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저항정신 잊지 않으리"…베이징서 이육사 추모행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연합뉴스

중국 베이징서 열린 이육사 추모제
[촬영 한종구]


(베이징=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1904∼1944)의 순국 78주기를 기념한 추모행사가 16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교민들로 구성된 '재중항일역사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는 16일 이육사가 순국한 것으로 추정되는 베이징 둥청구(東城區) 둥창후퉁(東廠胡同) 28호에서 추모제를 열고 시인의 저항정신을 기렸다.

베이징의 명동으로 불리는 왕푸징(王府井) 지하철역에서 1.5㎞ 떨어진 둥창후퉁 28호는 일본 헌병대가 지하 감옥으로 사용한 곳이다.

이육사는 국내 무기 반입 등을 이유로 1943년 가을 경성에서 체포된 뒤 베이징으로 압송돼 이듬해 1월 16일 새벽 고문 끝에 숨졌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허름한 골목길 안에 자리 잡은 둥창후통 28호에는 일제가 패망 직전까지 사용했던 2층 건물이 남아 있다.

지하 감옥으로 사용된 공간은 물론 오래된 쇠창살 등도 그대로지만 지금도 주민이 산다.

기념사업회 매년 1월 16일이 되면 이곳에서 추모행사를 한 뒤 시인의 저항정신을 되새긴다.

회원들은 이날도 추모행사에 이어 시인의 시 '청포도'를 낭독한 뒤 일제가 지하 감옥으로 사용한 건물을 돌아봤다.

신용섭 기념사업회장은 "매년 추모행사를 할 때마다 주변 건물이 사라지는 등 조금씩 바뀌고 있다"며 "둥창후퉁 28호도 재건축 등으로 사라지기 전에 조치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이육사는 1927년 조선은행 폭파 사건과 관련해 첫 옥고를 치른 뒤 17년 동안 17번이나 수감됐다.

밤낮 없이 감시하는 일제 순사의 눈길과 갖은 고문 속에서도 결정적 증거를 잡히지 않은 채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본명은 원록으로, 이육사라는 이름은 그가 옥고를 치르던 당시 수인번호(264)이기도 하다.

jkha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