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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 승리한 후 한국에 가서 내 뿌리 찾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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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州지사 고려인 4세 비탈리 김 인터뷰

전장 누비며 대러 항전 이끌어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로 떠올라

“러군 만행으로 민간인 피해 늘어… 한국, 무기·장비도 지원해주길”

7월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참여

조선일보

비탈리 김(오른쪽)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주(州)지사가 지난 18일(현지 시각) 흑해 연안 미콜라이우의 전황을 살피러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왼쪽) 대통령을 안내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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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한국부터 꼭 찾아 갈 겁니다. 제 뿌리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

어느새 넉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못지않게 우크라이나인들의 ‘항전 상징’으로 떠오른 인물이 있다. 고려인 후손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비탈리 김(41) 미콜라이우주(州) 주지사다. 러시아군과 치열한 접전 중인 남부 전선의 전황과 함께 국민들의 사기를 북돋는 소셜미디어 활동으로 미콜라이우 주민은 물론, 국민 전체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현지 언론은 그를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과 함께 젤렌스키 대통령의 뒤를 이을 만한 차기 대권 후보로 꼽는다.

우크라이나 현지 인맥을 통한 한 달여간의 시도 끝에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그는 러시아군이 노리는 우크라이나의 핵심 요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보안 등) 여러 문제로 외부와 연락이 쉽지 않다”면서도 본지 인터뷰에 흔쾌히 응했다. 한국 언론과는 첫 만남이다. 미콜라이우에선 지금 우크라이나 최후의 흑해 항구 ‘오데사’를 놓고 양측의 혈전(血戰)이 벌어지고 있다. 미콜라이우가 무너지면 그 후방의 오데사가 바로 러시아군에 노출된다. 그는 “단 한 뼘의 땅도 내어줄 수 없다는 각오로 헤르손 쪽에서 밀려오는 러시아군과 맞서 싸우고 있다”고 했다.

김 주지사는 전쟁 발발 이후 단 한 번도 미콜라이우를 떠나지 않고 군·민 합동으로 대러 항전을 이끌어 왔다. 그는 “전쟁 초반과 비교하면 전황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미콜라이우에서는 여전히 위험천만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러시아군의 만행으로 민간인 피해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다. 그는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진격에 성공하면, 러시아군이 그 보복으로 민간인 지역을 포격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게 제노사이드(집단학살) 아니면 뭐겠느냐”고 비통해했다.

미콜라이우를 공격하는 러시아군 중 상당수가 체첸과 시리아 용병이라고 한다. 그는 “이들은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온갖 흉포한 행위를 벌이고 있다”며 “고문, 처형, 납치와 몸값 요구, 강간, 살인, 강도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 “곡물과 각종 장비, 심지어 놀이터의 놀이 기구까지 훔쳐 철도로 실어나가는 것이 목격되고 있다”며 “이런 행태는 중세 시대 유목민들의 야만적 약탈과 살육 행위와 다를 게 없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김 주지사는 “이런 상황에서도 전기와 수도, 가스, 대중교통 등 사회 기반 시설과 수퍼마켓, 레스토랑, 약국 등 필수 상업 시설이 계속 운영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포격이나 폭격으로 화재가 발생하거나 시설이 파괴되면 즉각 복구에 나선다. 그는 “이를 위해 수많은 공공서비스 종사자들이 희생을 치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농업 활동이 기존의 30~50% 정도로 급감하고, 항만을 통한 수출입이 막히면서 경제 상황은 매우 악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 상황에 대해서도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을 안다”며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기 지원에도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며 장거리 포와 포탄, 대공 방어무기, 장거리 미사일 등을 언급했다. 그는 “(폭격으로 파괴된) 주거지와 사회 기반 시설을 재건하기 위한 각종 장비와 자재도 필요하다”고 했다. 통신 케이블, 유리, 목재, 연료 등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놓고 한국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논란도 알고 있었다. “잠재적 불이익을 우려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입장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생존을 위해서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가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 전쟁은 선과 악의 싸움입니다.”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던 정치인이라면 반드시 우크라이나 편에 서줄 것이라고 믿는다”고도 했다.

김 주지사는 1981년 미콜라이우에서 태어났다. 마라코프 국립대학에서 경영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기업 경영자로 일했다. 2019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소속 정당 ‘국민의 종’에 발탁돼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2020년 주지사가 됐다. 아내 율리아와 사이에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 외에도 영어와 프랑스어, 한국어도 구사한다. 그는 “어려서는 한국어도 곧잘 했는데, 지금은 많이 잊어버렸다”며 아쉬워했다. 고려인 아버지로부터 태권도도 배웠다. 아버지는 구 소련 청소년 올림픽 농구 선수 출신으로, 태권도 사범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한국을 떠난 증조부의 고향에 대해 묻자 그는 “우리 집안의 과거사에 대해 많이 듣지 못해, 잘은 모른다”며 “한국을 찾아서 내 뿌리를 찾으려던 계획이 전쟁 때문에 가로막힌 상황”이라고 했다. 김 주지사는 오는 7월 13일과 14일 이틀간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에 화상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지금 내 꿈은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둬 자유롭고 독립된 나라를 되찾는 겁니다. 그리고 반드시 한국의 고향을 찾아갈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곧 뵙겠습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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