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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간 20여 곳 다니며 막일했다, 동선 발표로 드러난 中농민공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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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 남성이 폐지 등 재활용 물품을 오토바이에 실어 나르고 있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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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는 중국 방역 당국은 거의 매일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 감염자의 동선(動線)을 공개한다. 동선이 겹치는 사람들은 당국에 신고하고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는 취지다. 이름만 안 밝힐 뿐 감염자의 직장, 거주지, 이동 경로가 시간별로 드러나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공개된 동선이 중국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난 19일 공개된 한 농민공(농촌 출신으로 대도시에 일하는 사람)의 사례가 그랬다.

베이징시 방역 당국은 이날 브리핑을 열고 코로나 감염자의 동선을 공개했다. 그는 휴일도 없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1~18일까지 베이징 전역 20곳이 넘는 공사장을 다니며 일했다. 식당이나 상가를 출입한 기록은 없다. 이 기간 밖에서 밥을 사먹거나 물건을 산 적이 없다는 의미다.

1월 1일 오후 11시 30분~2일 오전 4시 43분 호텔 현장

1월 2일 오후 11시 30분~3일 오전 3시 극장 공사장

1월 3일 오후 9시~4일 오전 1시 37분 주택단지, 이후 쓰레기장

1월 4일 오후 2시~2시 30분 별장 현장

1월 5일 정오 아파트 A, 오후 4시 아파트 B, 오후 5시 주택단지 현장

1월 6일 오전 11~12시 8분 주택단지, 오후 2시 21분 자재업체 A, 오후 9시 6분 자재업체 B, 오후 9시 30분~11시 4분 주택단지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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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매체인 중국신문주간에 따르면 이 남성은 웨(岳·44)모씨다. 허난성이 고향인 그는 가족과 함께 산둥성 웨이하이 룽청에 살았다. 10년 이상 어선을 탔다고 한다. 2020년 큰아들(당시 19세)이 실종됐다. 아들은 한 때 베이징 식당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어선 일이 없을 때면 가족을 웨이하이에 남겨 놓고 혼자 베이징에서 돈을 벌면서 아들을 찾았다고 한다.

베이징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공사장에서 모래 포대를 나르거나 건축 폐자재를 옮기는 것이었다. 휴대전화 단체 대화방에서 일감이 뜨면 가리지 않았다. 공사장 한 곳에서 한 번에 200~300위안(약 3만7000~5만 6000원)을 벌었다고 한다. 웨씨는 “50㎏ 시멘트 포대 하나를 평지에서 나르면 1위안(약 188원), 2층까지 나르면 2위안, 3층까지는 3위안을 받는다”고 했다. 낮에는 베이징 시내에 공사차량이 다닐 수 없다 보니 웨씨의 근무 시간은 밤이나 새벽 시간대였다. 아침에 집에 돌아와 4~5시간 자고 점심 쯤 일어나 일을 찾았다. 지출을 줄이기 위해 면적 10㎡, 월세 700위안(약 13만원)인 방에서 생활했다.

중국 매체 중국신문주간 기자가 웨씨에게 전화를 걸어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느냐’고 물었다

“제가 1978년생 말띠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작은아들을 키워야 하죠. 아내는 아이를 돌보고, 남의 집 다시마 말리는 것 돕는데 1년에 1만위안(약 188만원) 정도 법니다.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누워 계시고 최근엔 어머니가 넘어져 팔이 부러져 치료비만 1만위안을 썼습니다. 집에서 돈을 벌 사람은 저뿐입니다.”

공개된 웨씨의 동선에서 일터가 아닌 곳은 17일 우체국 뿐이다. 그는 “(정부에) 진정서를 보냈다”고 했다. 웨씨의 큰아들은 2020년 8월 집에서 50㎞ 떨어진 식품공장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실종됐다. 기차역까지 갔는데 기차도 안 탄 채 사라졌다고 한다. 경찰서에 찾아가 아들의 휴대전화 위치정보나 역 주변 방범카메라를 이용해 찾아달라고 했지만, 경찰은 아들이 성인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아내가 이틀이나 파출소 앞에서 울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웨씨는 이후 아들을 찾아 톈진, 허난, 허베이, 산둥 등 10여 곳을 찾았다. 돈이 없을 때는 은행 ATM 옆에서 자며 닥치는 대로 돈을 벌어 아들 소식을 찾아다녔다. 지난해 경찰은 신원미상의 주검을 보여주며 웨씨의 아들이라고 했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지만 키나 얼굴 형태가 아들처럼 보이지 않았다. 유전자 감식을 요청했지만 경찰은 차일피일 미루더니 나중에는 “귀찮게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웨씨는 “파출소는 사건을 빨리 종결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후 웨씨는 상위 기관에 찾아갔고 지난 17일에도 진정서를 보낸 것이다.

웨씨는 이번에 베이징에서 30여 일간 일해 1만여 위안을 벌었다고 한다. 18일 웨이하이 집으로 가기 위해 베이징남역에서 기차를 탔다. 하지만 전날 실시한 코로나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아 집이 아닌 격리 시설로 보내졌다.

웨씨의 사정을 들은 중국 네티즌들은 “중국에서 가장 고생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사는 게 참 쉽지 않다. 밤낮없이 저렇게 일을 할 수 있을까” “동선만 봐도 눈물이 난다” “어떤 사람들은 명품가방 사려고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어떤 사람은 아들을 찾기 위해 미친 듯이 막노동을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글도 있었다. 하지만 웨씨는 중국신문주간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스스로 가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잘살아보려는 것뿐입니다. 누구 것을 훔치거나 강도질을 하지 않고 내 힘으로, 내 두 손으로 돈을 벌고, 아들을 찾으려 합니다. 삶을 위해, 우리 가족을 돌보기 위해서요.”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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