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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숨더라도 꼭 함께할 테니” 은둔자의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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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퇴사에 큰 ‘로망’이 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코로나19 때문에 영업환경이 안 좋아진 회사에서 반은 등 떠밀려 나온 셈이기도 했다. 현재 무직인 박윤희씨(가명·30)의 ‘방구석’ 생활은 1년 전 퇴사 때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박씨의 집에는 24시간 각자의 방을 지키는 은둔형 외톨이가 2명으로 늘었다. 박씨보다 10배는 더 되는 기간 동안 자신의 방을 벗어나지 않았던 박씨의 오빠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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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형 외톨이의 현실을 묘사한 연극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의 한 장면 / 두산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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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형 외톨이에 관심 없는 사회

‘플렉스’나 ‘욜로’ 같은 말에 휘둘려 퇴사 후 해외여행부터 떠나기엔 시점이 맞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경을 넘기 힘들었다. 애초에 돈을 함부로 써댈 사정도 아니었다. 대신 얼마 안 되는 박씨의 퇴직금은 다음 직장을 잡을 때까지 생활비로 쓰였다. 이때만 해도 박씨는 자신의 ‘은둔생활’이 이렇게 오래 갈 줄은 몰랐다. 그는 “‘실업급여까지 받으니 한동안은 정말 먹고사는 생각하지 말고 좀 쉬자’라고 생각했던 게 1년이 지나버렸다”고 말했다. 이력서를 수없이 냈고 면접을 가끔 봤지만 합격 통지는 한 번도 못 들었다. 그 사이 박씨는 자신의 삶과 존재 전부까지도 점점 더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하루종일 집에만 있으니 어쩌다 한 번씩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기 방에서 나오는 오빠랑 마주치는 횟수도 늘었죠. 그런데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오빠의 그 부스스한 모습이 어느 날 거울 속 내 얼굴과 겹쳐 소름이 돋았어요.” 박씨는 정신이 들어 차근차근 자신과 오빠의 삶을 비교해봤다. 오빠가 방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는 박씨도 속속들이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방 밖으로 나와서 하는 활동만을 놓고 보면 두 사람의 생활은 큰 차이가 없었다. 박씨의 오빠가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오래 하긴 했어도 외출조차 하지 않은 채 방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엔 가까운 가게에 음료수를 사러가기도 하고, 참다못한 부모님이 오빠를 앉혀 놓고 진지하게 훈계를 하고 난 뒤 몇달 동안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나간 적도 있다.

하지만 일용직이나 건당 수당을 받는 아르바이트 외에 더 다양한 일을 구하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박씨의 오빠는 너무 자주 일을 그만뒀다. 그 점이 박씨에게도 두렵게 여겨졌다. “이번에 퇴사하기 전까지 4년 넘게 한 직장을 다녔지만 다음 일자리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으니까”라는 그는 “그렇게 몇 번 정도 구직과 퇴사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오빠처럼 돼버리는 게 아닐까 불안하다”고 말했다. 오빠에 대해선 거의 체념에 가까운 태도로 짤막한 대화만 하는 부모님이 박씨와는 대화를 많이 하는 점이 현재로선 남매간의 유일한 차이점이다. 다만 그런 부모님도 어느샌가 “오빠처럼 안 되려면” 같은 표현을 박씨에게 전할 때가 늘었다.

