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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가 중국에 세운 ARM, 4년만에 중국이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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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반도체 설계회사, 경영권 분쟁끝 中정부에 백기

영국의 반도체 설계 기업(팹리스) ARM의 중국 자회사인 ARM차이나에서 벌어진 2년간의 경영권 분쟁이 사실상 중국 정부 승리로 끝을 맺었다. ARM은 일본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 마사요시)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산하 기업이다. 이 최고의 세계적 반도체 설계 기업이 중국 사업을 위해 현지에 합작 법인을 설립했다가 경영권을 침해받고 증시 상장마저 위기에 놓이자 백기 투항한 것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반도체 자급을 추진해온 중국이 기술 확보를 위해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업체를 사실상 강제로 국유화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조선일보

/그래픽=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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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장악한 ARM차이나

ARM은 2018년 중국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선전시(市)에 자회사인 ARM차이나를 설립했다. ARM 본사가 49%, 중국 여러 기업이 51% 지분을 가진 합작 회사 형태였다. 2년 뒤인 2020년 6월 ARM차이나 이사회가 CEO(최고경영자)인 앨런 우를 해사 행위로 해고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중국계 미국인 앨런 우는 해고에 불응하며 ‘쿠데타’를 일으키고 영국 본사 지시도 무시했다. 지난해에는 ARM이 보유한 기술로 중국에서 자체 브랜드 칩을 출시하며 독립 경영을 본격화했다. ARM의 모회사인 소프트뱅크는 경영권 침해 사태를 방관하는 중국 정부와 9차례나 협상한 끝에 지난달 말 앨런 우를 CEO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겉으로는 소프트뱅크가 경영권을 되찾고 분쟁에서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ARM차이나는 사실상 중국 정부가 장악해 버렸다. 새로 임명된 ARM차이나의 최고경영자(CEO)가 중국 정부 측 인사이기 때문이다. 공동 CEO로 임명된 류런천과 천쉰 가운데 법정대표로 등록된 류 CEO는 선전시 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정책 자문 위원)이다. 중국 매체 차이신조차 “류런천은 중국 정부와 관계가 밀접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지배 구조도 중국에 더 유리해졌다. 중국 회사 5곳이 나눠서 보유했던 ARM차이나 지분 51%는 베일에 가려진 롄신그룹이 전량 인수한다고 지난 18일 밝혔다. 차이신은 “중국 측 지분을 보유한 회사들은 지금껏 앨런 우를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 두 갈래로 나뉘었는데, 비밀스러운 회사가 나타나 중국 측 지분을 모두 인수한다고 밝혔다”고 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롄신그룹이 마카오 투자 회사이며, 회사 대표는 마카오·헤이룽장성경제무역촉진회 이사장 등 요직을 맡은 친정부 기업인 쑨전훙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글로벌 기업의 약점 파고든 중국

경영권 분쟁 결과를 두고 중국 정부가 ARM차이나를 사실상 국유화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 제재 속 ‘반도체 자급’을 추진하는 중국이 자국 반도체 생태계에서 핵심 역할을 맡은 ARM을 자국 통제 아래 뒀다는 것이다. 중국 기업이 생산하는 반도체 칩의 95%가 ARM 설계 기반이고, 중국 기업 92곳이 지난해 ARM IP(지식재산권)를 이용해 1억개 이상의 칩을 생산했다. ARM 전체 매출의 20%는 중국에서 나온다.

중국 전문가들은 소프트뱅크가 ARM 매각과 상장에서 약점으로 꼽힌 ARM차이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정부의 요구 조건을 상당 부분 수용해 분쟁을 종결했다고 평가한다. 2020년 9월 엔비디아에 ARM 매각을 추진하던 때에도 ARM차이나의 경영권 문제가 걸림돌로 부각됐고, 지난 2월 엔비디아 매각 무산 후 추진한 증시 상장도 경영권 분쟁으로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ARM차이나는 태생부터 중국 통제를 받기 쉬운 구조였다는 지적도 있다. ARM차이나 지분 36%를 보유한 중국 최대 사모펀드 호푸(HOPU) 투자관리공사의 자금줄은 중국투자공사(CIC), 실크로드 펀드, 선전선예그룹 등 정부 기업들이었다. 게다가 ARM차이나는 2020년 경영권 분쟁이 터지기 이전부터 영국 본사 허락 없이 중국 청두·난징 등에 연구소를 설립해 독단적으로 기술 투자를 했다. 앨런 우 CEO가 이사회의 해고 통보 이후에도 2년 동안 경영권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도 ARM차이나 근거지인 선전시가 사태에 무대응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한 반도체 전문가는 “ARM 본사가 거대한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ARM 차이나를 설립했지만 실익도 없이 반도체 기술만 넘겨주게 됐다”고 말했다.

[이벌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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