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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동심을 위한 클래식 음악 [이지영의 클래식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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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한국일보

동요 음반인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표지(왼쪽)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지난해 발매한 '고향의 봄' 앨범 표지. 아울로스 미디어·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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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다. 공연이 다시 활기를 띠면서 어린이와 어버이 대상의 음악회 현수막이 사방에 나풀거린다. 지난 2년 동안에는 공연보다 동요 앨범이 눈에 띄었다. 특히 동요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려낸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와 클래식 악기로 재편성한 그리움 앙상블의 '엄마야 누나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고향의 봄'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동요의 역사가 이제 막 100년이 되었다. 어른들은 식민지배와 전쟁, 가난을 겪는 동안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아이들을 위해 곡을 섰고, 소망을 담아 가사를 짓고 함께 불렀다. 동요는 아이들을 위해 쓴 곡이었는데, 최근 발매된 동요 앨범들은 어른들에게 더 좋은 반응을 얻었다. 왜 그랬을까.

감성지수(EQ)를 강조하던 1990년대 초,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아이의 뇌가 발달한다는 ‘모차르트 이팩트’가 대유행이었다. 모차르트라는 단어만 붙어도 앨범과 책, 강연이 불티나게 팔렸다. 그런데 열과 성의를 다해 클래식 음악을 듣게 했던 부모들은 입시생이 된 자녀들이 음악을 들으면 걱정한다. 생애주기에 따라 들어야 할 음악과 듣지 말아야 할 음악이 나뉘는 것일까. 뇌 발달과 감성지수를 키워준다고 믿었던 모차르트 음악은 어른이 되면 들을 필요가 없는 것일까.

모차르트의 음악은 아이 같은 순수함을 느끼게 하는 음악이라고들 한다. 작곡가가 걱정 없이 밝고 맑게 살아온 사람이라서 그런 결과물이 나온 것은 아니다. 영재였던 그는 뛰어난 재능을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어릴 때부터 여러 도시를 이동해야 했고, 왕족과 귀족, 어른들의 호기심과 주목을 끌며 감탄의 대상이 되어 살았다. 또래와 정을 쌓고 부대끼며 아이로서 자연스러운 성장기를 갖지 못했던 그는 청년기가 되었을 때 세상의 관심이 또 다른 어린 연주자에게 향하게 되자 불안해하며 애정을 갈구하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가정이 따뜻하고 안정적인 울타리가 되어주면 좋았겠지만, 천재였지만 외로운 아들에게 아버지는 권위적이고 엄격한 음악가였다. 아버지의 눈높이에 맞추다보니 평생 눈치 보고 살아야 했고, 모차르트가 일자리를 찾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떠났을 때, 함께 나섰던 어머니가 죽게 되자 아버지는 그 책임을 아들에게 묻고 비난했다. 그때 모차르트의 나이 22세였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너무 맑아서 슬퍼질 때가 있다. 망상일지언정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모차르트의 자아 속에는 어릴 때의 순수함이 박제된 아이, 성인이 되었어도 건강하게 잘 성장하지 못해 한쪽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가 자리하지 않았을까. 그 아이를 위로하기 위해, 스스로 다독여주기 위해, 이렇게 맑고 아름다운 곡을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모차르트의 음악은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만 들어야 할 음악은 아닐 것이다. 아이가 자라서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들을 수 있는, 아니 누구나 들어야 할 음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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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왼쪽)와 로베르트 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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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슈만은 남편 로베르트 슈만에게 “가끔 당신이 어린 아이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슈만은 어린이에 대한 생각을 담은 30개 곡을 썼고, 그 중 13개 곡을 추려서 '어린이 정경'을 내놓았다. 슈만의 음악적 창작력이 최고점에 달했던 시기에 나온 곡으로 지금도 수많은 음악가들이 자주 무대에 올리는 명곡이다. 13개 곡에는 아이의 맑고 건강한 움직임도 있고, 재기발랄하고 귀여운 모습, 꿈속을 헤매는 듯한 몽환적인 아이의 표정 등 다양한 묘사가 감정의 여운을 남긴다. 아이를 표현한, 아이를 위한 곡일 수도 있지만, 당대 평론가들이 말했던 것처럼 이 곡은 ‘젊은 마음을 간직한 어른들을 위한 곡집’이라는 의견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어른이 된 사람이 아이였던 때의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듣게 되기 때문이다. 베토벤이나 말러를 들어도 꿈쩍하지 않던 누군가의 마음이 이 곡에서 뭉클해질 수 있는 것은, 잊고 있었지만 자신이 아이일 때의 모습과 마주하게 되고 되새기고 그리워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동요를 듣다가 갑자기 펑펑 울었던 어른들의 감정도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음악이 자극하는 순수한 감정의 정서는 어떤 형태로든 정화의 시간을 갖게 해주는 것 같다. 그것이 누구의 음악,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 간에.
한국일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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