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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에서 피어나는 농업스타트업의 꿈 [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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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디지로그에서 개발 중인 인공지능 농업 로봇. 디지로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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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eye, Cold pizza, No sleep" (충혈된 눈, 차가운 피자, 그리고 잠 못 잠)

춥고 배고팠던 실리콘밸리 초기 창업자들의 일상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가난했지만 도전정신이 가득했던 시간이 지금의 실리콘밸리를 만들어냈고, 그러한 과정은 이제 벤처 기업의 당연한 수순이 되었다. 글로벌 IT 기업 중 우리가 알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HP 등의 기업들은 모두 창고에서 시작했다. 실제로 빌게이츠는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 창고에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개발하고 있을 스타트업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엔씽, 그린랩스, 팜에이트 등 농업의 변화를 선도하고자 하는 '애그테크(ag-tech:농업과 기술의 합성어)' 스타트업이 출현하고 있다. 그중 디지로그(Digilog)라는 한 스타트업도 서울 우면동 창고에서 세상을 놀라게 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은 네덜란드에서 로봇 및 원예를 전공한 연구원들과 기업의 개발자들로 구성되었으며, 실리콘밸리 초기 창업자들처럼 헝그리하지만 농업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하다.

이들은 딸기 농가의 애로사항인 방제와 수확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인공지능 농업 로봇을 개발 중이다. 주요 병충해를 자동 탐지하고 정밀 방제하여 농약 사용을 90%가량 감소시킬 수 있으며, 자율주행 기능과 높이 조절을 통해 다양한 농가에 적용이 가능하다. 특히 3D 프린터로 일부 부품을 제작하고 인공지능 시스템 고도화를 통해 외국의 경쟁사보다 저렴하고 기술적인 차별화를 가진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디지로그 역시 다른 스타트업처럼 여러 고난과 역경을 마주했는데, 개발 도중 재정의 어려움으로 연구가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다 얼마 전 농협 조합장과 딸기 명인이 이 소식을 듣고 이들과 함께 뜻을 모았다. 남서울농협의 안용승 조합장은 선뜻 농협 건물의 한 창고를 로봇연구소로 제공했다. 그는 "고령화와 일손 부족 문제가 심각한 농촌에 농업용 로봇이 보급된다면 그 파급효과는 대단할 것"이라며 응원을 보냈다. 경남 거창 봉농원의 류지봉 딸기 명인은 서울까지 한걸음에 달려와 "로봇이 현장에서 적용되기 위해서는 밤에도 딸기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필드 테스트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이제 몇 달 후면 로봇이 온실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자동으로 방제와 수확을 하고, 농민은 휴대폰 앱을 통해 딸기의 이상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디지로그의 서현권 대표는 "미래 농업은 농부와 로봇의 협동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농가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목표는 2023년에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 박람회인 CES에서 혁신상의 쾌거를 울리는 것이다. CES는 매년 새로운 핵심 카테고리들을 발표하는데, 올해 푸드테크(Food Tech)가 주요 주제들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앞으로 농식품의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 4차 산업기술이 접목되면서 혁신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따라서 한국도 이러한 흐름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푸드 테크, 즉 농업의 디지털화를 일으켜야 한다.

밤늦게까지 로봇을 조립하느라 옷에는 기름때가 묻고 땀이 흥건하지만, 이들의 얼굴은 꿈과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젊은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애그테크 기업들이 한국 농업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혁명을 일으키는 세계 농업의 미래가 되길 기대해본다.
한국일보

민승규 국립한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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