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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다섯쌍둥이의 기적, 그리고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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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 디온의 다섯쌍둥이
한국일보

1943년 만 9세 된 디온의 다섯쌍둥이.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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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5월 28일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사는 만 25세 여성이 루이즈 페니의 최근작 '빛이 드는 법'에서처럼 실제로 일란성 다섯쌍둥이 여자 아이를 출산했다. '디온 일가의 다섯쌍둥이(Dionne Quintuplets)'는 조산으로 저체중이긴 했지만 모두 건강하게 태어나 잘 성장했다. 다태아 출산은 지금도 상대적으로 더 위험하지만 당시로선 기적적인 일이었다.

더욱이 대공황 시대였다. 다섯쌍둥이 출산은 복음처럼 전 세계에 알려졌고, 분만을 도운 마을 의사 앨런 로이 더포(Allan Roy Dafoe)는 일약 최고의 산과의사로 학회 강연 등에 초대받으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쌍둥이 출산 전에 이미 5남매를 두었던 가난한 농부 부부에게는 '유혹'이 이어졌다. 그해 시카고 세계박람회 전시업자들이 쌍둥이 전시권을 얻고자 찾아왔고, 출산, 영유아용품 업체들이 모델 제의를 해왔다. 부모에게 당장 급한 것도 양육할 돈이었다. 국제적십자사의 도움을 받던 부부는 1935년 온타리오 주정부에 쌍둥이 양육권을 넘겼다.

주정부는 '디온 다섯쌍둥이법'을 제정, 아이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전문가에 의한 건강 관리와 양육, 상업 행위 일체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맡았다. 그들의 집(Quintland)이 지어졌고, 출산을 담당했던 의사를 책임자로 한 의료·보육팀이 구성됐다. 퀸트랜드는 나이아가라 폭포에 버금가는 관광지로 부상하며 약 10년간 300여 만 명이 찾아왔다. 아이들은 하루 세 차례 똑같은 옷을 입고 마당에 나와 관광객을 맞이해야 했고, 각종 기념품이 제조 판매됐으며, 식당 등 서비스업이 번성했다. 주정부는 약 10년간 5,000만 달러의 관광 수익을 거두었다.

아이들은 9세 무렵부터 가족과 함께 지냈지만, 영어를 익힌 탓에 불어를 쓰던 가족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고, 친부의 성추행까지 겪어야 했다고 훗날 고백했다. 그들은 18세 무렵 대학에 진학하며 뿔뿔이 흩어졌고, 박물관으로 쓰이던 퀸트랜드도 지난해 5월 해체됐다. 다섯쌍둥이 중 둘은 생존해 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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