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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심장부에 러시아 황제 동상이 있는 이유[특파원칼럼/김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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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중립국 나토 가입 추진

국익 고민 치열해야 살아남아

동아일보

김윤종 파리 특파원


핀란드와 스웨덴이 18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위한 공식 신청서를 나토에 제출했다. 핀란드는 1948년부터 74년, 스웨덴은 1814년 이후 무려 208년 동안 유지해온 중립국 노선을 버린 셈이다.

역사적 결정을 앞두고 있던 9∼12일 기자는 핀란드 현지를 취재했다. 특히 수도 헬싱키 중심부 원로원 광장을 자주 오갔다. 광장 일대에는 대통령궁을 비롯해 정부 청사, 총리 집무실이 몰려 있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광장 중앙에 서 있는 동상이었다.

1894년 세워진 당시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1818∼1881년) 동상이다. 핀란드는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주변 강대국의 침략이 잦았다. 13세기부터 약 600년간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다. 1809년부터는 러시아가 핀란드를 자치령 대공국(大公國)으로 삼아 지배했다. 알렉산드르 2세는 러시아 황제와 핀란드 왕을 겸했다.

‘광화문에 일왕 동상이 있는 꼴’이라고 생각한 기자에게 헬싱키 시민들은 동상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배경을 설명했다. 1917년 러시아에서 독립한 후 핀란드에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핀란드인’으로 꼽히는 핀란드 6대 대통령 카를 구스타브 에밀 만네르헤임 동상으로 대체하자는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알렉산드르 2세가 집권했을 때 의회를 구성하고 핀란드어 사용을 장려하는 등 핀란드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점이 인정받았다.

‘핀란드식 실용주의’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핀란드는 동쪽으로 러시아와 약 1340km 국경을 맞대고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이런 역사와 러시아와의 미래 관계까지 종합해 동상을 철거하지 않았다. 헬싱키 시민들은 “나토 가입은 찬성하지만 러시아와의 마찰을 최소화하고 경제교류는 최대한 유지하는 세밀한 외교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노르웨이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는 핀란드 여론도 커졌다. 1949년 나토에 가입한 노르웨이는 외부 공격을 받지 않는 한 자국 영토에 외국군 기지를 건설하지 않는 기조를 유지했다. 핀란드 역시 나토에 가입은 하지만 미군을 비롯한 외국군 주둔은 피해 러시아와의 갈등을 최소화하자는 주장이다.

어떻게 보면 이도 저도 아닌 ‘박쥐 전략’ 같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국익을 챙기자는 핀란드 전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취재를 마친 후 곧바로 우크라이나로 이동해 전쟁 피해를 취재하면서 이 같은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기자가 찾은 우크라이나 지역은 민간인 4명이 러시아군 포격에 숨졌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은 23일 현재 러시아 침공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가 어린이 258명을 포함해 3942명이라고 밝혔다.

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침공 명분으로 밝힌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은 적어도 15년 내에는 불가능하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019년 나토 가입 계획을 담은 개헌을 단행했지만 정치, 사회 분야에서 나토 가입 기준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 사이에서는 러시아를 비난하면서도 “정부가 어설프게 나토 가입을 추진해 국민만 괴롭다”는 정서가 없지 않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도 핀란드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힘겨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여론이나 국제 정세에 휘둘리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국익 최대치를 찾는 선택은 무엇일까. ‘무엇이 국민에게 최선인가’란 고민이 깊을수록 답을 찾을 확률은 커질 것이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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