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음주예찬 영화? '어나더 라운드' 묘미는 따로 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어나더 라운드>

오마이뉴스

"어나더 라운드" 스틸 ▲ 영화 스틸 이미지 ⓒ (주)엣나인필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_매즈 미켈슨과 위기의 중년들

현재까지 수상목록이 운동장 몇 바퀴 가뿐히 돌고 올 기세의 영화 <어나더 라운드>를 봤다. 명성이 자자하면 기대치도 그만큼 올라가게 마련이다. 두근거림과 불안이 교차하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2시간을 거의 꽉 채우는 동안 (영화의 예고편에 의거한다면) 대체 어떤 술판이 벌어질 것인가 궁금해 하면서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본 셈이다.

처음엔 덤덤하게 봤던 것 같다. 세계 공인 미 중년 매즈 미켈슨을 필두로 같은 고등학교에서 각각 역사, 음악, 심리, 체육교사로 재직하는 4명의 40대 남자들이 겪는 중년의 위기 이야기다. 이들은 각기 가정생활의 위기, 아내와의 불화, 독신남의 고독 등을 갖고 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직장인 학교에서 학생지도가 원활하지 않아 골머리를 썩이는 중이다. 그런 각자의 고충을 나누며 늘 같이 모여 시간을 보내던 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타개할 방책을 궁리한다.

어느 날의 술자리에서 쓸데없이 진지해진 그들은 노르웨이의 학자 핀 스콜데루드가 세운 가설을 논하기 시작한다. 그의 학설에 따르자면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로 유지되면 인간은 적정수준으로 창의적이고 활기찬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술판에서 종종 내기라도 걸 법한 내용의 일화다. 하지만 역사교사 마틴은 자신이 수업에 의욕을 잃은 나머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호출까지 당하는 중이라 타개책이 절실한 상태다.

2_술의 양면성은 동서고금의 진리

마틴은 정말로 이 가설을 실행에 옮긴다. (혀가 꼬여) 아슬아슬한 위기도 있었지만 학교 수업을 취중 강행하는 그의 실험은 성공적 결과로 나타난다. 학생들은 예전과는 180도 달라진 적극적인 마틴의 수업자세에 호응하기 시작한다. 자신감을 되찾은 마틴은 오랫동안 소원했던 부부생활이나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딴 사람이 된 것처럼 적극적으로 임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마틴의 돌변한 상황을 목격한 친구들도 함께 실험에 참여한다. 알코올 중독이 목표가 아닌 만큼 4명의 친구는 2가지 조건을 자신들의 음주생활 라이프에 도입한다.
① 언제나 최소 0.05% 혈중 알코올 농도 유지
② 다음날 수업 등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게 밤 8시 이후는 금주

그리고 이제 마틴과 친구들은 위험천만한 그들만의 비밀실험을 이어간다. 즉, 주류반입이 엄금된 학교 내에 술을 반입해 마셔가며 수업하는 것이다. 그들의 사뭇 유쾌해 보이는 일탈이 부각되는 영화 전반부는 주류회사 PPL을 방불케 할 만큼 술의 효능에 대한 예찬처럼 흐른다. 네 친구는 평균 혈중 알코올 농도를 꾸준히 유지하며 각자 수업에서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흥분과 성취감을 누린다.

하지만 이들은 한번 성과를 맛보자 점점 더 과감해진다. 나름대로 각자 창의성을 발휘해 농도를 더 올리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하는 식이다. 하지만 과유불급으로 그들의 실험정신은 결국 위기를 초래한다. 고대인들이 술의 양면성을 경계하며 후세에 남긴 숱한 전설과 속담이 왜 등장했는지 깨닫게 할 만큼, 선조들의 혜안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정석적인 추락이 펼쳐진다. 알코올의 힘으로 일상의 히어로가 될 뻔했던 사인방은 이제 영화 중후반부에서 달이 차면 기울듯 몰락하기 시작한다.

