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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개 하도급업체, 건설사에 안전예산 요구…노조는 막무가내 "안전관리자 우리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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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대재해법 ◆

매일경제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건설사들이 `몸 사리기`에 나선 가운데 서울 중구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6구역에 들어서는 `세운 푸르지오 그래비티` 공사가 중단된 채 현장 문이 굳게 잠겨 있다. [이충우 기자]


서울 중구에 위치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서울 중심부인 이곳에는 주상복합건물과 상업용 빌딩 건설 현장이 밀집해 있어 공사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27일 찾은 이곳은 그동안의 공사 소리가 무색하게 조용했다. 공사 차량이 분주하게 드나들던 현장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근로자들이 오가던 통로 역시 진입이 통제됐다.

공사 현장이 멈춰선 것은 이날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건설사 대부분이 '몸 사리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6구역에 들어서는 '세운 푸르지오 그래비티' 공사 현장도 이날 철문이 굳게 닫힌 채 멈춰섰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을 맡은 바로 옆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1구역과 3-4·5구역도 공사가 중단된 것은 마찬가지다. 건설 현장 바깥에 쌓인 폐기물 등을 정리하는 근로자 4~5명만 있었을 뿐 공사 현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서 주요 건설사들은 설 연휴까지 작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대우건설, DL이앤씨 등은 이날부터 공사를 중단했고 롯데건설, 반도건설 등은 설 연휴가 시작되는 다음달 6일까지 공사를 멈추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은 이날 건설 현장에서 '안전 실천 결의대회'를 열고 현장 점검을 진행했다.

건설 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중대재해법 처벌 1호'가 될 수 없다며 작업을 어쩔 수 없이 중단하지만 '공기 단축' 압박을 받을 테고, 그렇게 되면 지금과 뭐가 달라지겠느냐"고 말했다.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안전관리 비용이 크게 늘어난 것도 공사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최근 하도급 업체들은 현장에 더 많은 안전관리자와 안전관리를 위한 시설물 배치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현장소장은 "골조 공사를 예로 들면 기존에는 도급금액이 100억원 이상인 현장은 전체 현장에 안전관리자 1명과 안전시설을 설치하는 인원 1~2명을 뒀는데, 이제는 하도급 업체들 요구에 최소한 2개동에 1명 이상은 배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하도급 업체와 대형 건설사 같은 원청 업체 모두 늘어난 비용을 부담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20~30개 하도급 업체가 한 현장에 모이는데 각 업체가 요구하는 안전관리비를 모두 부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은 사업주에게 안전·보건에 필요한 예산을 편성해 집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그 예산이 구체적이지 않아 내부에서도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노조의 압박이 거세지는 점도 건설 현장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건설 업계에 따르면 노조 측은 중대재해법 시행과 관련해 안전관리자를 자기 노조 측 인원으로 고용하라는 공문을 각 건설 현장에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하도급 업체 관계자는 "안전관리자를 이미 고용했는데, 노조에서 자기 노조 소속 안전관리자를 추가로 데려오겠다고 하고 있다"며 "설 연휴 이후 현장이 재개되면 공사판이 아수라장이 될 듯하다. 숙련도가 떨어지다 보니 현장에서 주로 노조원들이 다치는 일이 허다하다"고 말했다.

한편 중대재해법 시행에도 예정대로 공사 일정을 진행하는 곳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 생활숙박시설 공사 현장은 중대재해법 시행 첫날인 27일 공사가 예정대로 진행됐다. 현장에서는 모든 근로자가 안전모를 착용한 채 진지하게 작업에 임했고 인근 도로 진·출입 관리를 맡은 근로자 얼굴에서는 긴장감도 느껴졌다.

[정석환 기자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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