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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서로 사랑하고 꿈꾸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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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산골 농부들은 겨울철엔 돋보기를 쓰고 콩을 가리거나, 참기름과 들기름을 짜서 택배로 보내기도 한다. 마을 어르신들은 ‘바쁜 농사철에 하루 농땡이를 피우면 한 달쯤 굶을 생각을 해야 한다’고 이르셨다. 그러나 겨울철에 하는 일은, 오늘 못하면 내일 해도 되므로 몸과 마음이 한가롭다. 농작물을 키우느라 애쓴 논밭만 겨울방학이 있는 게 아니다. 농부들도 논밭과 함께 두어 달은 겨울방학이다.

오늘은 이른 저녁을 먹고 나서 청년 농부들과 차 한잔 나누며 자연스럽게 농업과 농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향신문

서정홍 농부 시인


“내가 다녔던 학교 게시판에 붙어 있는 희망직종 100가지 가운데 농부는 없었어요. 100가지 가운데 100번째가 ‘기타’인데, 그곳에도 농부는 없었어요. 그만큼 인기가 없는 아니, 생각도 없는 직업이 농부예요.” “그럼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농부가 되려는 꿈을 꿀 수 있을까요?” “농사가 먹고사는 데 아무 걱정 없고 재미있으면 농부가 되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럼 지금부터 농부가 인기 직업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이 제안을 해 보면 좋겠어요.”

청년 농부들이 어떤 제안을 늘어놓을까 몹시 궁금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신선한 제안을 마구 쏟아냈다.

“공무원이나 회사원처럼 경력수당, 가족수당, 위험수당 같은 제도를 만들면 어떨까요?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에 나가지 않고도 살 수 있도록 농촌주민수당도 주면 좋겠어요. 농촌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역병(코로나19)보다 수천수만배 더 무섭다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줄일 수 있잖아요.” “농사 잘 지으면 상여금도 주고, 퇴직금도 주면 좋겠어요. 나이 들면 편히 쉴 수 있게요.” “농사짓고 싶은 사람에게 나라에서 집과 땅을 빌려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정해진 기간 동안 농사를 지으면 그 집과 땅을 농부에게 큰 조건 없이 주면 좋겠어요. 집과 땅을 준다면 가난한 사람들도 농사지을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요?” “어떤 일에 공로가 있는 사람한테 나라에서 유공자 표창을 주잖아요. 나라와 국민을 먹여 살리느라 애쓴 농부들한테도 유공자 표창을 주면 좋겠어요.” “진주에 사는 우리 고모가 암에 걸렸는데 서울대학병원에 가요. 병원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교통비도 엄청 들어요. 그러니까 서울대학병원이 서울에만 있지 말고, 지역마다 하나씩 있으면 좋겠어요. 큰 병에 걸린 사람들이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마음 놓고 치료할 수 있게요.” “서울에 있는 대학을 모두 지방에 있는 농촌으로 옮기면 좋겠어요. 교육이 경쟁이나 전쟁이 아니라 먹을거리와 자연환경을 살리는 희망이 될 수 있게요.” “금방 생각난 게 있어요. 농업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농촌에 살면 좋겠어요. 농촌과 농업을 살려야 한다는 사람들이 대부분 도시에서 살잖아요. 그래서야 어찌 나라꼴이 바로 서겠어요.” “청와대, 국회, 대법원과 같은 정부 기관도 작은 도시나 농촌으로 옮기면 좋겠어요. 그래야만 농촌을 살릴 수 있는 정책이나 대안이 제대로 나올 테니까요.” “그보다 독일처럼 농부를 존중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이 모든 일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 같아요.”

나는 청년 농부들의 끝도 없는 제안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나라 일꾼(정치인)을 잘 뽑아 함께 희망을 찾아야겠다고. 서로 사랑하고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서정홍 농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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