3_중년남들의 취중우정을 넘어 인생의 교훈극으로
오마이뉴스

"어나더 라운드" 스틸 ▲ 영화 스틸 이미지 ⓒ (주)엣나인필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자면 <어나더 라운드>는 전형적인 네 중년남성 술꾼들의 흥망성쇠 이야기다. 하지만 감독은 여기에다 2개의 코드를 추가해 예상가능한 성인 코미디에서 색다른 변주를 끌어내기 시작한다.

① 과연 이들이 신봉하는 노르웨이 학자의 가설 내용대로 그들이 처해 있던 위기는 과연 술이 부족해서 난국에 처하게 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② 이들은 교사다. 이 위기의 중년들에게 자라나는 미래의 꿈나무들의 '결정적 찰나'가 좌우될 수 있다. 과연 주인공들은 제자들과 어떻게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다.

첫 번째 질문의 경우, 위기의 중년들은 각자의 상황을 풀어내기 위해선 사실 소통이 절실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나름대로 안정된 중년을 보내는 중이다.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절박할 것도 없다. 문제는 느끼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동기부여와 결단력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 각자는 사실 자신들이 어떤 문제에 처해 있는지 알고 있음에도 한없는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있다. 과연 술이 가설처럼 우선인 것일까?

두 번째 질문의 경우, 역사교사 마틴은 무기력한 수업방식 때문에 입시를 앞둔 학생들에게 신뢰받지 못한다. 마틴에게도 괴로운 일이지만 학생들 또한 교사를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은 실망스러울 테다. 마틴 외의 다른 친구들도 집중력을 끌어내지 못하는 교과수업 문제는 물론, 상담과 조언이 필요한 학생들에 대한 배려를 신경 써야 한다. 체육교사 친구는 축구팀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소년을 교사이자 성인으로 가진 힘을 이용해 원활히 팀에 녹아들게 만들어야 한다. 심리교사 친구는 교과서 수업이 아니라 긴장으로 제대로 시험을 치르지 못해 유급을 거듭하는 학생을 격려하는 과제를 떠안는다. 음악교사 친구는 전혀 하나의 화음으로 모아지지 않는 합창을 호흡을 맞춰 완성해야 한다.

이 문제는 <어나더 라운드>에 북유럽 복지국가 중년남성 4명의 취중농담을 넘어서는 깊이를 요구하는 핵심 쟁점으로 기능한다. 세상에 발 딛기 직전 상태. 그 두근거리는 출발선상에 있는 학생들과 중년의 위기를 맞이한 네 친구들이 함께 성장해야 하는 전개구조는 일종의 트윈엔진으로 작동하면서 이 영화가 갖는 차별성의 동력을 제공하는 요체다.

주연 격인 4명의 친구들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영화에는 덴마크의 교실 풍경과 함께 학교 문화, 그리고 교사와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를 통해 우리에겐 뭉뚱그려 북유럽으로 통칭되지만 각자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국가들에 대해 알 수 있는 배경지식도 제공해 준다. 시험을 치른다 했는데 우리네 OMR 카드나 수학능력시험 대신에 주관식 면접 형태 진행과정이 펼쳐지고, 징계 대신 꽤나 소통 위주의 문제해결방식들, 그리고 덴마크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합창 가사는 지적 흥미를 선호하는 이들에겐 행간에서 보물찾기가 될 법하다.

4_술이 아닌 인생을 담은 영화
오마이뉴스

"어나더 라운드" 스틸 ▲ 영화 스틸 이미지 ⓒ (주)엣나인필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술이 가져다주는 환희와 위기, 이별과 상실이 한바탕 지나간 후, 학원소재물의 공식처럼 영화의 결말과 작품 속 시간대를 배경삼은 졸업식이 겹쳐지면서 <어나더 라운드>는 대단원으로 나아간다. 네 친구의 개별적 위기와 극복의 시간-학사일정에 따른 제자들의 졸업과 사회로의 출발이라는 두 축선이 여기에서 온전히 화학적 결합을 이룬다. 이 순간에 (아마도 영화를 선택할 이들의 과반이 신용보증으로 삼았을) '마틴' 역을 맡은 매즈 미켈슨의 빛나는 연기가 절정에 달한다.

