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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23] 나와 하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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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광수, 나의 구름,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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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타이핑을 한다. 타닥타닥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음악 소리처럼 공간을 메운다. 가끔 울리는 메신저의 알림음, 공기청정기와 에어컨이 내는 일정하고 낮은 소음, 간헐적으로 컴퓨터 외장 하드 돌아가는 소리가 뒤섞인다. 마감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모니터에 띄워 둔 사진 속 구름을 보느라 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릴 겨를이 없다.

고층 건물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세상은 진공 상태다. 성능 좋은 창호가 외부의 자극을 단단히 막아준다. 덕분에 창밖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건물들 사이로 조각 난 하늘엔 움직임도 소리도 없다. 창문을 열어젖힌다. 와르르 쏟아져 들어오는 자동차 소리와 바람이 나를 해방하기엔 역부족이다.

김광수는 40여 년을 사진가로 살아왔다. 그에게 “구름이 뭐냐”고 물었다. “길이며, 안내자이며, 친구”라는 답이 돌아왔다. 서울에서 시작해서 아프리카 몽골 등을 돌며 17년 동안 찍은 구름 사진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렇다고 했다. 구름은 세상과 소통할 줄 모르고 카메라만 가지고 놀던 청년을 깨어나게 만들었고, 도시의 후미진 골목길을 벗어나 넓은 세상을 돌아다니게 만들었고, 인공 조명으로만 사진을 찍던 작가를 하늘바라기로 만들었다.

하늘과 나 사이에 선명한 구름이 떴다. 더 가까이엔 흐릿한 전신주가 화면 한가운데에 우뚝하다. 저 구름은 사진에 찍히고 얼마 못 가 바람에 흩어져 버렸겠지만, 사진 속 구름은 땅에 단단히 박힌 기둥보다 견고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구름이 아니었다면 바로 눈앞 전신주를 저렇게 대놓고 무시할 수 있었을까. 작가에게 구름이 위안이고 길잡이였듯이 저 구름에 이름을 붙여주고 ‘나의 구름’으로 만들고 싶다. 삶의 무게를 슬쩍 내려놓고 흐릿해진 창틀을 넘어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말이다.

지금 내가 속해 있는 곳이 어디이든 구름은 우리를 하늘로 떠올려줄 수 있다. 걷기 좋은 날이다. 햇빛이, 바람이 모두 그렇다. 나와 하늘 사이에 있는 것들에 감사하기 좋은 날이다.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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