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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이회창 길' 우려…"DJ는 왜 성형까지 고민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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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전당대회를 앞둔 더불어민주당에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에 대한 얘기가 계속 나온다. 3ㆍ9대선 패배 이후 불과 5개월만에 당권 도전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이재명 의원의 행보를 두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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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이 23일 충남 예산군 덕산리솜리조트에서 열린 '새롭게 도약하는 민주당의 진로 모색을 위한 국회의원 워크숍에 참석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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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충남 예산의 한 리조트에서 열린 ‘민주당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송갑석 의원은 이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과 관련 “(대선 패배 후 곧바로 야당 총재가 됐다가 낙선한) ‘이회창의 길’과 태극기 부대를 등에 업은 ‘황교안의 길’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총재는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DJ) 전 대통령에게 40.27% 대 38.74%의 득표율로 패했다. 39만표차의 박빙 승부였다. 특히 492만표(19.2%)를 득표한 이인제 후보로의 표분산이 핵심 패인으로 분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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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8월 한나라당 제2차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이회창 전 총재. 왼쪽부터 이회창,이한동,서청원,김덕룡 당시 총재 후보.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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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총재는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4개월만인 98년 4월 한나라당 명예총재로 재추대됐다. 그리고 그해 8월과 2000년 5월 전당대회에서도 연이어 총재로 당선되며 장기간 ‘1인 체제’를 구축했다. 그리고 더 강해진 대세론 속에서 치러진 2002년 대선에 나섰지만, 노풍(盧風)을 일으키며 급부상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다시 패했다.

이재명 의원이 8월 전대에서 당선되면 2년뒤 총선의 공천권을 쥐게될 가능성이 있다. 강력한 당권을 바탕으로 2002년 이 전 총재와 비슷한 지위로 다음 대선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특히 이 의원 주변과 강경 지지자들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0.73%포인트차로 패한 뒤 반성보다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프레임을 내세우며, 이 의원의 당권 도전을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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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와 노무현 당시 민주당 후보가 2002년 분당 수도통합병원에서 거행된 고 박동혁병장 영결식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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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치권에선 “이 전 총재의 대선 재출마와 이 의원의 상황을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연구소장은 24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97년 외환위기 상황에서 정권을 내준 당시 한나라당으로서는 ‘대쪽 판사’ 이미지를 비롯한 강한 안정감을 가지고 있던 이 전 총재 외에는 아무런 대안이 없었다”며 “극단적으로 비유하면 97년의 이회창은 오히려 차기 대선 승리를 위한 야권의 통합 아이콘이었던 반면, 현재의 이재명은 이미 친명(親明)·반명(反明) 구도의 중심에 선 야권 분열의 코드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2002년 이 전 총재의 패인에 대해서도 “확장력의 한계도 분명 있었지만, 의외의 민주당 경선 흥행에 이은 보수 성향의 정몽준 후보와의 극적인 단일화가 더 큰 원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이 의원이 외연확장이 아닌 기존의 강성 지지층을 더 단단하게 묶으면 다음엔 이길 거라 믿는다면 큰 착각이 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민주당 관계자는 본지에 “5년뒤 여권에선 최소한 40대의 이준석, 50대 초반 한동훈, 60대 오세훈ㆍ안철수 등의 ‘경선 드라마’가 펼쳐질 것”이라며 “이 의원이 당권을 장악하고 무난한 경선으로 대선에 나간다면 과거 이 전 총재가 노 전 대통령에게 패했던 때의 극적인 선거구도에 역으로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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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4일 오후 충남 예산군 스플라스 리솜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팀별 토론 결과 종합 발표’를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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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명계 일각에선 “이회창 케이스가 아니라, 당대표를 거쳐 두번째 대선에서 당선됐던 ‘문재인 케이스’가 될 수도 있지 않느냐”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부정적 평가가 적지 않다.

이광재 전 의원은 지난 1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케이스는 리스크가 컸고, 문 전 대통령도 결국 김종인 비대위원장에게 당을 넘겨주고 물러났다”며 문 전 대통령의 사례를 사실상 ‘실패’로 규정했다.

문 전 대통령은 2012년 12월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패한지 2년 2개월만인 2015년 2월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당선됐다. 전당대회는 친문(親文)과 반문(反文)의 극심한 대결양상으로 진행됐다. 친명과 반명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현재 구도와 유사하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은 박빙의 차이로 당대표에 취임했지만, 내내 계파 갈등과 분당 사태를 겪으며 1년만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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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이종걸(왼쪽) 당시 원내대표, 김종인 공동선거대책위원장과 함께 기자간담회 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2016년 1월 당대표 취임 1년만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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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찬 소장은 “문 전 대통령이 당선되긴 했지만, 탄핵국면에서 치러진 2017년 대선에서도 보수진영 후보들의 득표율 합이 과반이었다는 점에서 문재인 케이스는 실패”라며 “특히 집권 5년만에 자신이 임명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확대된 반(反)문재인계의 주도로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것 자체가 명백한 실패를 의미한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케이스를 그나마 이 의원이 참고할만한 사례로 든다. 다만 패배에 대한 책임과 반성, 그리고 완전히 다른 대선전략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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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대선에서 낙선이 확정된 김대중 당시 민주당 후보가 당사에서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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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는 92년 대선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패한 뒤 사과와 반성의 의미로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1995년 7월 정계복귀까지 2년 7개월이 걸렸다. DJ는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도 약속을 번복한 점에 대해 재차 사과했다.

특히 DJ는 정계복귀와 함께 ‘뉴DJ플랜’으로 불린 완전한 전략 전환을 시도했다. 과거 민주화 운동에 치중됐던 기존의 이미지를 경제에 대한 유능함과 중도 확장 이미지로 바꾸는 전략이었다. 심지어 고(故)김종필 전 총리와도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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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7년 12월 14일 SBS 탄현스튜디오에서 열린 대선후보 3자 TV토론회에 참석한 모습. 김 전 대통령은 1992년 이후 상의 주머니에 손수건을 꽂는 '포켓치프'를 즐겨했는데, 이는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이기 위한 전략 차원이었다고 한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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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본지에 “DJ전략의 핵심은 반성과 변화”라고 했다. 그는 “대선에 패한 죄인인 이 의원은 대선은 물론 자신이 이끈 지방선거 참패에 대해서도 침묵하며 극단적 팬덤에만 기대고 있다”며 “DJ가 오랜 성찰을 거친뒤 정계복귀 이후 정치전략 변화는 물론이고 심지어 포켓칩(양복 주머니용 손수건), 젊은 취향의 쓰리버튼 정장 착용, 성형수술까지 왜 고민했었는지 먼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이라고 지적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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