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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정치는 밥그릇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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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이익이 집에서 닭을 키웠다. 한두 마리가 아니고 여러 마리였다. 닭들은 온 집을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다가 안방까지 침범했다. 방이 더러워지는 것은 둘째치고 세간살이가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성호는 손을 휘저어 안방을 점령한 닭들을 쫓아내려 했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없었다. 결국 지팡이를 들고 한 마리씩 때려서 겨우 쫓아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팡이를 맞고 쫓겨난 닭들은 다시 슬금슬금 안방으로 들어왔다.

경향신문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성호가 보기에 닭이 하는 짓은 당쟁과 똑같았다. 관리들은 벼슬과 녹봉을 탐내어 당쟁을 벌인다. 그러다 감옥에 갇히거나 귀양 가는 신세가 되기도 하고 심하면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런데도 똑같은 짓을 반복하니, 지팡이로 얻어맞을 줄 알면서도 기어이 안방으로 들어오는 닭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먹이를 다투느라 서로 물어뜯고 발로 차는 것도 비슷하다. 그나마 다른 점이 있다면 닭은 먹이를 다 먹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이좋게 지내지만, 당쟁은 도무지 그치는 날이 없고 반드시 상대를 죽여 없애 끝을 보고야 만다는 것이다. <성호사설>에 나오는 이야기다.

<성호사설>에 당쟁에 관한 비유가 하나 더 있다. 배고픈 사람 열 명이 있다. 그런데 밥그릇은 하나뿐이다. 열 사람이 동시에 숟가락을 얹으니 싸움이 날 수밖에 없다. 왜 싸웠냐고 물어보면 누가 기분 나쁜 소리를 해서라고 한다. 다음날도 싸움이 일어난다. 왜 싸웠냐고 물어보면 이번에는 누가 기분 나쁜 표정을 지어서라고 한다. 다음날도 싸움은 계속된다. 왜 싸웠냐고 물어보면 이번에는 누가 행동을 잘못해서라고 한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어서 그런지 끝까지 밥그릇 때문에 싸웠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싸움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 변명을 곧이곧대로 믿고서 누군가의 말을, 표정을, 행동을 문제 삼지만, 그것은 싸움이 일어난 근본적 원인을 모르고 하는 소리에 불과하다.

조선시대 당쟁의 본질은 벼슬을 차지하기 위한 밥그릇 싸움이었다. 벼슬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벼슬자리는 정해져 있다. 열 사람 앞에 밥그릇 하나가 놓인 격이니 싸움이 벌어지는 게 당연하다. 당파도 이 때문이고, 당쟁도 이 때문이다. 당파는 함께 밥그릇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당쟁은 서로의 밥그릇을 빼앗으려는 싸움이다. 모두가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면 싸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 굶어야 한다면 같은 당파라도 싸움이 일어난다. 성호는 말했다. “당파는 싸움에서 생기고, 싸움은 이해관계에서 생긴다.” 당쟁의 본질을 꿰뚫은 발언이다.

오늘날 정치의 본질은 무엇인가. 누구는 이념이라 하고 누구는 민생이라 하지만, 아무리 거창한 명분을 내세워도 정치의 본질은 결국 밥그릇 싸움이다. 자리는 정해져 있는데 하려는 사람은 많으니 저마다 자기가 적임자라고 주장하며 상대를 깎아내리는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하기야 다들 의원이 될 수 있으면 공천 갈등이 왜 생기겠는가. 의원 자리가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간다면 공천 갈등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여야 갈등도 없어질 것이다.

정치만 그런 게 아니다. 삶의 본질도 밥그릇 싸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밥그릇 싸움은 삶을 위한 투쟁이다. 때로는 꼴사납고 때로는 숭고하다. 밥그릇 싸움을 무시하면 곤란하다.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싸우느냐, 다른 누군가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싸우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둘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밥그릇 싸움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 정치인에게만 하지 말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들도 생활인이니 어쩔 수 없다. 유권자가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자기 밥그릇을 챙길 때 소외된 사람들의 밥그릇도 함께 챙겨달라는 정도다. 봉사니 일꾼이니 하는 미명하에 밥그릇 싸움에 몰두하는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건 그것뿐이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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