이 노쇠하고 피곤에 절어 있는 표정의 중년 사내가 마지막에 선보이는 '별의 시간'은 이 배우가 원래 무용을 전공한 전문 댄서였음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뮤직비디오의 역사에서 전설로 통하는, 팻보이 슬림의 'Weapon of Choice'에서 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크리스토퍼 워컨을 기용해 선보였던 초현실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마법의 시간이다.

그리고 엔딩 크레디트의 시간이 도래한다. "for Ida"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이다'가 누굴까? 이것저것 검색해 보니 작품의 영감을 얻게 해준 감독의 딸을 추모하는 내용이다. 처음에 감독이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는 위기의 중년 남성들이 알코올의 힘으로 그들이 처한 난국을 벗어나는 단순한 형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감독의 딸이 생생하게 공유해준 덴마크 고교생들의 음주문화 덕분에 각본은 전면 수정을 거쳐 지금의 영화로 선보이게 된 셈이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펼쳐지던 인상적 도입부가 있다. 덴마크 미풍양속(!), 학생들이 팀을 짜 호수를 일주하며 운반하던 맥주상자를 결승점에 도착할 때까지 뱃속에 비워야 하는 시합 풍경이다. 영화 도입부의 음주 레이스는 감독이 딸과 나눈 인터뷰를 그대로 옮긴 장면이라 한다. 그리고 극중 마틴이 수업을 담당한 학급 학생들은 실제로 감독 딸의 같은 반 급우들이라고 한다. 원래는 감독의 딸이 마틴의 자녀로 등장할 뻔했지만, 딸은 영화촬영 직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반드시 알 필요는 없지만 알고 나면 영화의 색깔을 한층 더 진하게 만드는 팁이다.

<어나더 라운드>는 그저 중년남성들의 그들만의 위기 극복 알코올 예찬이 아니다.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가며 전개되는 2중의 성장담 구조는, 우리가 잊어버리고 방치했던 삶의 단면들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풀어낸다. 그래서 영화를 접하고 나면, (홍보가 초점을 맞춘) 유쾌한 음주예찬은 떡밥에 불과함을 깨닫게 된다. 술은 거들 뿐, 인생에 대한 달콤쌉싸름한 성찰이 <어나더 라운드>의 본령이다.
<작품정보>
어나더 라운드 Another Round, Druk
2020|덴마크|드라마
2022.01.19. 개봉|116분|15세 관람가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
주연 매즈 미켈슨(마틴 역), 토마스 보 라슨(토미 역), 라스 란데(피터 역),
마그누스 밀랑(니콜라이 역)
출연 마리아 보네비(아니카 역), 헬렌 레인가드 뉴먼(아말리에 역), 수세 볼드(렉토르 역),
알베르트 루드베크 린드하르트(세바스티안 역),
마르틴 그레이스-로젠탈(오베르티예네르 역), 프레데리크 빈테르 라스무센(말테 역)
수입 및 배급 (주)엣나인필름

2020 워싱턴비평가협회상 외국어영화상
2020 시카고비평가협회상 외국어영화상
2020 유럽영화상 유러피안 작품상/감독상/각본상, 유러피안 남우주연상(매즈 미켈슨),
2020 BFI 런던영화제 작품상
2020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은조개상-남우주연상(매즈 미켈슨 외 3명), SIGNIS상
2021 아카데미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2021 영국아카데미시상식 외국어영화상
2021 세자르영화제 외국어영화상
2021 런던비평가협회상 외국어영화상
2021 예테보리국제영화제 북유럽영화 관객상


김상목 기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마이뉴스에서는 누구나 기자 [시민기자 가입하기]
▶세상을 바꾸는 힘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마이뉴스 공식 SNS [페이스북] [트위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