■“상담비 걱정에…” 냉가슴 앓는 가족들

‘은둔형 외톨이’라는 표현이 국내에 자리 잡은 지도 올해로 20년이 됐다. 2001년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강북삼성병원 등에서 일본의 ‘히키코모리’와 같은 현상이 한국에도 존재한다는 연구를 발표하면서 ‘은둔형 외톨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지난 20년 넘게 은둔형 외톨이들은 한국사회 어딘가에서 줄곧 존재해왔던 셈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가 전 세계로 밀어닥치면서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둘러싼 주변 환경도 변했다. 유례없는 ‘집콕’생활을 해야 했던 이들 가운데 다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한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비자발적으로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게 된 이들 중에는 박씨처럼 원래 은둔형 외톨이인 가족을 둔 이들도 있었다. 은둔형 외톨이의 가족들은 예상 못 한 또 다른 시련을 마주하게 된 셈이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김연수씨(가명·55)는 은둔형 외톨이의 어머니다. 김씨의 아들은 고등학생 시절 학교를 그만두고 한동안 집에서만 생활한 적이 있다. 그래도 그때는 아들이 검정고시와 대입 수능을 준비하느라 김씨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모습을 별로 불안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밖에 안 나가고 공부만 하나보다 싶어서 잘 됐다고만 여겼다”던 김씨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때는 아들의 대학 입학 후부터였다. 언제부터인가 점점 등교가 뜸해지던 김씨의 아들은 대학 수업에 거의 출석하지 않았다. 결국 신입생 첫 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택했다. 휴학을 했으니 군 복무를 미룰 수 없었고, 복무기간 동안은 괜찮아졌나 싶었던 아들은 전역 이후 아예 집에서만 지냈다. 김씨의 한숨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아들의 은둔생활을 보고 김씨는 한숨과 눈물을 보였지만 남편은 달랐다. “아이가 제대하기 전에 애 아빠도 하던 일이 안 풀려 한동안 실직상태로 있었어요. 그러다 군대에서 나온 뒤로 애랑 애 아빠가 온종일 집에만 붙어 있으니 애 아빠는 무조건 윽박지르기부터 하고, 애는 더 움츠러들기만 하고….” 부자간의 갈등은 아버지가 새 일을 찾으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김씨가 직장에서 나오면서 가계는 더욱 위기를 맞았다. 김씨는 “말이 프리랜서지, 전에 다니던 직장이나 업계 지인들에게 일거리를 받아올 때만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일감이 끊기면 손가락 빨고 살아야 하는 형편”이라며 “애 아빠가 벌어오는 돈도 아직 안정적이지 않아서 애 데리고 정신과 상담 한 번 마음 놓고 가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결국 김씨가 아들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 여유조차 부족한 채 온 가족이 그저 머뭇거리고 있는 상황에 있다.

국내에서 은둔형 외톨이들의 현실을 지켜보며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이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라고 강조한다. 어느 순간 사회와의 관계가 끊어지거나 위태로워진 이들이 쫓기다 못해 자신의 방으로 칩거하게 만드는 사회에 우선적인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은둔형 외톨이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중앙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도, 관련 지원법안도 없다.

여인중 동남정신과 원장은 2001년 국내 첫 은둔형 외톨이 연구에 참여했고, 2005년 당시 청소년위원회(국무총리실 산하)의 발주로 고교생을 대상으로 은둔형 부적응 성향을 가진 비율을 연구조사했다. 여 원장은 국내 은둔형 외톨이 수가 추정치로만 나오는 현실을 한탄했다. 그는 “어떤 방법을 써도 이 사회가 은둔형 외톨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며 “차라리 ‘맞습니다. 은둔형 외톨이들이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크니까 관심과 대책이 필요합니다’라고 거짓말이라도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반사회적’이라는 딱지가 붙어 비난 여론이 불붙을 때가 가끔 있긴 하다. 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운 생활을 하다 바깥으로 나와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나타났을 때다. 2018년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에서 흉기를 휘둘러 직원을 살해한 범인을 들며 은둔형 외톨이 전체에게 혐오의 시선이 향했던 때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편견과는 달리 전문가들은 은둔형 외톨이가 ‘반사회적’이기보다는 ‘비사회적’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능력이 다소 미숙해 오히려 사회의 가장 바깥쪽 자신의 방으로 내몰린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은둔형 외톨이 더 많아지나

