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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라이벌' 보시라이 옥중 장모상…아들 추모사 SNS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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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과 경합했던 보시라이 장모상

임시 외출 불허한 듯…빈소에 조화만

보과과 “사해가 집, 부모는 정신 요람”

좌파 SNS에 추도문 게재 후 삭제당해

중앙일보

8일 베이징 301병원 서원에서 중국 원로당원이자 보시라이 전 충칭 서기의 장모 판청슈의 장례식이 열렸다. [성도일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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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지난 2012년 낙마했던 보시라이(薄熙來·72)의 장모이자 중국공산당(중공) 팔로군 여전사 판청슈(范承秀, 1922~2021)의 영결식이 베이징 301 병원 서원(西院)에서 열렸다고 홍콩 명보와 성도일보가 9일 보도했다. 영결식장에 그의 딸과 사위인 구카이라이(谷開來·63)·보시라이 부부는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해외에 머무는 외손자 보과과(薄瓜瓜·34)의 애절한 추모문이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시됐다가 검열로 삭제당했다고 성도일보가 전했다.

보과과는 추모사에서 판청슈의 말을 빌려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그는 “외할머니는 이미 학을 타고 서쪽으로 가셨지만 당신의 행동과 인품은 하늘을 떠받치고 땅에 우뚝 섰습니다. 경중을 가리셨습니다. 집은 나라를 중시해야 한다. 집은 나라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 나라를 위해 수치를 당할 수도 있다. 소인배와 어울려 나쁜 짓 하지 말라.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하라. 포부가 이기적이어서는 안된다. 인민을 행복하게 하면 될 뿐이다”라고 했다. 지난 10년간 집안의 풍파를 되새기는 내용이다.

보과과는 지난달 23일 판청슈의 임종 직전에 2시간 4분 40초 동안 영상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보과과의 추모사는 8일 중국 좌파의 웨이신(微信·중국판 카카오스토리) 계정인 ‘홍기문헌’에 게재됐지만 곧 검열로 삭제됐다.

보시라이는 후진타오(胡錦濤) 집권 2기 권력서열 25위권인 정치국원이자 충칭시 서기를 역임했다. 왕양(汪洋·66) 당시 광둥성 서기 겸 정치국원은 물론 시진핑(習近平) 당시 국가부주석과도 차기를 놓고 경합했다. 2012년 3월 양회 폐막 다음 날 낙마했다. 그의 심복이던 왕리쥔(王立軍) 공안국장이 청두(成都) 미국 총영사관으로 망명을 시도한 뒤 한 달 만이다.

당시 왕리쥔은 보시라이의 부인 구카이라이가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를 독살한 사건의 은폐를 놓고 충돌했다. 보시라이는 2013년 9월 수뢰·부패·직권 남용 세 가지 죄목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지금까지 베이징 친청(秦城) 감옥에서 복역 중이다. 구카이라이는 2012년 8월 고의 살인죄 등으로 사형 집행 연기를 언도받고 허베이(河北) 옌청(燕城) 감옥에 복역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판청슈가 숨진 게 알려지자 보시라이 부부의 외출 허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하지만 8일 영결식에 대해 명보는 불참으로, 성도일보는 현장에서 참석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대신 빈소에는 “친애하는 엄마, 외할머니 우리는 영원히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시라이·리얼·과과가 조의를 표합니다”라고 적은 조화만 자리했다. ‘리얼(麗兒)’ ‘샤오리(小麗)’는 중국 건국 당시 소장이던 구징성(谷景生, 1913~2004)의 다섯째 딸이기도 한 구카이라이의 어릴 적 별명이다. 판청슈가 당령(黨齡, 당원 복무 기간) 80년이 넘는 원로 당원이지만 그녀가 퇴직했던 기관인 천시(陳希) 중앙조직부 부장을 제외한 다른 중앙 지도자의 조화는 보이지 않았다.

보과과는 8대 원로 중 한 명인 보이보(薄一波, 1908~2007)의 손자다. 보시라이는 보과과를 “우리 집안에서 앞날이 나무랄 데 없는 인물”이라고 언급했다. 재판정의 한 증인의 전언이다.

부친의 기대처럼 보과과는 추모사에서 부모와 집안을 강조했다. “몇 년 동안 사람들이 저에게 늘 묻습니다. ‘집 생각나니’라고. 전 마음속으로 상념에 빠집니다. ‘사내(男兒)에겐 온 세상(四海)이 집입니다. 어찌 가난한 집 딸내미처럼 집 생각난다 말하겠습니까?’라 대답한 뒤에도 ‘집이 무엇인가’ 생각합니다. 중국이 집입니다. 저에게 신성한 느낌을 줍니다. 아버지·어머니가 집입니다. 제 정신의 요람입니다. 할머니와 같이 밥 먹었던 그곳이 바로 늘 마음에 떠오르는 ‘집’의 모습입니다.”

보과과의 추모사는 계속됐다. “저는 34살이 되어 처음으로 외할머니 없는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바로 지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꿈은 아니겠지요?”라 한 뒤 가족을 그리워했다. “천 리도 지척이라 하지만, 저는 이미 습관처럼 할머니를 뵙지 못한 나날을 지냈습니다. 그렇지만 아침저녁으로 되뇝니다. ‘아버지, 어머니, 외할머니, 이모…’ 그분들은 제 하루하루의 근심이자, 생활의 안내자이십니다. 가(家)의 체현입니다.”

보과과가 보시라이 부부와 언제 마지막으로 만났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는다. 보시라이가 체포되던 2012년 3월 그가 베이징 서우두 공항으로 급거 돌아왔지만, 입국 심사 직전에 친지가 즉시 돌아가도록 조치했다고 명보는 전했다. 2016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보과과는 현재 캐나다 한 회사에서 애널리스트로 근무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7월 중공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 보이보의 3남이자 보시라이의 동생 보시청(薄熙成·70)이 원로 가족 자격으로 5호 차에 배정받아 천안문 망루에 초대받기도 했다.

보과과 추모사로 중국 SNS가 민감한 내용의 유통 채널로 다시 부상했다. 지난달 초 테니스 스타 펑솨이(彭帥)가 장가오리(張高麗) 전 부총리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도 SNS를 통해 폭로했다. 지난 4월에는 원자바오(溫家寶) 전 국무원 총리의 사모곡(思母曲)이 SNS를 통해 알려졌다. 원 총리의 글은 ‘규정 위반’을 이유로 퍼가기가 금지됐을 뿐 삭제되지는 않았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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