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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타고 2030에 닿은 산울림-서태지…韓가요 고고학 관점으로 집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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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왼쪽부터)신현준, 최지선, 김학선 평론가.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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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이나 서태지 같은 존재는 일본, 대만,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나올 수 없었죠. 돌아보면…, 한마디로 미친 시대였지요.”(신현준 평론가)

1960~90년대 우리 음악에 관해 세 명의 평론가가 큰일을 냈다. 30일 세상에 나오는 ‘한국 팝의 고고학’(전 4권·을유문화사)은 조용필, 들국화, 김현식, 김광석, 신해철, 서태지, H.O.T. 등을 불러내되 제단에 모시지 않는다. 그들을 둘러싼 지리(地理), 역학, 산업을 꿰뚫고, 붉은 카펫 아래 숨은 이야기를 까발린다. 허 찌르는 담론, 골목 냄새나는 뒷이야기, 통렬하며 재기 어린 문체가 교차한다. 통찰력 넘치는 연구서이자 흥미진진한 교양서다. 저자 신현준, 최지선,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를 25일 서울 마포구의 출판사에서 만났다.

“이 책은 음악에 대한 미학적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 팝의 미학이 아닌 고고학으로 명명했죠.”(신 평론가)

앞서 2005년 낸 1, 2권은 치밀한 조사와 신선한 관점으로 1960, 70년대 한국 대중음악사를 요리했다. 이미 음악 애호가의 고전(古典)으로 통한다. 절판된 그 두 권을 개정·증보하고, 3권과 4권, 즉 1980년대와 90년대 편을 이번에 새로 써 보탰다.

1980년대 편의 부제는 ‘욕망의 장소’. 공간과 지역이 열쇠다. 저자들이 ‘한국 팝의 지리학’으로 책 제목 변경까지 고민했을 정도다. 김학선 평론가는 “(대표 필자) 신(현준) 선배의 제안에 따라 조사를 해나가며 그간 많은 음반과 음악가를 연구하면서도 간과했던 신선한 관점에 눈 뜨게 됐다”고 말했다. 여의도와 조용필 이야기로 책을 연다. 영동, 신촌, 대학로, 방배동, 이태원 등 서울 내 9개 권역을 거점 삼아 당대의 유흥문화, 인맥, 문화 인프라를 생생히 헤집는다. 이를테면 서초구 방배동 카페 골목의 ‘퀘스천’ ‘휘가로’ ‘아마데우스’ 같은 업체 약도까지 첨부하며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등 부드러운 경음악의 유행, 강인원, 조덕배, 김종찬, 이상우, 변진섭, 지예, 하광훈 등 이른바 방배동 사단의 등장과 분업까지 상술한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환상 속에 아직 그대가 있다’(서태지와 아이들 ‘환상 속의 그대’·1992년)

1990년대 편의 부제는 ‘상상과 우상’. 앞의 5년은 상상, 뒤의 5년은 우상의 시대로 정의했다. 신 평론가는 “구소련 붕괴, 탈냉전 도래로 무경계, 무규칙이 유행하고 압구정과 홍익대 앞에서 각종 문화가 뒤섞이다 못해 엎질러진 시대가 1990년대 전반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 IMF 구제금융 사태를 거치며 사람들은 우상(아이돌)을 찾게 됐고 1990년대 후반은 그 제단에 대한 숭배로 귀결했다는 것이 저자들의 진단이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여러 신문과 잡지, 서적과 음반은 물론이고 인터넷 사이트, 팬 카페까지…. 방대한 참고문헌은 10년에 걸친 저자들의 노고를 짐작케 한다. 이들은 “그러나 지독한 난제는 늘 사람과 대화에서 풀리곤 한다”고 말했다.

주현미, 들국화, 김완선, 고 신해철, 유희열, 자우림 등 명사 인터뷰뿐 아니다. 1980년대 ‘여의도 백작’이라 불린 진필홍 전 KBS PD, SM엔터테인먼트 초기 프로듀서 홍종화 씨 등 숨은 인사이더들도 책에 매혹적 이야기를 보탰다. 진 전 PD가 ‘100분 쇼’를 통해 조용필 등을 조명하고 초대형 이벤트 문화 확산을 촉진한 양상, 홍 프로듀서가 현진영 1, 2집 제작 때 가진 음악적 지향과 음향 장비까지 훑는 식이다.

“방배동 부분의 경우, 한 무명가수의 기억력이 대단한 도움을 줬지요.”(신 평론가)

저자들은 ‘완간’을 선언한다. 고고학 시리즈는 이걸로 영영 끝이란 얘기다. 인터넷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없어 고립돼 있던 1960~90년대야말로 한국 팝이 그 특수성을 개발하고 만개시킨 시대였기 때문이란다. 글로벌 지향의 케이팝은 별도의 이야기로 다뤄야한다는 것.

책은 공간과 인물과 사유가 명멸하며 뒤엉키는, 먼 나라 전설이나 옛날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하다. 이는 명백히 한국 음악의 뼈대를 이룬 실화이기도 하다. 뜻밖에도 저자들은 추억과 향수가 충만한 중장년층보다 그 시대가 낯설 20, 30대가 이 책을 더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대에 관한 정형화된 프레임이 없는 그들이 더 객관적으로, 더 재미나게 읽을 것 같거든요.”(신 평론가)

“2000년생인 제 아들은 음악 들을 때 시대감각이 없어요. 유튜브를 타고 자유롭게 흘러 다니다 1960년대에도 닿고, 1990년대에도 닿죠. 그런 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예요.”(최지선 평론가)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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