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지옥’의 그가 말했다 “공포 아니면 뭐가 기자를 참회시키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무튼, 주말-서민의 문파타파]

고소 고발의 달인 대선 후보

그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먼저 천사가 나타나 예언을 합니다.”

<오징어게임>에 이어 또다시 넷플릭스 세계 1위를 찍은 드라마 <지옥>은 신흥 종교 새진리회 의장인 정진수(유아인 분)가 이른바 ‘고지(告知)’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누구누구 당신은 몇 날 몇 시에 죽는다. 그리고 지옥에 간다. 그리고 그 시간이 되면 그 예언은 지옥의 사자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유튜브를 통해 그 말을 듣던 이들이 사이비냐 아니냐 티격태격할 때, 그들과 같은 카페에 있던 남성은 오후 1시 19분을 가리키는 휴대폰 시계를 보며 비 오듯 땀을 흘린다. 그가 고지받은 시각이 불과 1분 뒤였기 때문이다. 시계가 1시 20분을 가리켜도 아무 일이 없자,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찰나의 순간, 그는 그 고지가 그저 장난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한 가닥 희망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곧 지축을 흔드는 굉음이 나고, 킹콩보다 더 무섭게 생긴 괴물 세 마리가 나타난다. 지옥의 사자에게 기대했던 최소한의 신비감도 사치라 여겼는지, 그들은 다짜고짜 해당 남성을 두드려 팬다. 저렇게 심하게 때릴 수 있나 싶을 때쯤, 괴물들은 손에서 빛을 내며 남성을 태워 버린다. 환한 대낮에 괴생명체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지만, 이것도 엄연히 살인인지라 형사가 조사에 나선다. 이렇다 할 단서가 있을 턱이 없기에 형사는 새진리회 정진수를 찾아간다. 정진수는 형사에게 이 사건이 인간의 죄에 대해 신이 내린 심판이라 말한다. 인간이 정의롭지 못하니 신이 개입했다는 것. 형사가 반문한다. “뜯겨 죽을까 봐 선하게 산다, 그걸 정의라고 할 수 있나요?” 정진수가 답한다. “공포가 아니면 뭐가 인간을 참회하게 할까요?” 다시 형사의 힐난이 이어진다. “말씀대로라면 그 신은 인간의 자율성을 믿지 않는가 보네요?”

조선일보

일러스트=유현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십여 일 전인 11월 9일 새벽,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아내 김혜경씨가 왼쪽 눈썹 위가 2.5cm 정도 찢어져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훗날 화장실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다친 것으로 밝혀졌지만, 사건 초기 네티즌들은 원인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을 했고, 일부는 이 후보가 때린 게 아니냐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 후보 대변인이 “산책하다 사고가 났는지 잘 모르겠다”라는 괴이한 말을 한 데다, 안와골절이 의심돼 CT를 찍었다는 루머까지 퍼지다 보니 그런 주장이 나도는 게 전혀 이해 안 되는 일은 아니다. 여성의 얼굴에 멍이 들었을 때 같이 있는 남성이 범인인 경우가 제법 있으니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오해를 받은 적이 있다. 집에서 키우는 개가 아내 얼굴을 물었을 때, 아내는 만나는 지인들에게 내가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설명하려 진땀을 빼야 했단다. 유명 인사인 데다 대선을 앞두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만큼, 이 후보가 느끼는 억울함은 당시의 나보다 수만 배 더 클 것이다. 그걸 감안해도 이 후보 측의 대응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사고 다음 날인 10일 허위 사실 유포 네티즌 고발에 이어 의원단 기자회견(11일), CCTV 캡처 화면·신고 기록 공개(12일) 등이 이어졌고, 이 후보 측 온라인 소통단장인 김남국은 가짜 뉴스라고 제보받은 479건을 고발한다고 으름장을 놨으니 말이다.

고소·고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인터넷 매체 ‘더팩트’가 검정 선글라스에 검정 마스크, 검정 모자와 검정 망토를 착용한 여성의 사진을 올리며 ‘낙상 사고 후 처음 외출하는 김혜경씨’라고 보도하자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 복장이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악당인 다스 베이더를 연상케 한 데다, 그렇게 싸매고 나가는 건 뭔가를 감추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재명 후보는 그 다스 베이더가 아내인 김혜경씨가 아니라 민주당에서 보낸 수행원이라고 해명한 뒤 가짜 뉴스 확산이 심각하다고 성토했다. 이 후보 측이 법적 대응을 언급하자 더팩트는 사과와 함께 정정 보도를 했지만, 이 사건은 그들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보여줬다. 언론이 과잉 취재를 한다는 이유로 경찰에 스토킹 신고를 하고, 가게무샤를 내세워 함정을 판 뒤 걸려든 언론사에 법적 조치를 하는 행위가 과연 정상일까?

사실 이 후보의 지난 정치 이력은 고소·고발로 점철돼 있다. 2013년 형수에게 욕설한 것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성남일보>와 관련 게시물 208건을 고소했고, 2014년엔 형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과 관련해 채널A를 고소했다. 2015년에는 이 후보와 경기동부연합의 관련성을 보도한 <서울신문>을, 2018년에는 조폭 국제마피아파와의 유착설을 보도한 <그것이 알고 싶다>를 각각 고소했다. 대장동 사건 관련해서도 많은 기자가 고소·고발을 당했다. 이게 꼭 언론에만 국한되지 않아, 성남시장 재직 시에는 민원인들을 고소하기도 했고, 네티즌은 물론 자기 조카를 고소한 적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를 쓰는 언론인과 평론가에게는 직접 전화를 걸어 무언의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이재명입니다”라는 전화를 받고 나면, 한동안 그를 비판할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재명은 말한다. 언론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언론 환경이 매우 나빠 우리는 잘못한 게 없어도 잘못한 게 있을 수 있다는 소문으로 도배가 된다. 상대방은 엄청나게 나쁜 짓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넘어간다.” 드라마 <지옥>의 ‘화살촉’에 해당하는 방송인 김어준이 건재하고, KBS와 MBC, 한겨레와 오마이뉴스 등이 뒤를 받치며, 방통위와 선관위가 이 후보 편을 드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 후보의 현실 인식은 그저 오싹하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일이 펼쳐질까? 그 상황을 <지옥>에 나오는 형사와 정진수의 대사를 빌려 재구성해본다.

기자: 아무리 그래도 이만한 일로 기자 구속과 언론사 폐간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이재명: 그건 언론의 죄에 대해 대통령이 내리는 심판이에요. 언론이 정의롭지 못하니 정권이 개입할 수밖에요.

기자: 찢겨 죽을까 봐 좋은 기사만 쓴다, 그걸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나요?

이재명: 공포가 아니면 뭐가 기자들을 참회하게 할까요?

기자: 대통령님은 언론 자유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걸 믿지 않나 봅니다.

이재명: 언론 자유? 예의가 없어! 너 커트야!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