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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조울증으로 손녀까지 위험한데… ‘응급입원’ 불가능하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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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 지원 요건 까다롭고 경찰 소극적
직접 병원 이송하려니 법적 보호 못 받아
정신질환자 가족들에 부담 고스란히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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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기온이 종일 영하였던 이달 2일 오전 6시 50분쯤, 30대 여성이 영등포구 여의도지구대로 들어왔다. 한겨울 새벽에 내복만 입힌 생후 13개월 아기를 품에 안은 채였다. 여성의 아버지 김모씨가 소식을 듣고 지구대로 달려왔다.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를 앓고 있는 딸의 가출은 처음이 아니었다.

딸이 집에 돌아와서도 돌발행동을 계속하자, 김씨는 이러다 손녀까지 큰일나겠다 싶어 경찰에 응급입원을 요청했다. 경찰은 자신이나 남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정신질환자를 병원으로 긴급 호송해 입원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하지만 김씨에게 돌아온 경찰의 답변은 "실제로 자해를 하거나 남을 해친 게 아니라서 도와주기 힘들다"는 거절이었다. '보호자 자격으로 입원시키는 수밖에 없겠구나.' 다음날 아침 김씨는 딸을 끌어안다시피 차에 태워 병원으로 향했다.

3년 전 조현병 환자가 방화 및 살인을 저지른 '안인득 사건'을 계기로 경찰이 정신질환자 응급입원 조치를 적극 시행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후 2년간 응급입원 신청건수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등 경찰이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면서, 결국 환자 가족이 공권력 도움 없이 강제입원(보호입원)의 부담을 떠안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안인득 사건' 때만 응급입원 반짝


19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정신과적 응급상황 현장대응 안내'라는 내부 지침을 두고 △환자가 자해 또는 다른 사람을 해칠 '위험성'이 있고 △격리하지 않으면 추가적 위해가 발생할 '긴급성'이 있을 때 응급입원 조치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이 지침은 '향후 위험이 예측되는 경우'에도 경찰 소관은 아니지만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대응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특히 경찰은 2019년 안인득 사건 발생 직후 “당장 위협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치료 전력 등을 바탕으로 비(非)자의 입원을 적극 실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의 이런 공언을 두고 '반짝 대응'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경찰청이 최근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안인득 사건이 있었던 2019년 7,591건까지 늘었던 경찰의 응급입원 신청건수는 2020년 5,431건, 지난해 3,992건으로 급감해 예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A씨 사례에서 보듯이, 현장에선 경찰이 실제 피해가 발생했는지를 따지면서 응급입원 조치에 소극적 자세를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조현병을 앓는 동생을 3년 전 보호입원시킨 정모(47)씨는 "평소 경찰이 자해나 타해(타인을 해침) 가능성만 따진다고 들었기 때문에 응급입원을 요청할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도 응급입원 조치를 꺼리는 이유가 없지 않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정신질환 수준을 전문성 있게 판단하기 어려운 일선 경찰관이 현장에서 응급입원 결정을 내리고 책임지려면 부담이 상당하다"며 "인권침해 시비로 민형사상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걱정도 경찰관들이 주저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환자 입원 때 가족 부담 덜어야"


이렇다 보니 정신질환자 입원에 따르는 부담과 책임은 고스란히 환자 가족에게 돌아온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가 발간하는 '국가정신건강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2020년 비자의 입원(응급입원은 별도 집계) 중 보호입원 비율은 각각 87.7%, 90.6%, 87.4%, 83.9%, 81.6%로 매년 80%를 상회한다. 나머지는 지자체장이 입원 조치를 하는 행정입원이다. 이런 가운데 정신질환자는 2019년 310만6,284명으로 10년 새 50%가량 증가했다.

보호입원에 제도적 허점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보호입원은 보호의무자 2명의 동의와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전문의 진단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입원 진단을 위해 왕진하는 정신과 의사는 드물어 가족이 알아서 환자를 병원에 데려가야 하지만 정작 환자 이송에 관한 규정은 없다. 동생의 보호입원을 경험한 정씨는 "의사가 '가족이 환자에게 딱 한 번 악역을 해야 할 때가 처음 병원에 데려올 때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라'고 했다"며 "동생에게 고소당할 각오로 팔다리를 붙잡고 강제로 데려갔다"고 돌아봤다.

그런 탓에 이송 과정에서 환자의 폭력성은 물론이고 형사처벌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2019년 서울고법은 보호자 요청으로 정신질환자를 구급차로 이송한 사설 구급대원 2명에게 공동감금죄 등을 적용해 각각 징역 10개월, 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현행법상 응급입원을 제외하고는 정신과 전문의의 대면 진단 없이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킬 수 없다"고 판결했다.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은 "현행 체계에서 환자 가족은 환자가 응급입원 대상이 될 만큼 난폭해지길 기다리거나, 처벌을 각오하고 병원에 강제로 데려가거나, (환자로부터)도망치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인권침해를 최대한 피하는 한에서 응급입원·행정입원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 다른 대안도 유연하게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영희 정책위원장은 "환자의 위험성이 현저하지 않더라도 치료 필요성이 있다면 가족이나 후견인이 입원을 신청해 전문의 진단을 받도록 하는 신청입원제, 환자 이송을 가족이나 사설 구급대가 아닌 공공 영역에서 맡는 응급호송제의 신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곽대경 교수는 응급입원 보완책으로 "현장 경찰관이 실시간으로 정신과 전문의의 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 법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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