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어설픈 투자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윤지호의 투자, 함께 고민하시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투자의 바다에 풍랑이 일고 있다. 정신을 차려서 돛대를 붙잡고 노를 저어가기가 만만치 않다.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보내는 긴축이라는 맞바람을 뚫고 나가야 하는데, 앞으로 나아갈 연료인 기업이익은 점점 동력을 잃고 있다.

누구나 돈을 벌고 싶다. 미래를 그려보고, 지금보다 나아질 미래가치에 돈을 투입한다. 인구 증감, 소비 구조, 기술 혁신과 같은 이미 주변에 드러난 미래가치가 투자의 동반자이다. 투기꾼은 가격 변동만을 주시하지만, 투자자는 미래가치 향상에 돈을 묻어둔다. 가격이 흔들려도 가치가 굳건하다면 더 사면 된다.

아쉽지만 현 상황은 여기에 부합하지 않는다. 내가 지닌 자산의 가치를 재평가해야 하는 변화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가치는 잉여현금흐름과 할인율에 따라 결정된다. 할인율을 통해 미래의 현금이 지금 얼마나 되는지를 측정할 수 있고, 잉여현금흐름을 통해 재투자나 배당을 가늠할 수 있다. 투자를 통해 미래에 내게 들어올 수 있는 돈의 무게가 현시점의 가치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는 미래 현금흐름에 있다. 한마디로, 돈이 나가면 빈자이고, 돈이 들어오면 부자이다.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의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췄고, 채권을 샀다. 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면, 시중에 돈이 풀린다. 풀린 돈은 누군가에게 들어갔고, 그만큼 자산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었다. 자산이 오른 만큼 투자 성공담이 넘쳐났다. 2020년 3월 4조2000억달러였던 연준 자산은 이제 8조8000억달러에 다가섰다. 너무 많이 풀었고, 이제 돈의 부작용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자산버블과 비용 증가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너무 많이 먹으면 과체중이 되어 움직임이 둔해진다. 성인병은 영양 과다로 걸리듯이, 자산시장 불안은 과잉 유동성으로 촉발된다.

일단 다이어트부터 시작해야 한다. 연준은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도입했던 과도한 완화적인 통화정책의 정상화 작업에 돌입했다.

미국 경제가 팬데믹에서 벗어나 정상화되고 있는 만큼 정책 정상화 또는 긴축 전환이 필요했을 것이다. 긴급 대출 프로그램은 2021년 중반에 모두 종료되었으며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테이퍼링 시작을 결정했다. 12월 FOMC에서는 테이퍼링 가속화 결정을 통해 양적완화(QE) 종료 시점을 2022년 6월 중순에서 3월로 앞당겼다.

아울러 연준 내에서 대차대조표 논의를 하고 있음이 확인되면서 QE 종료 후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전에 재투자 규모 축소 관련 자세한 사항이 결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연준의 정책 정상화, 더 나아가 긴축 전환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할인율의 변화다. 연준이 움직이면, 한국은행도 뒤따른다. 영끌 투자자에게는 고통의 시간이다.

풀린 돈의 더 큰 부작용은 비용 증가다. 인플레이션이 수요에 의해 촉발되었다면, 기업은 비용 증가만큼 판매가격을 올리면 된다. 기업은 이익을 내서 물가보다 빠른 임금 상승으로 화답하고, 소비자가 상승된 임금으로 소비해 주면 기업의 잉여현금흐름은 개선된다.

현 상황은 이와 다르다. 수요보다 공급에 기인한 물가 상승이다. 비용이 올라간 만큼 소비가 강해져야 하지만 세계의 소비를 책임지는 미국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1.9% 감소했다. 온라인 판매가 전월비 8.7% 급락한 걸 보면 오미크론 때문이 아니다. 이전소득이 감소하면서 소비가 약해졌다.

미국의 소비가 주춤하니 한국의 무역수지도 힘을 잃었다. 코로나 사태를 제외하고는 10년 만의 무역적자이다. 2021년 4분기 기업실적 시즌은 중요하다. 2022년 1분기 이후 실적의 방향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급망 교란과 미·중 갈등으로 인한 비용 증가가 판매가 상승으로 연결되는지 여부를 가늠해야 한다.

긴축으로 유동성을 회수하면 그 효과가 빠르게 확산되며 전 산업과 우리 삶에 영향을 준다. 돈이 풀릴 때가 돈을 더 벌고 싶은 탐욕의 시기였다면, 돈이 회수될 때는 돈을 잃기 싫은 공포의 시기다. 기회를 잡으려면, 일단 부채를 줄이고 어느 정도의 현금을 들고 가야 한다.

투자의 목적은 단 하나, ‘수익을 내기 위해서’이다. 상승세에 올라타지 못했다면 언젠가 다시 올 하락을 기다리면 된다. 인플레 시대에 투자하지 않는 게 리스크라는 조언은 적절치 않다. 어설픈 투자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나을 때가 있다.

윤지호 |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 RPG 게임으로 대선 후보를 고른다고?
▶ [뉴스레터]교양 레터 ‘인스피아’로 영감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