 번진 춘천 배추 농가
[촬영 양지웅]


◇ 드넓은 배추밭, 갈색으로 변해버려…'잎끝마름병' 창궐

영서 내륙 가을배추 주산지인 춘천 서면 신매리는 이맘때면 출하를 앞둔 배추들이 진한 녹색을 뽐낼 시기다.

하지만 19일 이곳을 찾았을 때 푸르러야 할 밭의 절반 이상이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가까이서 배추를 살피니 배추 겉잎이 끝부분부터 갈색으로 바짝 말라 있었다.

배추에 발생하는 병해인 '잎끝마름병'이었다.

밭 근처에서 콩을 타작하던 농민 최모(78)씨는 "평생을 여기서 농사짓고 살았는데 이렇게 배추가 형편없이 망가진 건 처음"이라며 "일찍 심은 배추부터 늦게 심은 배추까지 4천958.7㎡(1천500평) 밭에 병이 싹 돌았다"고 토로했다.

서춘천농협은 서면 지역 배추밭 150㏊ 중 135㏊(90%)에 병해가 발생했고 75㏊(50%)가 심각한 상황으로 잠정 집계했다.

병해가 심하게 발생한 배추는 상품성을 잃어 출하할 수 없다.

고스란히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된 셈이다.

농협 관계자는 "올해 배추 병해 발생이 심각하다"며 "가을철 늦장마가 큰 원인이지만, 종자와 육묘, 토양 등 여러 복잡한 이유가 뒤섞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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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장마에 병든 양상추
[연합뉴스 자료사진]


◇ 각종 병해 발생해 뿌리까지 썩어버린 양상추

횡성군 청일면 초현리의 드넓은 양상추밭에서 만난 농민 김영식(62)씨는 엉망이 된 작물을 살피며 깊게 한숨지었다.

밭을 살펴보니 제법 큼지막하게 자란 양상추 겉잎이 누렇게 변해 녹아내리고 뿌리도 썩어 있었다.

속은 스펀지를 누르듯 비었고 일부는 흰 가루가 묻어 나왔다.

이 같은 피해는 밭 대부분 작물에 퍼져 있었다.

김씨는 가을장마 뒤 기온이 올라 추석 이후로 무름병, 흰가루병, 녹병 등 각종 병해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병해로 상품성을 잃은 양상추는 내다 팔 수 없어 결국 밭에 갈아엎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작목연합회에 따르면 지역 내 양상추 재배 농가 3분의 2가 피해를 신고했다.

피해 면적은 축구장 126개 면적인 90만㎡(27만2천250평)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김씨는 "양상추 농사 12년 만에 이런 피해는 처음"이라며 "올해는 작황이 좋아 4천만 원 이상 소득을 거둘 것으로 기대했는데 모두 물거품이 됐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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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뽑아 버린 무
[연합뉴스 자료사진]


◇ "출하해봤자 손해"…횡성 들녘에 나뒹구는 가을무

농민들을 한숨짓게 하는 것은 날씨뿐만이 아니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농산물 소비 감소는 가격 폭락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외국인 노동자 수급이 어려워져 인건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결국 농민들은 애써 기른 작물의 출하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고랭지 채소밭이 모여있는 홍천 내면 율전리를 지나면서 길가의 자투리 밭부터 멀리 들녘까지 무가 나뒹구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병해로 질이 나쁜 무가 아니었다.

농민 이근학(66)씨는 밭에서 무를 뽑으며 "지금 이렇게 잘 자란 무를 출하하지 못하니 애가 탄다"며 "타산이 맞지 않아 다 내버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들여 키운 고랭지 무 20㎏들이 1상자는 현재 도매시장에서 5천 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1만 원 선은 유지해야 손에 몇 푼이라도 쥘 수 있지만, 지금은 오히려 출하 작업을 할수록 손해인 셈이다.

게다가 외국인 계절 근로자 수급난으로 인건비가 예년보다 50% 이상 껑충 뛰어올라 사람을 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수확 시기를 놓친 무는 과하게 자라 갈라지고 터질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사흘 전부터 깜짝 한파가 닥쳐 냉해까지 발생하고 있다.

전날 새벽 이곳의 기온은 영하 3도까지 떨어졌고, 무청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버린 냉해로 상품 가치가 떨어졌다.

이씨는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고 하는데 올해는 정말 하늘이 야속하다"며 "기자들이 좀 더 일찍 와서 농가 피해를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기온이 영하 7도까지 떨어진 평창의 수국 재배 시설에서도 냉해가 발생해 수천만 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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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 내린 무
[농민 이근학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재난 준하는 상황'…도·지자체 농가 지원 계획 수립 중

강원도 등 지자체는 올해 농작물 피해를 재난에 준하는 상황으로 판단해 농가 지원 계획을 세우고 있다.

양상추 피해가 심각한 횡성군은 지난 주말까지 접수한 농가 피해를 집계해 지원 계획을 수립 중이다.

재해 발생에 준하는 지원을 검토하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예비비를 빠르게 집행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강원도는 피해농가를 지원하고자 카카오커머스의 주문 제작 플랫폼인 카카오메이커스를 통해 고랭지 무 주문 판매를 진행했다.

20㎏짜리 1상자를 9천900원에 판매했고 4천 상자(80t)가 모두 팔렸다.

도는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외식 소비 감소와 이상 기후 등으로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 농가를 돕고자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

강희성 도 농정국장은 "코로나19로 농산물 소비 둔화와 경기 침체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며 "다양한 플랫폼으로 도내 농산물을 판매해 어려움을 겪는 농가를 도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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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하 포기하고 버려진 무
[연합뉴스 자료사진]


yang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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