코로나19로 촉발된 사회경제적 위기는 은둔형 외톨이를 양산하고 그들의 마지막 지원자인 가족마저 위기로 내몰고 있다. “사실 현장에서 보면 은둔형 외톨이와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는 구별하기가 어려워요. 처음엔 니트로 시작해도 자칫하면 은둔형 외톨이가 되기 쉬우니까.” 임성수 사회적협동조합 ‘연결과이음’ 공동추진위원장은 현재의 위기상황에선 이들을 위한 맞춤형 대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은둔형 외톨이들에겐 관계를 맺는 첫 단추인 대화와 화법, 눈치를 읽는 일까지 하나하나가 어려움투성이”라며 “누군가에게는 간단한 일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는 교육과 지원이 필요한 것처럼 은둔형 외톨이에게도 취업과 창업지원과정에서 이들에게 꼭 맞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간단한 통계로 봐도 코로나19 이후 은둔형 외톨이들이 양산될 위기임을 알 수 있다. 통계청의 올해 9월 고용동향 통계를 보면 전체 실업률은 2.7%, 청년층 실업률은 5.4%로 전년 동월 대비 모두 하락했다. 아예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9월의 전체 실업률 3.1%와 청년층 실업률 7.3%보다 낮아졌다. 코로나19 위기도 시점이 지나가면서 점차 고용환경에서 회복세가 나타난다고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구직에 성공하진 못했어도 구직활동을 이어간 실업자와 달리 아예 구직을 단념한 구직단념자 수를 보면 정반대의 흐름이 나타난다. 2019년 9월 53만2000명이었던 구직단념자 수는 올해 9월 61만5000명으로 늘었다. 구직을 포기해버리는 인구는 늘어났다는 점에서 고용시장에서의 양극화도 더욱 심해진 것이다.

비록 전국 단위의 통계는 아니지만 코로나19 이후 청년층을 중심으로 은둔생활을 한 인구가 늘어났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자료도 나왔다. 지난 9월 7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20년 청년 사회·경제실태 및 정책방안 연구’를 보면, 18~34세 청년 3520명을 대상으로 평소 외출 정도를 물은 결과 응답자 중 3.4%가 외출이 뜸한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이 응답률을 근거로 국내 은둔청년 규모를 지난해 기준 37만4156명가량으로 추산했다. 2017년 진행한 같은 연구에서 추산한 당시 은둔청년 규모 29만5934명과 비교하면 불과 3년 사이 26.4%(7만8222명)나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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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서울 성북구 공간민들레에서 은둔을 끝낸 은둔형 외톨이들이 다른 외톨이들을 돕는 상담 교육 ‘은둔 고수’ 양성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 K2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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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오기 위한 첫걸음 ‘인정’

한번 고립되면 좀처럼 밖으로 나오기 힘든 은둔형 외톨이들이 늘어날 여지는 많아지는데, 이들을 도울 가족들은 자신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에 경제적 위기까지 닥쳐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그나마 차근차근 자립을 준비해 고립과 은둔에서 벗어난 이들도 있지만 반대로 끝이 보이지 않는 수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가정도 많다. 오상빈 광주 동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은 500회 이상 은둔형 외톨이 가정방문을 다니며 제각각인 가정의 사례들을 만났다. 오 센터장의 오랜 요구와 활동은 2019년 광주광역시가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은둔형 외톨이 지원방안을 담은 조례를 제정하는 성과로 나타났다. 그는 수많은 가정에서 답을 찾기 힘든 경우들을 봤지만 그래도 좀더 나은 상황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 ‘인정’에 있다고 말했다.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뿐만 아니라 부모님이나 가족들까지도 상황을 바꾸는 데 어려움을 겪는 가정을 보면 대부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해요. 계속 부정만 하니 변화를 시도할 수가 없는 겁니다.” 오 센터장은 이들을 위해선 외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 현재로선 지원 센터를 만들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해도 예산이든 센터 설립이든 법적 근거가 없어 각 지자체에서도 사업을 진행하기 힘들다. 그는 “먼저 법률을 제정해야 모든 사업을 진행하고 예산을 책정할 근거가 마련된다”며 “물론 도움받을 곳을 찾는 은둔형 외톨이 가족들을 위해선 센터 설립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전문가들의 가정방문이 이뤄져야 실태 파악이든 대책 수립이든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은둔형 외톨이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협동조합을 준비 중인 임성수 위원장은 자신도 1년 가까이 은둔생활을 했던 은둔형 외톨이 출신이다. 그 역시 은둔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복지학과로 대학에 입학했으나 잘 적응하지 못해 겉도는 대학생활을 보냈고 졸업 후에도 일자리를 잡지 못했다. 니트로 출발한 집콕 생활이 은둔형 외톨이로 이어짐을 몸소 겪었다.

그가 집에 머무는 동안 마지막 피난처가 되길 바랐던 가정도 어느새 냉랭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아예 대화가 완전 단절된 건 아니었지만 다른 가족들과는 계속 찬바람이 불었죠.” 그래도 그는 다행히 그를 바깥으로 끌어내려고 격려를 아끼지 않은 친구 덕에 은둔생활을 하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됐다.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니 이대로 살다간 은둔형 외톨이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내가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니까 계기가 만들어졌어요.”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 통과돼야”

막상 벗어나고 보면 쉬워 보이지만 스스로를 인정하는 일은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는 물론 가족들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다. 당사자가 움직이질 않으니 가족들이라도 먼저 움직여야 하는데 그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 모여 만든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의 주상희 회장은 가족들의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주 회장은 “사실 은둔형 외톨이가 가정에서 고통을 겪는 동안 부모들도 같이 그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부모들의 마음도 말이 아닌 경우가 많다”며 “겨우 부모들의 모임으로 용기를 내서 온 사람들이지만 자신들을 여전히 부끄러운 부모로 생각해 자꾸 숨고 피하려 하는 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주 회장 역시 부부간의 가정불화로 자녀가 어릴 때부터 심리적인 타격을 많이 받아 은둔생활에 들어간 경험이 있다. “저도 우리 아이가 은둔형 외톨이라고 인정하는 데만 3~4년이 걸렸죠.” 주 회장도 한때는 강제로 아들을 병원에 보내기도 하고 강압적으로 은둔생활을 청산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한계, 그리고 아들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방치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을 만든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다행히 차츰 자립활동에 나선 그의 아들은 비록 다시 방으로 돌아가 한동안 머무를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밖으로 나올 정도로 바뀌었다. “이젠 적어도 저만큼은 아들이 다시 나올 수 있다고 믿어주기로 했어요.” 주 회장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 갈등과 문제 해결을 위한 싸움은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와 가족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할 비용도 적지 않다. 한국보다 10여년가량 일찍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공적 차원에서 논의한 일본에선 한 청년이 일하지 않고 은둔을 선택했을 때 1억5000만엔(약 15억8000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본다. 이는 청년 1명이 일자리를 찾아 사회에 진출했을 때 부담하는 세금과 보험료에서 무직자가 됐을 때 받아야 하는 생활보호 수급액을 뺀 금액으로 계산했다. 일본 내 은둔 청년은 60만명에 달하기 때문에 이미 900조원이 넘는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비용은 은둔형 외톨이와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으로 돌아온다.

광주와 부산 등에서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가 제정됐지만 서울은 이들을 위한 조례가 아직 언제 통과될지 알 수 없는 형편이다. 여명 서울시의원이 올해 안에 ‘은둔형 청년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의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은둔형 외톨이 가족들은 이 조례안 통과를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조례가 만들어져야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 등을 위한 첫발을 겨우 뗄 수 있기 때문이다. 은둔형 외톨이 부모 김연수씨는 이렇게 말했다. “은둔형 외톨이 가족들을 만나며 배운 게 있다면, 누구나 자신의 본모습이 이렇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더 나아질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이젠 우리 사회도 잘 눈에 띄진 않지만, 어딘가엔 이런 이웃들, 누구보다 밖으로 나오고 싶은 이웃들이 있다고 제발 인정해 줬으면….”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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